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Bab 211 - Bab 220

289 Bab

제211화

“어차피 내가 떠나도 문초연이 있잖아요. 두 사람을 방해할 사람이 없으니, 문초연을 위해서라도 이혼 서류에 사인할 거예요.”‘결국 시간문제일 뿐이야.’“도착하면 잊지 말고 연락해.”이담이 반달처럼 환한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알겠어요.”“어딜 가는 길이지?”진혁은 휠체어 팔걸이에 팔꿈치를 기댄 채 열 손가락을 단단히 깍지 끼고 있었다. 경호원이 천천히 휠체어를 밀며 다가왔다.이담의 미소가 굳어졌다. 순식간에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당황한 기색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은호가 진혁을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하 대표님이 병원에서 요양 중이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사실이었군요.”“권 대표님께서 이리 신경 써주시다니. 역시 하씨 집안의 예비 사위답습니다.”은호가 입가에 걸렸던 웃음기를 거두며 받아쳤다.“그건 하 대표님을 실망시켜드려야 할 것 같군요.”“마음을 바꾸셨습니까?”“사람들 앞에서 거절하지 않은 건, 하씨 가문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일이 커져봤자 곤란한 건 하씨 가문일 테니까요.”은호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진혁을 쏘아보았다.“설마 여동생을 억지로 제게 시집보내기야 하겠습니까?”자세를 고쳐 앉은 진혁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시선이 은호 뒤에 선 이담을 스치고 지나갔다.“권씨 가문의 어르신께서 정말로 믿어버리실까 봐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은호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이담아.”진혁이 나지막하게 이담을 불렀다.“이리 와.”진혁이 입원한 지 사흘째, 이담은 줄곧 병원에 있었다. 하지만 진혁의 병실에 머물지도, 찾아오지도 않았다.이담이 입술을 꽉 깨물면서 진혁에게 다가갔다.“나 병실까지 데려다 줘.”경호원이 눈치껏 뒤로 물러나자, 은호와 짧게 눈빛을 교환한 이담은 휠체어를 밀며 자리를 벗어났다.꼭대기 층으로 와서 진혁을 병실 안으로 밀어 넣은 뒤, 이담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별일 없으면 이만 가볼게.”휠체어에서 일어난 진혁이 단숨에 이담에게 다가갔다. 곧바로 문을 닫은 뒤 이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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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진혁은 갑작스럽게 품으로 파고드는 초연을 피하지 못했다. 진혁이 미처 밀어내기도 전에, 초연의 눈에도 병실 안에 선 이담이 들어왔다.무표정하게 지켜보던 이담이 실소를 터뜨렸다.“내가 괜히 방해했네.”초연이 입을 떼기도 전에, 초연을 거칠게 떼어낸 진혁이 이담에게 다가갔다.“먼저 집에 가서 기다려.”이담은 아무 대답 없이 돌아서서 나갔다.초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담의 뒷모습을 쫓는 진혁의 앞을 가로막곤 애원했다.“진혁 씨, 나 정말 병원에서 쫓겨나기 싫어. 할머님한테 말 좀 잘해주면 안 돼?”초연이 손을 뻗어 옷자락을 붙잡는 순간, 진혁이 그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초연은 곧바로 얼어붙었다. 얼음장 같은 진혁의 눈빛과 마주치자, 초연의 몸은 절로 움츠러들었다.“진혁 씨?”“진경훈하고 언제부터 붙어먹은 거야?”진혁이 꿰뚫어 볼 듯 쏘아보았다. 싸늘한 눈빛에는 억눌린 분노와 짙은 실망감이 서려 있었다.초연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다급히 변명했다.“진혁 씨,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진 대표님이랑 어떻게...”“KH호텔 CCTV.”초연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리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진혁이 수납장에 기댄 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없이 무심한 눈으로 초연을 내려다보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안 비서를 시켜 KH호텔 CCTV를 확인하고 나서야 알았어. 진경훈이랑 한두 번 잔 게 아니더군. 수시로 만나서 같은 방에 묵었잖아.”초연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채 펑펑 눈물을 쏟으면서 경훈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았다.“진혁 씨, 아니야! 진경훈이 억지로 날 끌고 간 거야!”“내가 진혁 씨 여자인 줄 알고, 복수하겠다고 강제로 관계를 가진 거라고!”“반항하면 준희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어. 하씨 집안에 있어도 어떻게든 손을 쓰겠다고 했단 말이야!”“이런 판국에도 아직도 거짓말을 해?”진혁이 헛웃음을 쳤다. 뿌연 연기 너머로 진혁의 음울한 시선이 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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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초연은 옷자락을 꽉 움켜쥔 채 울음을 터뜨렸다.