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Chapter 41 - Chapter 50

108 Chapters

제41화

교실에 도착한 순간,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은하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은하는 그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묵묵히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오늘도 역시나 생글맞게 웃으며 다가온 민희. “은하야! 벌써 퇴원한거야?”“응.”“다행이다.”그때, 교실 앞 문으로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의 시선 역시 가장 먼저 은하에게 향했다. “은하 왔구나.”“네.”선생님은 긴 말 대신 오로지 따뜻한 미소를 더한 인사만을 건넸고, 아이들의 시선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평상시처럼 시작된 수업.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현과 태하, 은하에 머릿속엔 시험과는 다른 고민이 자리잡고 있었다.은하에겐 새롭게 알게 된 진실과 오빠가 돌아왔을 때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고, 이현의 머릿속엔 혼자서 씩씩하게 등교하던 은하의 뒷모습이 한시도 떠나질 않았다. 태하 역시 은하에 대한 걱정은 물론,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듯한 이현에 대한 고민이 한 가득이었다.***그날 오후, 체육 시간.체육은, 은하가 가장 싫어하는 시간 중 하나다.워낙에 활동적이지 않은 성격이기도 했지만, 몸을 쓰며 뒹둘고, 웃고, 떠들고, 공을 던지고.그런 불편하고 어색한 것들은 여전히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체육 선생님은 준비 운동을 시키며, 학생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피구 경기를 지시했다. 은하는 자연스럽게 무리에서 벗어나 운동장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그 와중에도 여전히 자신과 관련된 얘기를 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박찬희 미친 거 아니냐?”“이영주가 더 대박이지 않냐?”전학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동안 일어난 수많은 일들. 매번 뜻하지 않게 대화의 중심인 자신.앞으로는 대체 어떤 학교 생활을 보내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멀리서 은하의 모습을 지켜보던 태하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멀뚱히 서 있던 모습이 자꾸만 신경쓰였던 것.“우리 저쪽 가서 앉자. 나도 오늘은 몸 쓰기가 싫으네.”태하의 손이 가리킨 곳은 학교 건물로 향하는 시멘트 게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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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말이 없던 태하와 민희는 비슷한 생각을 했다.은하는 얼마나 오래도록 고립된 시간을 보낸 걸까, 그 속에서 느꼈던 불안감과 압박은 대체 어떤 기분일까.태하가 용기를 내 자신의 뜻을 전했다.“걱정은 나중에 해. 지금 우리 나이에는, 뭘 하고 싶은지 찾는 게 최우선이야. 다른 건 그 다음이고.”“생각해 본 적 없어.”“저번에 보니까, 그림도 잘 그리던데 뭘.”민희 역시 태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맞다! 현장 체험 학습 갔을 때, 드베르 디자이너분이 엄청 칭찬했다며?”“그랬었나….”은하에게 그날의 기억이 스르륵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일, 단지 그 순간의 일이었다. 딱히 소중하게 기억할 이유가 없는, 평소와 다르게 기분이 조금 좋았던 순간 정도.“우리 저기 좀 들렸다 가자.”태하가 가리킨 곳은 큰 펜시점이었다.“펜시점? 왜?”“그냥, 구경!”입구에 들어서자, 넓은 공간에 색색깔의 다양한 제품들이 그들을 맞이했다.“여긴 올 때마다 사람을 홀린다니까. 다 사고 싶어! 다!”민희는 귀여운 디자인의 볼펜 몇 자루를 골랐고, 태하 역시 바구니에 필요한 물건들을 한 가득 담은 듯 했다. 역시나 은하의 손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고 말이다.계산을 마치고 펜시점을 나온 순간, 민희가 시계를 흠칫 바라보더니 인사를 전했다.“어머, 나 학원 늦겠다! 내일 보자!”“응.”“잘 가.”남은 두 사람만이 은하의 집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이번엔 은하의 목소리가 먼저 튀어 나왔다.“너는, 학원은 안 다녀?”“응.”“왜? 안 다녀도 잘 해서?”“아니. 그냥 혼자 공부하는 게 익숙해. 어릴 때부터.”“야자는? 3학년 되면 할 거야?”처음이었다. 은하가 먼저 나서 이렇게 질문들을 해대는 건.“아니. 그것도 싫어.”“그건 나도 그래.”“그래도 다행이지. 강제로 안 해도 되는 게 어디야. 다른 학교는 강제로 시키는 학교도 많다더라.”평범한 학생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 은하도 태하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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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집으로 돌아온 은하는 태하가 준 그림 도구들을 책상 위에 펼쳤다.