All Chapters of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Chapter 11 - Chapter 20

113 Chapters

제11화

같은 시각, 이현은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저, 일상적인 큰 소리에 놀라 쓰러진 전학생. 그저 확인만 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이런 상황이 올 줄은 그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 별것도 아닌 소리에 그럴 수 있는 거지?’“강은하.”은하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보았다. 그 이름이 처음으로 이현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박혔다. 동시에 은하를 안고 보건실로 향하던 태하의 모습과, 오빠라는 사람이 다급하게 뛰어 들어와 은하를 안고 떠나던 모습까지 생생하게 떠올랐다.태하 역시 자신의 방에서 은하를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태하는 은하를 처음 본 순간부터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까맣고 긴 생머리에 짙고 큰 눈동자, 자그마한 입술과 아담한 체구. 하지만 표정에서 느껴지는 묘한 차가움을 처음 본 순간부터 이상하게 자꾸만 눈이 갔다.그리고 그런 은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 백이현. 태하는 이현이 이미 은하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창밖을 바라보며, 짧게 중얼거렸다.“은하야, 넌 도대체 어떤 애야?”그렇게 두 남자의 시선이 서서히 강은하를 향해 가고 있었다. ***어느덧 병실 창밖으로 해가 기울어 가고 있을 때 즈음, 은하의 눈꺼풀이 조금씩 열렸다.아까보다는 나아진 몸 상태, 그리고 창문 너머 붉어진 하늘. 곁에서 들리는 익숙하고 따뜻한 음성까지.“일어났어?”마치 눈을 뜨기를 기다렸다는 듯,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우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집에 가자.”은하는 고개를 끄덕이자, 우주는 은하를 부축하며, 병실 밖으로 걸어나갔다.병원 문을 나서자, 차가운 저녁 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은하를 방으로 데려간 우주.조심스레 침대 위에 눕힌 뒤, 이불을 덮어주며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은하야. 학교 말이야… 우리 다시 생각해볼까?”“오빠… 나 좀 쉴게.”은하는 별 말 없이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 은하를 바라보는 우주의 눈빛이 조금 더 깊게 가라앉았다.그냥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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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다음날 아침, 어제보다 더 차가운 공기가 방 안을 감싸고 있었다.천천히 눈을 뜬 은하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온몸이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거운 건, 어렴풋이 떠오르는 어제의 기억이었다. 학교에서 쓰러졌던 순간, 자신을 안고 병원으로 향하던 오빠. 그리고 학생들의 웅성거리던 소리. 물론 한 두 번 있던 일은 아니었지만, 유독 한숨이 튀어 나왔다.“하….”그때,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은하야, 일어났어?”“응.”문이 열리고 우주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따뜻한 라벤더 티 한 잔이 들려 있었고.침대 옆 협탁에 잔을 내려놓은 우주가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 학교 갈 거야?”은하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가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하늘. 그리고, 자신만을 향해 있는 오빠의 시선.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동시에, 지금이야말로 가장 솔직해져야 할 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단순한 물음은 그렇게 공기 속을 가로지르고 있었다.“잘 모르겠어… 그저 청소 도구함이 닫히는 소리였을 뿐인데…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사람마다 무섭게 느끼는 것들이 있어… 별 일 아니야.”“아니잖아… 다른 사람들은 이러지 않잖아.”은하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표정과 말투는 이미 불안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우주는 그런 동생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하려 노력중 이었고.“그렇다고 해서, 네가 느끼는 감정이 틀린 것도 아니야.”“그냥 다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학교는 억지로 다닐 필요 없어. 요즘 홈스쿨링도 많이들 한다더라.”“오늘만… 오늘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줘.”“그래. 집에 혼자 있을 수 있겠어?”“응.”걱정은 여전한데, 아무런 강요도 할 수 없는 지금. 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오늘은 푹 쉬고, 밥 차려 놓고 갈 테니까 꼭 챙겨 먹고. 