“나 아니야! 진짜 내가 한 짓 아니라고! 내가 한 짓은 다 인정했잖아. 진혁 씨, 이번 일은 정말 아니야.”진혁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이내 경호원을 불렀다.병실로 들어온 경호원이 바닥에 주저앉은 초연을 일으켰다.“앞으로 경성병원에 있을 필요 없어. 경성시립병원으로 가.”초연은 그대로 굳어버렸다.진혁의 시선이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다.“앞으로 두 번 다시 연락하지 마. 준희 몸 다 나으면 사람 시켜서 네 곁으로 보낼 테니까.”진혁이 눈짓하자 경호원이 초연을 끌고 나갔다.넋이 나간 채 병원을 나온 초연은 차에 올라탄 뒤에도 방금 들은 말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어떻게 저렇게까지 매정할 수가 있어?’‘내가 이대로 심이담한테 진 거라고?’‘아니, 절대 이대로는 못 끝내!’‘어떻게든 사태를 돌이킬 방법을 찾아야 해!’...이틀 뒤, 진혁이 예정보다 일찍 퇴원했다.그린힐로 돌아와 현관에 놓인 이담의 구두와 선반 위의 가방을 보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바를 지나치던 진혁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시선이 벽에 걸린 달력에 머물렀다.며칠 뒤 날짜에 동그라미가 다섯 개나 그려져 있었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특별한 날은 아닌데.’마침 이담이 전화를 받으며 침실에서 걸어 나왔다.“벌써 밑에 도착하셨어요? 그럼 지금 내려갈게요.”고개를 들다가 진혁과 눈이 마주치자, 이담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진혁이 달력에서 시선을 거두고 마주 보았다. 이담은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이었다.“어떻게 벌써 퇴원했어?”“내가 퇴원하는 게 싫어?”“아니.”“어딜 가는 길이야?”진혁이 빤히 이담을 응시했다.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에 이담은 등골이 서늘해졌다.크게 심호흡을 한 이담이 대답했다.“차 보러 가기로 했어.”“차를 보러?”“내 차 팔고 새 차로 바꾸려고. 안 돼?”진혁의 미간이 스르르 풀렸다.“돼.”진혁이 한 걸음 다가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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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경찰이 오빠를 찾아내기 전에, 오빠가 이미 도망쳐 나왔다고 하더라고. 그때 오빠랑 같이 있던 여자애가 있었다는데, 그게 심이담인지는 나도 확실치 않아.”지연이 어깨를 으쓱하곤 덧붙였다.“어쨌든 우리 오빠는 납치 사건 때문에 돌아오자마자 고열로 며칠이나 사경을 헤맸어.”“깨어난 뒤로는 그때 일을 싹 다 잊어버렸고, 할머니도 그 일에 대해선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하셨지.”초연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미세하게 굳어졌다.‘하씨 가문처럼 깐깐한 가문에서, 그 노인네가 날 그리 눈엣가시로 여기면서 심이담 같은 애를 어떻게 순순히 받아들였나 했지. 다 이유가 있었던 거였어.’‘하진혁은 납치당했던 일도, 목숨을 구해준 은인도 다 잊어버렸단 말이지... 이거야말로 나한텐 절호의 기회잖아!’...다음 날 아침. 의사가 약속된 시간에 맞춰 진혁의 상처를 처치하러 그린힐로 찾아왔다.이담이 막 방을 나서려던 순간, 진혁이 이담의 손목을 붙잡았다.“네가 해.”이담이 힐끗 쳐다보자, 의사가 멋쩍게 웃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사모님도 의사라고 들었습니다. 사모님께 맡기겠습니다.”심계화가 의사를 배웅하러 나가자, 침실에는 금세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진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네가 직접 낸 상처라 건드리기 껄끄러워?”이담이 입술을 꽉 깨물곤 이내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진혁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구급상자에서 연고와 거즈를 꺼냈다.“내가 손놀림이 좀 거칠어. 아파도 알아서 참아.”투박한 손길에도 진혁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렸다.“칼로 찌를 때도 참았는데, 이까짓 걸 못 참을까.”“네가 문초연을 밀쳐내지만 않았어도 네가 찔릴 일은 없었어. 네가 자초한 일이야.”진혁이 서서히 웃음기를 거두었다.“평생을 감옥에서 썩고 싶어?”“나쁠 거 없지.”한없이 무심하고 건조한 태도에 진혁의 안색이 불쾌하게 굳어졌다.“이담아, 앞으로 다신 그런 미친 짓 하지 마.”이담이 고개를 끄덕였다.‘어차피 우리한테 앞날 따윈 없을 텐데.’분명 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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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이담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하진혁이 나한테 이렇게 다정하고 애틋한 행동을 하다니.’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이담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내가 언제 리세 호수에 가고 싶다고 했어?”