한참을 가만히 앉아있더니, 이내 연필을 깎기 시작하는 손. 날카롭게 떨어져 나오는 나무 조각들이 책상 한 켠에 켜켜이 쌓여 갔다. 그 소리가 마음을 진정 시키는 듯 편안했다.하지만, 정작 연필을 손에 쥐었을 때. 뭘 그려야 할지 감이 서질 않았다.긴 고민이 이어지던 끝, 서서히 무언가가 그려지기 시작했다.은하의 손은 꽤 오랜 시간 하얀 스케치북 위에서 멈추지 않았다.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선들이 조금씩 이어지며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그리고, 우주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연필을 내려놓았을 때, 스케치북엔 커다란 은행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학교에서 매일 마주하는 은행나무.그림 속 은행 나무는 아무런 잎사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연했다. 은하는 아직, 그 은행나무에 잎이 핀 걸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같은 시각, 태하의 집.드베르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태하.단촐한 세 식구의 딱딱한 저녁 식사가 시작됐고, 태하는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스리슬쩍 눈치를 봤다.늘 사업 문제로 바쁘신 부모님. 오늘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무겁고 정적인 시간이었다.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요즘 뭐 하고 돌아 다니는 거냐? 기말고사가 코 앞인데?”“시험 걱정은 마세요.”“영주 일은 어떻게 된 거고? 이 상무가 찾아왔더라.”아, 역시 다 알고 계시는 구나. 이 상무라면 영주의 아버지인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신 걸까.“…이번 일은 영주가 잘못 했어요.”“그래. 나까지 나설 필요는 없는 거겠지. 너도 조심해라. 늘 신중하고.”“네.”이현 역시 침대 위에 누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벌컥! 방 문이 열리며 여동생 가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오빠.”“왜.”“태하 오빠는 잘 지내?”“네가 왜 신경 써.”“내년이면 같은 학교 다닐 텐데, 오빠 친구라곤 태하 오빠밖에 없잖아?”“나가라. 짜증 나게 하지 말고.”“또 X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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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며칠 새, 학교는 평화를 되찾았다.이현은 여전히 은하의 주변을 맴돌며 멀리서만 지켜보았고, 태하는 그런 이현과 달리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해자들의 처벌도 정해졌다. 주동자였던 박찬희는 결국 정학 처리로 결정이 났지만, 자퇴를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들려왔다. 다른 가해자들 중 문을 열고 닫으며 가장 큰 위협을 가한 한 명은 사회봉사, 그리고 또 다른 이들에겐 교내봉사 명령이 떨어졌다. 영주 역시 중간에 자리를 이탈한 덕분에 교내 봉사로 결정됐지만, 사실 그 결정은 큰 의미가 없었다.가해자들에 대한 소식을 들은 날, 은하를 집에 데려다주던 태하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싹 다 안보이길 바랐는데, 에휴. 그래도 은하야. 어차피 박찬희 말에 움직이는 애들이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응.”“맞다. 그림은? 그려봤어?”“응. 조금.”무뚝뚝한 대답이었지만 태하의 얼굴엔 이내 미소가 번졌다.“진짜? 어땠어?”“시간은 잘 가더라. 재미도 있었고.”“다행이다. 맞다! 내일이면 오빠 오시는 날 아니야?”“맞아.”은하의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사실 속은 말이 아니었다.오빠가 없는 일주일동안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작 그 얼굴을 맞주하는 순간이 가장 걱정이었다.“이번 일은 아직 모르셔…?”“응. 설희 언니가 중간에서 다 해결해주셨으니까.”“어떡하냐, 오시자마자 화부터 나시겠는데….”***한편, 찬희와 무리들은 당구장에 모여 불쾌한 감정을 고스란히 표출했다.“X발. 이영주만 교내 봉사네.”“그러니까. 재수 없게 지만 쏙 빠져 나가네.”“찬희야, 그래도 등교정지는 너무한 거 아니냐? 우리가 옷을 벗겼냐, 허튼 짓을 했냐.”“그러니까. XX. 더러워서 안 다니고 말지.”분위기는 점점 더욱 험악해졌고,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는 불만과 분노만이 얽혀갔다. 그때, 당구장 유리 문이 거칠게 열리며 백이현이 들어섰다. 모두가 하던 대화를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성큼성큼 당구대 앞까지 다가오는 모습이 어찌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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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한참을 머뭇거리던 은하가 우주의 손 위에 자신의 두 손을 스르륵 포갰다.“오빠… 오빠는 아무 잘못 없어.”