알겠지?”“응.”짧은 대답 속에 섞여 있는 지친 감정. 어떻게든 위로해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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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조용한 방 안, 책상에 홀로 앉아 있는 은하의 표정에선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창문으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어도, 눈동자는 허공을 바라본 채 미동조차 없었다.손끝을 가만히 말아 쥐었다 폈다가. 그때마다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은 대체 뭐 때문일까.아무리 잊으려고 애를 써도, 어제 철문이 닫히던 그 끔찍했던 소리가 마치 파편처럼 튀어나와 온몸을 할퀴었다.오빠는 말했다. 사람마다 무섭게 느끼는 것이 다 다르다고.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아무렇지도 않은데. 매번 자신만 이렇게 유난스럽게 반응하는 건 스스로가 생각해도 여전히 이해될 리 없었다.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머릿속을 스친 건 백이현 이었다. 나른한 얼굴, 그리고 비웃듯이 올려진 입꼬리. 백이현은 분명, 일부러 문을 더 세게 닫았다. 그것도 내 반응을 지켜보기 위해서.“…….”너무나도 미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품어보는 감정처럼 온몸을 덮치는 분노가 매서운 속도로 밀려 들었다.자신은 고작 철문 닫히는 소리 하나에 보란 듯이 무너졌는데, 마치 그 모습을 보며 즐기는 듯 한 말투로 조롱했다니.‘백이현. 내 두려움을 알고 이용 한 거야?’어쩌면, 또 다시 그 문을 세게 닫을 수도 있겠지. 아니, 그 따위 자식이라면 앞으로 더한 짓을 할지도 모르지.만약 그게 정해진 현실이라면… 나는?‘다시 도망칠 건가?’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오빠 말대로, 이대로 학교를 그만두는 게 정말 맞아?’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비겁하게 도망쳐버리는 순간, 결국 그놈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거니까. 주먹을 꽉 쥐었다. 여전히 두려웠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고작 그깟 놈이 즐기게 내버려두고 싶지도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는 게 아니라, 나를 짓밟으려는 놈이 있는 곳에서 버텨야 한다. 지는 건 싫으니까.저녁이 되자 현관문이 열리며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우주는 넥타이를 살짝 풀며 신발을 벗었다. 거실로 들어선 순간, 은하의 모습이 보였다.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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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뭐? 꺼지라고? 백이현이 예상했던 반응은 이딴 게 아니었다. 그래서 굳어버렸다. 바로 맞받아치지 못해버렸다.학생들은 숨을 죽이며 상황을 지켜봤다. 백이현이 그동안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태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표정에는 생각지도 못한 은하의 말에 대한 놀라움과 조금의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단단히 굳어있던 이현의 얼굴에 장난기가 번져들었다. 손가락으로 제 턱을 가볍게 문지르고는,“오케이~ 노력해볼게?”등을 돌려 자신의 자리에 가방을 던지며 굳이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노력해도 안되면, 그건 어쩔 수 없고.”말에 담긴 의미는 분명했다. 진짜로 신경을 꺼주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 그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을 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1교시가 시작되기 10분 전, 누군가 2학년 3반의 교실 문을 열고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백이현~!”붉은 레드 브라운의 긴 웨이브 머리, 진한 아이라인과 틴트가 선명한 입술. 몸에 꼭 맞게 수선된 교복이 날씬한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교실의 분위기를 바꿔버린 주인공은 바로 이영주. 영주는 이현과 태하와 꽤 친한 사이다. 아버지는 태하의 부모님 회사, 드베르의 임원직을 맡고 있고.온 신경이 오로지 백이현에게 향해 있던 영주는 단숨에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익숙하다는 듯 이현의 책상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백이현! 나 안보고 싶었어?”“뭐야? 다음 주에 온 다더니?”“내가 아주 재미있는 소식을 들었지 뭐야?”분명 2주간 특별 활동 신청서를 내고,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떠났다고 들었는데. 어머니를 도와 새로운 브랜드 런칭 미팅에 참석할 예정이었고, 원래대로라면 다음 주에야 돌아올 일정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온 것도 놀라운데, 재미 있는 소식이라니?그건 바로, 백이현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 그것만큼은 참을 수 없는 질투의 요소. 