진혁이 이담을 쳐다보며 대답했다.“우리 처음 신혼여행 가자고 했을 때.”이담이 진혁의 아내가 된 지 겨우 두 달째 되던 날이었다.그제사야 이담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그때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서, 남들처럼 평범하고 달콤한 신혼여행을 꿈꿨었다.당시 이담이 고심 끝에 골랐던 곳이 바로 S국의 리세 호수였다.배를 타고 호수를 유람하면서 호숫가 마을도 둘러보고, 두 손을 맞잡고서 중세풍의 자갈길도 걷고 싶었다.강변에서 피크닉을 하며 따사로운 햇살을 쬐고, 포도밭에 들러 와인을 시음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폭포도 함께 구경하고 싶었다.모든 여행 계획은 이담의 머릿속에 완벽하게 짜여 있었다.하지만 잔뜩 부푼 마음으로 말을 꺼냈을 때, 돌아온 건 얼음장처럼 차가운 거절뿐이었다.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코끝이 찡해졌다. 진혁의 말에 감동했기 때문이 아니었다.진혁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한없이 비굴하게 매달렸던 과거의 자신이 너무도 처량하고 비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이담은 울컥하는 감정을 숨기려고 일부러 웃음을 터뜨렸다.“근데 어쩌지. 나 이제는 리세 호수 가기 싫어졌어.”“그럼 어디로 가고 싶은데?”“아무 데도 가기 싫어. 그냥 출근해서 소처럼 일이나 하는 게 딱 좋아.”이담은 진혁을 똑바로 마주 보며 싸늘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신혼여행 같은 거 갈 필요 없어. 시간 낭비, 감정 낭비일 뿐이니까.”진혁의 품에서 빠져나온 이담이 몸을 일으켰다.“바빠서 이만 가볼게.”진혁의 가슴이 커다란 돌덩이에 짓눌린 듯 턱 막히면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시간 낭비, 감정 낭비.’그건 6년 전, 바로 자신이 이담에게 내뱉었던 모진 말이었다. 그 말이 돌고 돌아서 완벽한 부메랑이 되어 진혁의 심장에 푹 꽂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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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이담은 병원 단톡방을 나가기 전, 병원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을 메시지 하나를 툭 던졌다.진혁의 이름이 나와 있는 혼인관계증명서 사진 한 장에 단톡방은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예전에는 밝히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네요.]여론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진혁의 여자친구로 알려졌던 초연은 남의 가정에 뻔뻔하게 끼어든 상간녀로 완벽하게 전락해버렸다.[맙소사! 하 대표님이랑 심 선생님이 부부였다고?!][결혼 6년 차라니! 전혀 몰랐어!][그럼 문 과장이 진짜 상간녀였던 거네. 하 대표님이 바람피운 거잖아! 심 선생님 너무 불쌍해!]초연도 아직 단톡방에서 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이담이 혼인관계증명서를 까발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비밀 결혼 아니었어?’‘갑자기 왜 이걸 터뜨린 거지? 설마 하진혁이 허락한 건가?’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소파에 주저앉고 말았다.만약 지금 병원에 있었다면 쏟아지는 비난에 정신도 못 차렸을 것이다.그때, 다른 과 사람들이 개인 톡으로 조롱과 욕설을 쏟아냈다.[문 과장님, 알고 보니 진짜 상간녀는 과장님이셨네요.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시립병원으로 쫓겨났다면서요? 상간녀 짓 하다가 하씨 집안에 들켜서 쫓겨난 거 아니에요?][진짜 뻔뻔하네요. 대체 무슨 낯짝으로 심 선생님을 모함하신 거예요?]초연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초연은 다급히 이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심이담 씨, 미쳤어요? 감히 맘대로 진혁 씨랑 결혼한 걸 까발려요? 진혁 씨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이래요!]택시에서 내린 이담은 업무용 폰으로 온 초연의 메시지를 확인한 뒤 곧바로 답장을 남겼다.[하진혁이 인정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에요. 나랑 하진혁이 아직 이혼 안 한 부부라는 게 팩트고, 당신이 상간녀라는 것도 팩트니까요.][사랑받지 못하는 결혼이 무슨 결혼이에요! 나랑 진혁 씨는 서로 사랑한다고요!]이담이 실소를 터뜨렸다.[그래요, 나 사랑 못 받아요.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진혁이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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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진혁은 천천히 국을 한 모금 넘기더니, 아무 반응도 없는 이담을 보며 물었다.“왜? 마음에 안 들어?”퍼뜩 정신을 차린 이담이 보석함 뚜껑을 닫았다.“아니, 마음에 들어. 고마워.”진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부드러운 말투로 덧붙였다.