우주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은하가 이런 식으로 손을 잡아주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 손이 너무나도 따스했으니까.“오빠는 그 어떤 오빠보다 든든하고 소중한 오빠야. 내가 더 많이 의지했어야 했는데, 미안해.”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아서.늘 어린 아이라고 생각했던 동생이, 늘 약하고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오히려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놀라고 아팠어. 사실, 지금도 무서워. 근데 오빠… 나 이겨내고 싶어. 그만 쓰러지고 싶어. 다른 아이들처럼 대학 생활도 꿈꾸고, 직장에 대한 상상도 하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어.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게 아니라 5년 뒤, 10년 뒤를 그리며 살고 싶단 말이야.”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평범한 삶.은하가 내뱉는 말들이 우주에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큰일을 겪고, 당연히 상태가 더 나빠졌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 생각이 온종일 머릿속을 지배했었다.하지만, 눈 앞에 있는 은하는 보란듯이 발버둥을 치며 노력하고 있었다. 가슴에 차오르는 감정을 참지 않고, 한가득 쏟아냈단 말이다.“오빠, 잠깐만. 보여줄 게 있어.”벌떡 일어나 방으로 향했던 은하가 스케치북을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그게 뭐야?”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스케치북을 펼쳐 보이는 은하.그림을 본 우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이게 뭐야…? 설마 네가 그린 거야? 정말?”“응. 내가.”“은, 은행나무네?”“응. 우리 학교 상징이야.”비록 비어 있는 나뭇가지였지만 굵은 가지들이 무성했고, 여러 갈래로 뻗어 나온 뿌리는 너무도 단단히, 굳건히 땅 속에 박혀 있었다. 우주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림 속 은행나무가 꼭 은하 같다고. 은하 안에는 그동안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강하고 단단한 힘이 담겨 있을 거라고.“오빠가 되가지고, 동생의 그림 실력을 여태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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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오늘, 학교 분위기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학교 곳곳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정원들은, 매 학기마다 학생들이 직접 가꾸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었고, 오늘은 바로 정원을 가꾸는 특별활동 시간. 밖으로 나온 학생들은 각자 작은 삽과 장갑을 손에 쥔 채 서 있었다.하늘은 맑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닥엔 나뭇잎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고, 정원의 흙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하지만 은하는 주변의 풍경보다도, 이곳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영 어색했다. “이런 건, 그냥 학교에서 알아서 하면 되지 않나….”민희가 너털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까. 그래도 막상 해보니까 나쁘진 않더라. 수학보다 훨씬 낫지.”손끝으로 장갑을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자, 학생들은 이미 조를 나누어 곳곳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낙엽을 정리하는 조, 꽃을 심는 조, 화단에 물을 주는 조까지.담임 선생님의 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우리 반은 가장 중요한 중앙 정원을 맡았으니까, 나무 주위로 꽃을 심고, 흙을 고르게 정리하는 게 오늘의 목표다! 이동!”학생들이 투덜거리며 중앙 정원으로 이동했고, 태하와 이현도 귀찮다는 표정으로 툴툴 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또 시작이네. 귀찮게.”“그래도 우리 학교 정원은 꽤 볼만하잖아?”목표는 단순했다. 꽃을 심고, 흙을 다듬고, 물을 주는 일. 작은 모종삽을 든 은하가 흙을 파헤치던 순간,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이 이상하게 생생했다.어릴 적, 집 앞 마당에서 오빠와 함께 비슷한 놀이를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따스한 손길이 머리 위를 스치며,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은하야.’ 라며 다정하게 가르쳐 주던 순간들. 흙 속에서 작은 돌멩이를 발견하고 신기해 하며 웃던 기억. 맨손으로 흙을 만지며 반죽처럼 빚던 소중한 추억.그런데, 그 이후로는 비슷한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다.