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 분위기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학교 곳곳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정원들은, 매 학기마다 학생들이 직접 가꾸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었고, 오늘은 바로 정원을 가꾸는 특별활동 시간. 밖으로 나온 학생들은 각자 작은 삽과 장갑을 손에 쥔 채 서 있었다.하늘은 맑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닥엔 나뭇잎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고, 정원의 흙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하지만 은하는 주변의 풍경보다도, 이곳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영 어색했다. “이런 건, 그냥 학교에서 알아서 하면 되지 않나….”민희가 너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까. 그래도 막상 해보니까 나쁘진 않더라. 수학보다 훨씬 낫지.”손끝으로 장갑을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자, 학생들은 이미 조를 나누어 곳곳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낙엽을 정리하는 조, 꽃을 심는 조, 화단에 물을 주는 조까지.담임 선생님의 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우리 반은 가장 중요한 중앙 정원을 맡았으니까, 나무 주위로 꽃을 심고, 흙을 고르게 정리하는 게 오늘의 목표다! 이동!”학생들이 투덜거리며 중앙 정원으로 이동했고, 태하와 이현도 귀찮다는 표정으로 툴툴 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또 시작이네. 귀찮게.”“그래도 우리 학교 정원은 꽤 볼만하잖아?”목표는 단순했다. 꽃을 심고, 흙을 다듬고, 물을 주는 일. 작은 모종삽을 든 은하가 흙을 파헤치던 순간,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이 이상하게 생생했다.어릴 적, 집 앞 마당에서 오빠와 함께 비슷한 놀이를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따스한 손길이 머리 위를 스치며,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은하야.’ 라며 다정하게 가르쳐 주던 순간들. 흙 속에서 작은 돌멩이를 발견하고 신기해 하며 웃던 기억. 맨손으로 흙을 만지며 반죽처럼 빚던 소중한 추억.그런데, 그 이후로는 비슷한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다.마당에 나가 노는 건 물론,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일상 조차도.모든 것이 한순간 뚝 멈춰버린 것처럼 기억이 삭제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