영주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은하에게 다가갔다. 마치, 백이현과 비슷한 표정이 느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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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태하 역시 영주의 반응을 눈치채고는, 한숨을 쉬며 분위기를 돌렸다.“배고프다며. 밥이나 먹으러 가자.”“그러게~ 우리 영주 가자~”이현은 일부러 '우리 영주'라 칭하며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했다. 하지만 이미 쪽팔릴만큼 개무시를 당한 상태에서 그 말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영주는 억지 미소를 유지하며 머리카락을 넘겼다. 급식실로 향해 식판을 내려놓으면서도 여전히 기분이 언짢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웃기 시작했다.“그래서, 전학생 말이야.”“전학생 아니고, 강은하라잖아?”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말투에 신경이 곤두선 영주는, 이현의 말을 무시한 채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었다.“너, 왜 그렇게 강은하한테 신경 쓰는데? 그 말 듣자마자 프랑스에서 날아왔잖아. 엄마한테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알아?”“신경 쓴다기보단, 그냥 재미있는 애랄까.”태하는 두 사람을 보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영주의 반응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백이현의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 돌아오는 날이 내심 불안했던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밥이나 먹어. 신경 끄고.”“야, 정태하! 어떻게 신경을 꺼? 하필 백이현이랑 얽히는데?”“그것도 백이현이 신경 끄면 끝날 일이야.”이현이 젓가락을 굴리며 날카로운 미소를 장착했다.“야, 정태하.”“뭐.”“너까지 이러니까, 더더욱 신경을 끌 수가 없잖아?”그렇다. 백이현은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관심을 가는 대상이 있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격이니까. 그리고 끝까지 상대를 시험하는 타입이니까. “영주한테나 신경 써.”“아니, 전학생이 자꾸 도발하잖아? 신경 쓰이게?”영주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우려가 현실이 되어 버린듯한 대답.정말로 강은하를 신경 쓰고 있구나. 친구들이 전해온 말이 전부 사실이구나. “백이현, 너 지금 그 말….”순간, 영주의 표정을 보고 심각성을 깨달은 이현이 이내 말을 바꿨다.“뭐, 관심이라는 게 꼭 좋은 쪽으로만 간다는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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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하루 종일 거절만 당한 영주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그동안 백이현과 강은하 사이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 그러다 듣게 된 새로운 소식 하나. “뭐? 운동장에서 쓰러졌다고?” “…백이현 때문에?”핸드폰을 귀에 댄 채 거실을 걸어 다니는 영주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통화 상대인 친구는 청소 시간에 벌어진 일에 대한 소문을 고스란히 전해주었고, 그건 흥미감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영주의 눈빛이 번뜩였다.‘강은하. 너… 뭔가 있구나?’ *** 다음날 아침, 오늘도 은하는 자리에 앉아 책부터 펼쳤다.겉으로는 분명 어제와 다름 없는 일상처럼 보였지만, 공기가 달라진 듯한 기분과 자신을 향한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누군가 분명 자신을 지켜 보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그게 누구인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맞다, 이영주.영주는 교실 뒤쪽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은하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바라보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겼다.“전학생. 일찍 왔네?”“할 말 있으면 해.”“너, 운동장에서 쓰러졌다며?”학생들이 영주와 은하를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을 직접 목격한 이들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대놓고 질문이 오간 적은 딱히 없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영주의 입에서 다시 그때의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그게 왜?”“그냥, 궁금해서.”은하는 확신했다. 영주가 그날의 일을 알고 있다는걸 넘어, 이용하려 한다는 사실을. '백이현 친구 답네….'영주는 기다렸다는 듯 청소 도구함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웃음을 흘렸다.“이거였다던데? 이유가?”