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잊었나 싶으면 그날의 끔찍한 기억은 꿈으로 찾아왔다.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털썩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켰다. 그럼에도 호흡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날은 악몽처럼 그의 삶을 따라다녔다. 벌써 13년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는 그날에 갇혀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는 맨 아래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비밀스럽게 숨겨둔 검은색 스프링 노트가 있었다. 노트를 꺼내어 한장씩 페이지를 넘겼다. 매 페이지마다 한 사람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모두 그가 오랜 시간을 들여서 그린 것이다.
“최유라…”
그가 그린 한 사람은 운정고등학교의 여신 유라였다. 문득 어제 은성이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가끔 네가 유라를 보고 있는 걸 봤어.”
“혹시 유라 좋아해?”
“사람들은 자주 착각해. 잘해주면 사랑하는 거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맞아. 상대한테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거일 수도 있어.”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친구와 단순한 대화였다. 하지만 유라의 곧게 꽂힌 시선이 그 말이 은성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직접적으로 은성에게 저런 이야기를 한다면 선우가 나중에라도 유라를 찾아가서 한마디를 할 것이다. 그런 것들을 피하기 위해 저린 짓을 한다는 것이 뻔히 보였다. 유라의 친구는 보란듯이 맞장구를 쳤다.“내 친구도 남자친구가 엄청 잘해줘서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까 그냥 스킨십을 원한거였더라고.”“그래. 그렇다니까. 멍청한 애들이나 그게 뭐 대단한건줄 알고 좌지우지되지.”그때 멀리서 선우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달려오자 이를 발견한 유라가 친구하고 황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은성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은성아. 무슨 일이야?”“으응? 왔구나.”아무렇지 않은 척 은성이 싱긋 웃었다. 선우가 리치콘의 포장을 벗겨 먹기 좋게 만들어 내밀었다.“녹기 전에 먹어.”“응. 고마워.”그녀는 화답하듯 미소를 짓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어째서인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학교가 끝나고 은성은 선우와 함께 학원으로 향했다.“내일 모레
그러나 의지와 다르게 그의 눈꺼풀은 조금씩 내려왔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선우 말대로 유학 가면 매일 이 모습을 볼 수 있을까.“그러면 유학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모든 비용을 선희가 부담하는 것도, 그 이후 한성그룹에서 일할 거라는 경자의 기대도 여전히 부담스러웠다.하지만 선우와 함께하는 행복한 일상에 대한 기대가 조금 더 커졌다. 항상 붙어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함께 둘이서만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게 꼭 유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이제 몸을 일으켜야 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 더 곁에 있고 싶었다.“5분만 있다 나가자.”그대로 잠들어 버렸다.“일찍 일어나서 다행이다.”5시 30분이면 고용인들이 출근할 시간이다. 이제 10분 남짓 남았으니 빨리 움직여야 했다. 혹여 선우가 깰까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무심코 고개를 돌리는데 책장에 꽂혀있는 검은색 스프링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그 노트가 굉장히 거슬렸다. 꼭 봐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노트로 손이 가려다가 멈췄다.“한은성, 너 뭐하는 거야.”아무리 선우가 남자친구라지만 그의 물건을 마음대로 확인할 자격은 없었다. 핸드폰을 보니 벌써 2분이 더 지나가 있었다.“빨리 나가자.”그렇게 방에서
“흐윽…”은성이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조금 정신이 들었다. 티슈를 가져와 눈물을 닦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제야 그녀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예상했지만 너무 슬프다.”“예상… 했어?”“응. 도희가 이 영화 봤는데 둘이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거든.”은성이 고개를 들어 선우를 봤고, 그제야 그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충격 받았어?”“조금…”사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충격적이었다. 은성을 안고 싶은 생각을 잊을 만큼 강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렇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그녀가 입을 열었다.“뭐가 충격이었는데?”“당연히 남녀주인공이 잘 사는 해피엔딩인줄 알았어.”불퉁하게 입이 나온 것을 보고 은성이 피식 웃었다.“네가 영화가 이렇게 감정이입하는 거 보니까 신기하다.”은성은 감정이입을 곧 잘해서 주인공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그러나 선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은성하고 있을 때만 제대로 작동됐다. 은성의 감정에는 반응하는 반면 타인의 감정에는 무감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감정의 동요가 있는 경우도 없었다. 그런 그가 드물게도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은성이 양손으로 선우의 얼굴을 잡았다. 그리고 살짝 볼에 입맞췄다. 그제야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