마당에 나가 노는 건 물론,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일상 조차도.모든 것이 한순간 뚝 멈춰버린 것처럼 기억이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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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하교 시간이 되자, 오늘도 역시 은하에게 다가온 태하.“집으로 바로 가? 오빠는?”“아, 오늘은 오빠가 데리러 오기로 했어.”“그렇구나. 그럼 내일 보자.”“응.”그렇게 은하는 교실을 떠났고, 태하의 눈에 맨 뒷 자리에 앉아있는 이현의 모습이 보였다.평소처럼 나른한 자세로 앉아 있었지만, 유난히 어둡게 가라 앉은 표정. 요즘 매일 매일이 그런 모습인 이현이 태하는 당연히 신경 쓰였다. “야, 백이현. 오늘 뭐 할거냐?”“모르겠는데.”“간만에 운전 연습이나 하러 갈까?”이현은 그제야 태하를 쳐다봤다. “운전?”“한동안 안 갔잖아. 슬슬 감 잃을 때도 됐고.”운전 연습은 이현과 태하, 둘만이 공유하는 특별한 취미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도, 필요해서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둘만의 방식으로 답답함을 날려버리기 위해 가끔씩 찾는 시간일 뿐. 이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좋지. 가자.”학교를 빠져나와 각자의 부모님이 보낸 차에 올라 목적지로 이동하는 두 사람.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달리자, 웅장한 철문이 보였다.게이트 한쪽에는 깔끔하게 정돈된 ‘H.S Motors Private Track’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차를 인식한 철문이 부드럽게 열리자, 트랙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왔다.넓게 펼쳐진 아스팔트 도로는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이어져 있었고, 곳곳에는 고성능 차량을 위한 정비 구역과 VIP 라운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여러 대의 슈퍼카가 주차 된 개인 차고까지.이현의 아버지는 자동차 관련 사업에도 투자를 하고 있었다.그냥 투자만 하기엔 재미가 없으니, 아예 서킷까지 사버린 것.서킷 내부로 들어서자 직원들이 둘을 보고 정중하게 인사했다.“오랜만에 오셨네요.”“네.”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고 한쪽을 가리켰다.“지난번 시승 하셨던 모델로 준비해드릴까요?”“네. 준비해주세요.”잠시 후, 고급스러운 빨간색 스포츠 카 문이 열리고 이현이 운전석에 자리 잡았다.태하 역시 늘 즐겨 타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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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우주와 함께 미술 학원을 찾은 은하는 잔뜩 긴장했다.‘아뜰리에 루미에르(Atelier Lumière)’ 프랑스어로 '빛의 화실'이라는 뜻을 가진 학원은, 화려한 대형 학원들과 달리 작지만 따뜻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었다. 가장 먼저 은은한 물감 냄새와 함께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전체적으로 우드톤 가구와 캔버스들이 어우러져 있었고, 벽에는 학생들이 그린 작품들이 걸려있었다.붐비는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 느낌이 은하에겐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그때, 누군가 우주와 은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깔끔한 셔츠에 낡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손에는 약간의 물감이 묻어 있었다. “어서 오세요. 루미에르 원장, 서도영이라고 합니다.”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따뜻했다. 억지로 다정한 척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느낌이랄까. “안녕하세요. 강우주 입니다.”“아, 아까 전화 주신 분이시죠?”“네.”“상담실로 안내해 드릴게요.”우주와 은하는 원장님의 안내에 따라 상담실 안쪽에 마련된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은하는 여전히 긴장한 듯 가방 끈을 꼭 쥐고 있었고, 우주는 그런 은하를 말없이 지켜보았다.“안녕, 너구나. 은하.”“네. 안녕하세요.”“그림은 배워본 적 없다고?”“네.”“지금은 왜 배우고 싶은 거야?”한참을 고민하던 은하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잠시 시선을 내리 깔았다.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냥요.”“응? 그냥?”“그림 그릴 땐,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이 흐르니까요.”“그거면 충분하지.”원장님의 반응은 마치 ‘괜찮은 이유네.’라고 말하는 듯 자연스러웠다. 원장님이 천천히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놓인 연필 하나를 집어들었다.“그럼, 오늘은 여기서 아무 생각 없이 뭐든 그려볼래?”은하 쪽을 향해 건네진 연필. 그의 말이 이어졌다.“잘 그리고 싶은 마음은 내려놓고, 일단은 그냥 손부터 움직여 보는 거야.”