“나한테 예의 차릴 필요 없어.”그때 진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초연의 집에서 일하는 고용인이었다.진혁이 전화를 끊었지만 이내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은 진혁이 차갑게 내뱉었다.“무슨 일이죠?”[대표님! 문초연 씨가 자살 시도를 했어요!]수화기 너머 고용인의 목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조용한 거실이라서 이담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문초연이 자살 시도를 했다고?’‘웃기고 있네. 또 무슨 수작이겠지.’진혁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담을 쳐다보았다. 이담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희미하게 웃었다.“가봐.”“그리고.”머뭇거리던 진혁이 이내 무거운 시선으로 당부했다.“빨리 해결하고 올 테니까 기다려.”진혁이 재킷을 집어 들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이담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차갑게 가라앉았다.핸드폰을 꺼낸 이담은 심계화에게 내일과 모레 이틀 동안 휴가를 다녀오라고 메시지를 남겼다.진혁이 초연의 집으로 달려갔을 때, 욕실 밖의 고용인은 사색이 된 채 허둥지둥 구급차를 부르고 있었다.안으로 뛰어들어가자, 욕조 안에 쓰러진 초연이 보였다.밖으로 늘어진 손목의 상처에서 붉은 피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면서, 하얀 타일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문초연!”진혁이 욕조로 다가간 진혁이 고용인에게 구급상자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퍼뜩 정신을 차린 고용인이 다급히 구급상자를 찾으러 간 사이, 진혁은 상처를 꽉 눌러 지혈하면서 계속해서 초연의 의식을 깨웠다.초연이 힘겹게 눈을 떴다.“날 살리지 마. 난 벌받아 마땅해. 우리 준희만 잘 부탁해.”고용인이 구급상자를 가져오자, 진혁은 피 묻은 손으로 붕대를 뜯어 상처 부위를 단단히 감쌌다.“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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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이만옥은 진혁이 그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른 진혁의 곁에 다가가 앉으면서 타일렀다.“진혁아, 그건 네가 8살 때 일어난 일이야. 너무 오래돼서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해. 굳이 애써 떠올릴 필요도 없는 일이야.”진혁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묵묵부답이었다.달칵-응급실 문이 열리면서 의사가 나왔다.“문초연 환자분 보호자 계십니까?”진혁이 번쩍 눈을 뜨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접니다.”“환자분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진혁이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이만옥이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먼 친척이에요.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제가 엄마처럼 돌봐주고 있어요.”의사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출혈이 좀 있었지만 며칠 푹 쉬면 금방 회복될 겁니다.”의사가 자리를 뜨자, 이만옥이 진혁을 흘겨보며 쏘아붙였다.“너 대체 왜 걔 일까지 이렇게 신경 쓰는 거니? 너한테 버젓이 아내가 있다는 거 잊지 마.”진혁이 한참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했다.“이담이는 이해해 줄 겁니다.”이만옥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진혁아, 세상 어떤 여자가 자기 남편이 밖에서 딴 여자 챙기는 걸 이해해 주겠어?”“만약 쿨하게 넘기는 여자가 있다면, 그건 그 여자 마음에 남자는 눈곱만치도 없다는 뜻이야.”이만옥이 떠난 뒤, 진혁은 옆에 늘어뜨린 손을 꽉 움켜쥐었다.‘이담이 마음에 내가 있기는 한 걸까?’‘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지.’‘내게 시집온 이상, 심이담은 온전히 내 사람이니까.’진혁의 미간에는 서늘한 살기가 번뜩였다.‘만약 그 마음속에 다른 놈이 자리 잡고 있다면 절대 용납 못 해.’...오후 늦게 이담의 핸드폰이 울렸다. 늦을 테니 저녁은 기다리지 말라는 진혁의 문자였다.이담은 핸드폰을 가볍게 던져두었다.‘어차피 이젠 아무 상관도 없어.’이담은 진혁의 전화번호와 메신저를 모두 차단했다.짐을 다 싸고 나니 캐리어 세 개가 전부였다.개인 물건만 챙겼을 뿐, 하씨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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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병실 안은 무거운 적막이 감돌았다. 잠시 후, 진혁은 초연의 손을 떼어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 있으면, 경호원한테 연락해.”