그가 죽고 장례식장에서 선우와 대면했다. 영정사진 앞에서 적의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아들을 말이다.삶에서 그렇게 두려웠던 순간이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자격조차 없어서 못 박힌듯이 서있었다.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온몸이 굳어지면서 사방이 검은 방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그때 따듯한 체온이 느껴졌다. 치원이 손을 잡고 있었다. 딸이 자책하는 것이 가슴아프다는 듯 늙은 아비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자책하지 말거라. 네 탓이 아니야. 그저 사고였어.”“그저 사고라기엔… 세사람이 죽었어요.”참고 있던 눈물이 결국 맺혔다.*지이잉 지이잉연속해서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혹시 경자가 들을까 재빠르게 무음으로 해놓고 문자를 확인했다.[집에 도착했어.][보고 싶어.][언제 와?]“지금 가.”나지막히 말하고 창문을 열었다. 창틀에 걸터앉아서 신발을 신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다행히 안전하게 착지했다. 그 다음부터는 어렵지 않았다. 고용인들이 들어가는 뒷문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본채로 들어섰다.“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떨리네.”어렸을 때는 이러고 많이 놀았다. 그냥 어른들 모르게 선우와 둘이서 노는 게 재밌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안 하게 되었다. 사귄 이후에는 혹여 선을 넘게 될까 더 조심했던 것도 있었다.‘오늘 선우가 못 참으면 어떻게 해?
“아,아니…”종석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의 아버지는 선희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앞에서 감히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뒤에서는 그래봤자 여자이고, 실패한 결혼을 한 이혼녀일뿐이라고 별별 욕을 했지만 앞에서는 비굴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조아렸다.선우는 웃고 있었으나 그의 말은 명확한 경고였다. 감히 은성에 대해서 입에 올리지 말라는 뜻이다. 그 뜻을 잘 알아들은 종석은 꼬리를 말고 자리를 떠났다. 그때 선희가 다가왔다.“어머니란 말 오랜만에 듣는구나.”“…”선우는 어머니란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대체로 선희를 부르지 않았으며 꼭 불러야하는 일이 있으면 회장님이라고 했다. 그녀가 자신을 낳았고 6살 때부터 키웠으나 어머니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인정하는 거 자체가 아버지, 삼촌, 할머니를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날의 상처는 무엇으로도 회복되지 못했다. 이를 선희도 잘 알았다. 그래서 답이 없는 아들을 보면서도 핀잔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대신 아들이 좋아할만한 화제를 꺼내기로 했다.“유학 갈거니?”“은성이가 간다고 하면 가야죠.”피식 웃음이 났다. 하나뿐인 자식이고 한성그룹의 유일한 후계자가 하기에는 너무나 한심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웃음이 났다. 젊었을 적 동식을 쫓아다녔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래서 은성이는 간대?”“…고민중이예요.&rdq
“삼촌, 이거 삼촌이 좋아하시는 정명진 작가 그림이예요.”“고맙구나.”김치원 명예회장의 산수연은 친척들과 교분이 있는 사람들로 붐볐다. 치원의 곂에서 선희는 그림자처럼 손발 역할을 했다. 반면 선우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었다. 중간중간 치원의 시선이 불퉁하게 선우를 응시했다. 유일한 손자가 곁을 지키지 않는 것이 불만스러운 것이다.“흠흠!”헛기침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였으나 선우는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선희가 그만하라는 듯 치원에게 눈치를 주고나서야 헛기침이 멈췄다. 선우의 입이 나왔다.‘지금 불만을 느낄 사람이 누군데. 은성이랑 보낼 시간을 침해받은 건 나야.’몹시도 불만스러웠다. 이곳에 오기전 은성과 시간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 불만은 더 높아졌으리라. 그래도 그녀가 한 약속 덕분이 이 지루한 시간을 버틸 수가 있었다.“이따 밤에 오면 우리 같이 있자. 내가 방으로 갈게.”은성하고 단둘이 있는 시간 자체가 선우에게는 너무 귀했다.학교에서는 애들이 있고, 집에서는 고용인들이 있다. 단둘이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나마 등하교 길에는 둘만 있을 수 있었지만 그건 너무 짧았다.‘늦게까지 붙잡고 있어야지.’사실 마음 같아서는 아침까지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 은성이 곤란해질 것이다.‘12시쯤에는 보낼거야.’함께 있는 생각만으로 마음이 들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녀와 보내는 시간은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유독 짧았다. 10시간을 붙어있어도 1시간처럼 느껴졌다. 반대로 1시간을 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