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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통화 기록

Author: 신도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3 18:00:57

“야, 너 기억 나냐?”

꽤나 취한 것 같은 J가 정하에게 물었다. 테이블엔 소주 3병과 안주 접시들이 놓여 있었다. 정하는 젓가락으로 닭발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는 J를 쳐다보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너랑 친해지고 얼마 안 됐을 때였을 거야. 한 4년 전쯤? 그때 나 진영이랑 헤어지고, 엄청 울었었잖아.”

그 말에 정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어두웠던 표정이 편해졌다.

“기억 나지. 형 그때 형수님이 다시 받아주기 전까지 매일 술 마셨잖아.”

“맞아. 하, 내가 그때 술만 안 먹었어도 지금 가왕 자리 두 번은 해 먹었다.”

"아주 세상을 다 잃은 느낌이었지, 그때 형."

정하가 입꼬리를 올리며 소주잔을 들이켰다. 단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위스키보다 도수가 낮은데 알코올의 향은 더욱 진하게 들어왔다. 표정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근데 넌 요즘 왜 그렇게 죽상이냐?”

“내가?”

“응. 누가 보면 나라 잃은 사람인 줄 알걸.”

J의 물음에 정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오늘따라 소주가 썼다. 스무살 때 처음 소주를 먹을 때가 생각나는 맛이었다.

“보라 때문에?”

“꼭 그것만은 아니고.. 입시생 하나가 성대결절이래. 실력도 있고 열심히 하던 애였는데.”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정하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빈 소주잔을 만지작거렸다. 울먹이던 다솔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신에게 무어라 말하려던 보라의 얼굴도 함께. 생각이 복잡했다.

“그만 일어나자 형. 나 내일 아침부터 레슨 있어.”

“이거 안주만 다 먹고 가자. 아깝잖아.”

J가 정하의 빈 소주잔에 술을 채웠다. 일어나려던 정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30분, 한 시간.. 어느새 테이블 위에는 빈 소주병이 몇 개나 늘어 있었다.

“야 임마, 정신 좀 차려봐. 일어나자던 새끼가 뭘 이렇게 많이 마셨어.”

정하를 일으키려던 J는 결국 도로 주저앉았다. 60kg대의 정하가 취하니 실제 몸무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이런 모습을 보라가 봐야 하는데..”

J의 혼잣말에 눈을 감고 움직이지도 않던 정하가 눈을 번뜩였다. 그리곤 이내 본인의 휴대전화 잠금화면을 풀었다.

"야, 너 뭐하려.."

J가 미처 정하를 말리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J는 보라가 전화를 안 받을 줄 알았다.. 그래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잘 거라고 생각했다.

“여보세요, 보라 씨!”

-

새벽 3시 15분. 잠이 오지 않았다. 보라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 불을 다시 켰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불완전, 결핍, 기억.. 메모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꼭 본인의 이야기 같았다.

띠리링-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새벽에 누구지’ 싶은 마음에 휴대전화 화면을 무심결에 쳐다봤다.

‘우정하 프로듀서님’

보라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벨 소리가 두 번 울리기도 전이었다. 고민따윈 없었다. 그냥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여보세요? 프로듀서님?”

“보라 씨, 왜 안 자요?”

정하의 첫마디였다. 무어라 대답할까 잠시 생각했다. 고민이 있어 자지 못했다, 프로듀서님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문장만 생각났다. 고민하는 보라와 다르게 전화기 너머는 아주 소란스러웠다.

“야, 이 밤에 보라한테 전화를 왜 해 새끼야. 내일 이불킥을 얼마나 하려고. 빨리 끊어!”

“보라 씨, 끊었어요??”

순간 보라는 입가를 살짝 눌렀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도 자꾸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민이 시작된 이후로 오랜만에 진심으로 나온 웃음이었다. 새벽 3시가 넘어서 온 그 전화가 보라를 안심시켰다.

“프로듀서님 많이 취하셨나 봐요. 괜찮으세요?”

“어후 야, 이 새끼 하나도 안 괜찮아. 내가 내일 얘한테 전화하라고 할게. 밤에 미안하다 보라야. 잘자.”

전화가 끊겼다. 보라는 괜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더 통화해도 되는데.. 통화 기록에 남아있는 ‘우정하 프로듀서님’이라는 이름을 한참 바라보다가 겨우 화면을 껐다.

왠지 오늘은 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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