그리고 거침없이 청소 도구함 문을 열더니, 최대한 힘을 실어 세게 닫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은하 역시 당황했다. 분명히 예상하고 있었던 순간이었다.“……?”당연히 울려 퍼져야 하는 철제 문짝 특유의 둔탁한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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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며칠 뒤, 학교에서는 진로 탐색 체험 준비가 한창이었다. 각 반마다 학생들의 진로를 고려해 체험 활동을 진행할 업체와 기관이 정해졌고, 복도에는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양한 기관들이 학교와 연계되며 학생들의 관심도 높아졌다.교실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진로 탐색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체험처가 어디래?”한 학생이 핸드폰으로 찍어 놓은 진로 탐색 체험 배정표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별카페 바리스타 체험이랑, 드베르 주얼리 브랜드 체험, 또… 병원도 있고, 한성 그룹 기업 탐방도 있네.”“와, 드베르? 정태하네 회사 아니야?”“한성 그룹은 백이현네 아버지가 운영하는 기업이잖아!”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은하의 귓가에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전히 미간이 찌뿌려지는 대상인 이영주였다. “강은하, 너는 어디 가고 싶어?”“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난 드베르로 갈 건데, 너도 같이 가자.”이건 또 무슨 수작이지?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다고.“왜?”“명품 브랜드 본사 내부를 직접 볼 수 있다잖아, 이런 기회 흔치 않잖아?”“내가 알아서 할게.”“그러던가, 그럼.”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의도가 담겨 있는 목소리.은하는 직감했다. 영주가 이번 기회를 이용해 무언가를 꾸미려고 한다는 것을. 태하 역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번 진로 탐색 체험은, 단순한 체험에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은 진로 체험 신청서를 작성하기 위해 모두가 고민하고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진중히 고민하고 있었고, 또 다른 몇몇 학생들은 그저 친한 친구를 따라 체험처를 결정하는 듯 했다.드베르(DEVERRE)와 한성 그룹.정태하와 백이현, 두 사람이 직접 관련된 체험처인 만큼, 학생들의 관심이 가장 높을 수밖에 없었다.은하는 책상 위에 놓인 신청서를 조용히 바라보았다.‘이영주는 내가, 자신과 같은 드베르로 가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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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잠시 후,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드베르의 건물이 눈앞에 나타나자 학생들 사이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본사의 커다란 유리문이 반짝이며, 고급스러움과 권위가 깃든 브랜드의 위엄을 뿜고 있었다.“와, 진짜 명품 회사답다.”“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완전 부자겠지?”태하가 앞장서며 문을 열었다. 그리곤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긴장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이 익숙한 발걸음으로 들어섰다.당연했다. 이곳은 부모님이 운영하는 회사였으니까. 영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주의 아버지는 이 곳, 드베르에서 상무직을 맡고 있으니까.안으로 들어서자 회사 직원이 학생들을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맞이했다.그중 한 직원이 담담한 얼굴로 안내를 시작했다.“여기는 드베르 본사입니다. 명품 주얼리 디자인, 마케팅, 제작까지 전반적인 운영이 이루어지는 곳이에요.”하지만 영주의 귀엔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온 신경이 은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전학생, 여긴 처음이지?”“어.”“느낌이 어때?”“글쎄.”“사실 여긴, 아무나 쉽게 일할 수 있는 곳은 아니거든. 입사하려면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배경도 중요해. 그치 태하야?”태하는 어이없다는 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은하는 생각보다 빠르게 대답을 내놓았다.“그럼 너도, 네 배경 없이는 여기 못 들어오겠네?”영주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진 미소. 은하는 아무렇지 않다는듯 학생들을 따라 움직이며 회사를 이곳저곳 둘러보기 시작했다. 태하가 자리에 서서 씩씩거리는 영주를 향해 말했다.“쓸데없는 신경전 그만하고, 가자.”“진짜 재수 없다니 까! 강은하!”화려한 샹들리에, 고급스러운 대리석 바닥, 곳곳에 진열된 명품 주얼리 컬렉션. 본사 내부의 모든 공간은 그 자체로 ‘부’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학생들은 감탄하며 두리번거렸고, 직원 역시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갔다.