진혁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나서자, 잔뜩 충혈된 시선으로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초연은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내가 생명의 은인이라는 걸 알게 되면, 예전처럼 다시 날 특별하게 대해줄 줄 알았는데.’‘내 예상하고는 전혀 다르게 기뻐하는 기색도 전혀 없었어.’‘마치 그 은인이 내가 아니길 바랐던 것처럼!’병원을 나선 진혁이 차에 올랐을 때 안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한경미를 찾아냈다는 보고였다. 진혁은 그린힐로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한경미에게 향했다.도망치듯 경성으로 숨어 들어온 한경미는 줄곧 몸을 숨기고 지냈다. 이제 나올 때 챙겼던 돈마저 거의 바닥난 탓에, 결국 남편의 누나를 찾아온 것이다.행여나 누가 알아볼까 봐 프라이빗 룸 안에서도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던 한경미는, 시누이 박수정이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목도리를 풀면서 일어났다.“형님!”“형님이란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와?”박수정이 얼음장처럼 싸늘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너랑 성준이는 진짜 구제 불능의 천치 부부야. 그렇게 거대한 사고를 쳐서 하마터면 네 형부 앞길까지 망칠 뻔했잖아!”“형님, 그래도 성준 씨는 형님 친동생이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게...”“감옥에 들어간 순간부터 우리 집안에 그런 놈은 없어.”박수정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으며 냉랭하게 대꾸했다.“박씨 가문에 그따위로 먹칠을 할 순 없으니까.”“가문의 체면 때문이 아니라, 형님 남편분 연임에 흠집 날까 봐 그러는 거 아니에요? 다 같은 식구끼리, 기어코 이렇게까지 피도 눈물도 없이 굴어야겠어요?”한경미도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터뜨렸다.박수정이 입을 꾹 다문 채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때 룸의 문이 열리면서 건장한 체구의 경호원들이 들이닥쳤다. 그 뒤를 따라서 여유로운 걸음으로 들어온 안나가 박수정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한경미가 상황을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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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진혁은 손등에 핏대가 불거질 만큼 찻잔을 꽉 쥔 채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문초연을 그토록 맹목적으로 감싸는 것처럼 보였습니까?”“그게... 문초연이 직접 말했습니다. 대표님은 간섭하지 않으실 거라고요.”“게다가 대표님께서 심씨 집안을 워낙 혐오하시니, 심씨 집안 사람을 건드려도 절대 탓하지 않으실 거라고 했단 말입니다!”한경미는 덜덜 떨며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애초에 그런 확답이 없었다면, 감히 그런 미친 짓을 저지를 엄두나 냈겠는가!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혁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룸 안에는 숨 막힐 듯한 적막만이 감돌았다.진혁이 입을 꾹 다물고 있자, 한경미 역시 감히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기나긴 침묵 끝에 진혁은 한경미를 풀어주었다.룸을 빠져나온 한경미는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건 문초연을 팔아넘긴 게 아니야. 내가 살자고 그런 것일 뿐이지!’진혁은 텅 빈 소파에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미간을 짓누르는 자괴감이 밀려왔다.‘남들 눈에는 내가 그토록 문초연을 맹목적으로 감싸고도는 것처럼 보였던 건가?’‘이담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겠지...’‘그래서 이담이 그토록 날 증오했던 거야.’복부의 상처가 쑤시는 건지, 아니면 가슴 한구석이 미어지는 건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안나는 그런 진혁을 힐끗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이제야 그 상간녀를 얼마나 멍청하게 감싸고돌았는지 깨달은 모양이네. 하아, 진짜 욕할 가치도 없지!’...진혁은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그린힐로 돌아왔다. 거실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거실 불을 켠 진혁이 침실로 다가가서 문고리를 돌렸지만 문은 안에서 단단히 잠겨 있었다.진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담이 침실 문을 걸어 잠근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아직도 자신에 대한 원망이 깊게 남아 있을 거라고 짐작한 진혁은, 굳이 문을 두드려 깨우는 대신 조용히 발길을 돌려 손님방으로 향했다.다음 날 아침. 외출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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