무언가에 이끌리듯,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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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뭐? 등교를 혼자 한 다고?분명한 뜻이 담긴 말은, 마치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심처럼 들려 우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매일 아침 학교에 데려다 줬다. 그건 너무나도 익숙하게 자리 잡은 하루의 시작과도 같았는데. 일단, 은하의 표정부터 살폈다. 다행히 불안해 보이진 않았다. 주저하는 기색도 없었다.그래서 우주는 그런 은하를 믿어 보기로 했다.“정말 괜찮겠어?”“응.”“알겠어. 그럼 그렇게 하자.”*** 다음날 아침,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쨍한 아침 햇살이 거실 중앙을 부드럽게 비췄다.아침 식사를 끝내고 가방을 챙기는 은하.우주는 눈치를 보며 마음을 다잡고는, 은하의 방문을 슬쩍 열었다.“오빠 먼저 출발할게. 학교랑 학원 잘 다녀오고.”“응. 이따 봐 오빠.”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마치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잠시 후, 현관 문이 열리고 은하의 작은 발이 정원을 가로질렀다.“이미 해봤잖아. 괜찮아. 할 수 있어.”은하가 혼자 대문 밖으로 나오자, 은하의 집 근처를 맴돌던 이현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뭐지? 오늘은 왜 오빠가 안 데려다 주지?”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학교를 향해 걸어가는 은하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우주가 은하를 데려다 준다는 걸 알면서도, 이현은 매일 아침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그러고는 은하가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아무도 모르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분명, 오빠가 먼저 출근을 했고, 강은하는 혼자 등교를 하고 있다?싸운 건가? 갑자기 왜 이러지?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답답하기만 한 이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드디어 용기를 낸 것이다. 마치 우연이라도 된다는 듯 은하의 옆에 바짝 붙으며 말을 걸었다.“뭐냐? 혼자 학교 가냐?”은하는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백이현? 네가 왜 여기 있어?”“나도 학교 가는 건데?”뻔뻔한 대답에 기가 찬 듯, 이현을 한 번 흘겨보더니 다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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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교실 문을 열고 은하가 들어서자, 태하의 시선이 기다렸다는 듯 은하를 향했다.표정이 빠르게 굳어져 버렸다.'뭐야? 백이현이 왜 은하 뒤에 서 있는 거지?'민희 역시 적지 않게 당황한 듯 눈을 크게 키우더니, 자리에 투덜거리며 앉은 은하에게 곧장 다가갔다.“뭐야? 왜 둘이 같이 들어와?”분명한 의문과 약간의 흥미가 섞여 있는 눈빛.평소라면 절대 가까워질 일이라곤 없던 두 사람이, 오늘은 나란히 등교하는 걸 보고야 말았으니. 어떻게 안 궁금해. 이걸 어떻게 참아. 그러나 은하는 그런 반응조차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몰라. 짜증나.”“헐, 뭐야? 진짜 같이 등교한거야?”“…아니거든.”은하는 억지로 한숨을 삼키며 교과서를 꺼냈다.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백이현과의 등굣길이 떠올랐다.‘갑자기 왜 저러는거야?’***그날 오후, 점심시간.눈 앞에서 태연하게 음료 캔을 따고 있는 이현을 향해 태하가 무심한 듯 다가갔다.사실, 함께 등교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난 뒤 그는 수업시간 내내 아무런 집중을 할 수조차 없었다. “백이현. 아침에 뭐냐.”“뭐가?”“은하랑 왜 같이 들어 오냐고.”“그냥. 이제 피하기만 하는 거, 그만 하려고.”태하는 은하의 반응을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짜증과 불쾌감이 가득한 표정. 그건,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고.“은하는 불편해 하는 것 같던데?”“상관없어.”“너 혹시 또 장난치려는 거면….”이현의 눈빛에 화르르 끌어올랐다. 장난? 그따위 철없고 한심한 장난은 진작에 끝났는데.“야, 정태하.”“응?”“나 이제 강은하 안 괴롭혀. 아니, 누구든 강은하 괴롭히면 가만 안 둘 거야.”확신에 찬 말투에 태하의 표정이 더 단단히 굳었다. 동시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현은 그런 태하의 표정을 느릿하게 훑어보고는, 텅 빈 캔을 찌그러뜨려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그러니까 너도, 더는 헛소리 하지 마라.”***수업이 끝난 뒤 청소 시간.말없이 어딘가로 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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