“여기는 VIP 고객들이 직접 방문하는 프라이빗 쇼룸이에요.”직원이 가리킨 곳에는 특별한 고객들만 입장할 수 있는 한정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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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영주 역시 능숙한 손놀림으로 금속 베이스를 다듬기 시작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역시 영주 답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이제 바로 영주가 노렸던 기회였다. 강은하, 마음에 안드는 전학생의 기를 바짝 눌러놓을 생각이었다.은하가 베이스 위에 아주 가느다란 가이드 라인을 그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하가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그냥… 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어떻게 그림자가 만들어지는지 확인하려고.”태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이건…. 진짜 디자이너들이 하는 방식인데.’시간이 흐르고, 학생들의 작품이 하나둘씩 마무리 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가장 궁금해 하던 작품은 당연히 태하와 영주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태하는 은하의 작업을 지켜보느라 그저 단순한 작업물만을 내놓았고, 영주는 작은 원석을 세팅한 섬세한 곡선을 가진 반지를 내놓았다.디자인 자체는 깔끔하고 완성도가 높았다. 학생들은 영주의 작품을 보며 감탄했다.“역시! 되게 예쁘다!”“영주는 진짜 드베르랑 잘 어울려.”그때, 디자이너가 은하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빛의 반사와 그림자를 활용한 입체적인 구조를 가진 작품. 잘 다듬어진 표면은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처럼 느껴졌고, 디자이너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이거, 굉장한데요?”모든 시선이 영주의 작품에서 은하의 작품으로 집중되었다.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구조적인 감각이 뛰어난 작품이에요. 보통 초보자들은 형태만 신경 쓰는데, 이 디자인은 빛의 방향은 물론 착용자의 움직임까지 고려했어요. 학생, 이름이?”“강은하라고 합니다.”“기억할게요. 은하 학생.”디자이너의 감탄이 끝나고, 그렇게 실습이 마무리되었다. 학생들은 두 개의 작품을 번갈아 보며 웅성거렸다.“영주 것도 예쁜데, 강은하가 만든 게 더 신기하지 않아?”“처음 해본 거 맞아?”“와, 솔직히 전학생 대박인데?”영주의 눈빛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이건, 예상했던 결과가 결코 아니었다. 분명 자신이 우위라고 생각했었다. 상대도 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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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보건 선생님의 따뜻한 미소를 뒤로 하고, 보건실을 빠져나온 영주.문이 닫히는 순간, 연기처럼 머금었던 부드러웠던 미소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뭐? 베타 차단제?”핸드폰부터 꺼내 이것 저것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베타 차단제는 단순한 건강 문제가 아닌, 불안과 긴장을 조절하는 약이라는 걸. 트라우마나 공황상태를 진정 시키기 위해 처방 되는 약이라는 놀라운 사실을.이제 강은하에게 약점이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리고, 그 약점이 단순한 게 아니라는 것 또한 말이다.영주는 자신의 무리들이 있는 단톡방에 이 정보를 흘려버렸다.[강은하. 트라우마랑 공황 장애가 있다는 데?][뭐? 진짜?][헐, 그럼 운동장에서 쓰러진 게 그거 때문이야?][베타 차단제를 먹을 정도로 중증인가 봐.][와, 대박…]이제 소문은 시작되었다. 단톡방에서 흘러나간 이야기는, 곧 교실 곳곳으로 퍼지게 될 것이다.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가 밀려오는 저녁.은하는 익숙한 냄새가 감도는 식탁에서, 말없이 따뜻한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역시나 우주가 앉아 있었다. 우주는 출근하고 돌아온 후에도 은하를 챙기는 게 일 순위였으니까.“오늘 어땠어?”“드베르 본사 체험 다녀왔어.”“드베르? 명품 주얼리 회사잖아.”“응. 우리 반 학생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회사래.”“그렇구나. 가서 뭐 하고 왔어?”“실습. 스케치도 하고, 간단한 제작도 하고….”“어땠어?”“재미있었어.”우주는 생각지도 못한 은하의 대답에 놀란 듯 했다. 은하의 입에서 재미있었다는 말이 나온 건 어릴 때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런 은하라면, 충분히 기다릴 만하다고 다시 한번 자신을 다독였다.“잘했어. 은하야. 앞으로도 물론 힘든 일은 있겠지만, 재미있는 일들이 더 많길 바라.”“응. 오빠.” 천천히, 더딘 속도여도 상관 없었다. 이런 평범한 대화 자체가 기적일만큼 은하의 상태는 늘 최악이었으니까.***다음날, 아침부터 교실 안은 어딘가 이상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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