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의 모든 챕터: 챕터 191 - 챕터 200

289 챕터

제191화

“내가 유산하면 자기한테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일 것 같아?”“나를 믿어볼 기회가 셀 수 없이 많았으면서, 당신은 단 한 번도 날 믿지 않았어!”“정작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은 감싸고 돌면서 말이야. 그러니까 날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런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진혁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이담은 홱 고개를 돌리고 가버렸다.멀리 걸어 나온 후, 이담은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았다.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또다시 북받쳐 올랐다. 마치 턱 밑까지 숨이 막히는 듯한, 지독한 원망과 깊은 증오였다.이담은 다시 간호사를 찾아가 어머니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담은 간호사의 어머니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간호사의 얼굴에 깊은 실망감이 드리웠다.“그러니까, 해고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말씀이시죠?”이담은 감히 확답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진혁이 이 일에 개입했으니, 진혁의 고집을 꺾을 수 있을지 몰랐다.“알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간호사는 사무실을 나섰다.간호사가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걸어가자 초연이 간호사를 불렀다.간호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문 과장님, 무슨 일이신가요?”이담의 사무실 쪽을 힐끗 쳐다본 초연이 시선을 거두며 간호사 앞에 멈춰 섰다.“어머니의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싶지 않아요?”“문 과장님, 그게 무슨...”초연의 붉은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초연은 간호사의 귓가에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였다.간호사의 눈에 놀라운 기색이 스치면서, 한참 동안이나 평정심을 되찾지 못했다....하씨 가문 본가.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허미란과 하동민은, 마동순에게 은호가 혼사에 동의했다는 소식을 전했다.마동순이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권씨 집안에서 동의했다고?”“권 대표가 승낙했으니 권씨 집안에서도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허미란이 이만옥을 힐끗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이참에 권 대표를 한번 식사 자리에 모시는 게 어떨까요? 두 아이가 서로 알아갈 시간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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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이만옥이 입을 열었다.“제가 전화해 봤는데, 일이 좀 있답니다.”하지만 사실 진혁이 오든 안 오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오늘 가장 중요한 일은 둘째네 집안의 ‘경사’였다.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은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30분 후, 허미란이 어두운 표정으로 은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방의 전원은 꺼져 있었다.두 번이나 다시 걸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허미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쳤다.‘감쪽같이 속은 거야.’마동순이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마동순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만옥이 참지 못하고 비웃음을 터뜨렸다.“권 대표가 동의했다고 하지 않았어?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놓고, 대체 사람은 어디 있는 건데?”“엄마, 다시 전화해 봐! 은호 씨한테 분명 무슨 일이 생겨서 늦는 걸 거야!”지연은 영문을 모른 채 재촉했다. 하동민 역시 안달을 냈다.허미란은 더 이상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새파랗게 질리면서 얼굴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그 모습을 본 하동민과 지연은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단박에 깨달았다.“이게 너희가 말한, 권 대표가 혼사를 수락했다는 증거냐?”마동순 역시 안색이 험악해졌다.“동민아, 미란아. 내게 솔직하게 털어놓거라. 대체 진실이 뭐냐?”“어머니, 그게...”허미란이 입을 꾹 다물고 침묵하자, 하동민 역시 그 일을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마동순이 눈살을 찌푸렸다.“지연이 네가 말해 보거라.”지연이 입술을 깨물었다.“그, 그 사람이 자기 입으로 직접 약속했다고요!”“직접 약속했다니, 그걸 어떻게 증명할 거야?”“모든 사람이 저랑 은호 씨가 같은 방에 있던 걸 봤잖아요. 그런 상황이었으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지금 뭐라고 했냐?”마동순이 탁자를 쾅 하고 내리쳤다.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은 이만옥조차 오랜만에 봤다.마동순은 개방적이고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었지만, 유독 하씨 가문의 자손들이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벌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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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강준은 지연의 고함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지연을 밖으로 끌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김미영이 시끄러워할까 봐 걱정된 것인지, 마침내 방에서 나온 은호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다 떠들었습니까?”지연은 억울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우리 엄마한테 식사하러 오겠다고 약속했잖아요!”“약속은 했죠.”은호가 코웃음을 쳤다.“하지만 반드시 가겠다고 한 적은 없지 않습니까?”지연은 굳어버렸다.“당신, 우리 가지고 논 거예요?”“먼저 장난을 친 건 당신들 아닙니까? 난 그대로 되갚아준 것뿐입니다.”이 순간 은호의 모습은 평소의 젠틀하고 예의 바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알고 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었어.’지연이 다급히 은호의 팔을 붙잡았다.“아니에요. 그건 우리 엄마가 한 짓이지,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요.” “게다가 우리 사이에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요? 은호 씨, 난 그냥 은호 씨랑 결혼하고 싶었을 뿐이라고요.”은호는 강준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눈짓했다. 강준이 떠난 후, 은호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며 말했다.“지난번에 이담 씨더러 남자에 목매는 호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본인 꼴이 어떤지 한번 보시죠. 남자 하나한테 시집가겠다고 체면이고 뭐고 다 내동댕이친 꼴 아닙니까?”지연은 멍해졌지만, 여전히 이담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걔는 우리 오빠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결혼한 거예요! 그래요, 그런 게 진짜 호구죠. 하지만 은호 씨는...”“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줄 어떻게 아십니까?”지연은 말문이 막혔지만 필사적으로 부인했다.“그럴 리 없어요! 내가 뒷조사도 다 해봤는데, 은호 씨 곁엔 여자가 없었다고요!”“내 뒷조사를 했다고요?”은호가 웃으며 셔츠 깃을 여몄다.“알아낸 정보들은 전부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뿐입니다. 본 것 중 진실이 몇 개고 거짓이 몇 개인 줄 알고 확신하십니까?”완전히 말문이 막힌 지연은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한참 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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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고용인은 조심스럽게 준희가 물에 빠진 일을 이담에게 털어놓았다.이담은 그 말을 듣고 침묵했다. 준희의 다리에 빽빽하게 나 있던 수많은 상처들이 떠오르자, 짙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요?”고용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작은 사모님, 말씀하십시오.”“아이가 잠들면 다리 쪽 사진을 몇 장 찍어줘요. 최대한 선명하게 나오게요.”이담은 말을 마친 뒤 고용인의 연락처를 추가하고 돈을 이체해 주었다.“아무에게도 알리지 마세요.”고용인은 이담이 왜 이런 부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돈을 받은 이상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하늘이 어두워질 무렵, 그린힐의 바 테이블에 앉은 이담은 직접 짠 과일 주스를 마시며 마침내 고용인이 보내온 사진들을 받았다.조명 아래 드러난 아이의 다리는 성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멍투성이였고, 무릎에는 울퉁불퉁한 흉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이담은 사진을 핸드폰에 저장한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경훈에게도 전송했다.초연의 아동 학대 증거를 찾는 것을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였다.경훈은 그 사진들을 받고 잠시 후 답장을 보냈다.[알았어.]경훈은 사진들을 수도 없이 들여다보며 오랫동안 망설였다.만약 이담을 도와준다면 진혁은 초연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될 것이다. 초연이 무너지는 것은 경훈에게 아무런 득도 되지 않았다.경훈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잔에 남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머릿속이 복잡했다.‘하씨 가문은 아직 우리에게 진 빚을 갚지도 않았어. 지금 와서 이럴 수는 없지.’수없이 저울질하던 경훈은 결국 초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담이 아이의 다리 상처 사진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초연은 완전히 혼비백산했다.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거실을 서성거렸다.‘지난번에 심이담이 준희를 만났을 때 분명 뭔가 알아차릴 줄 알았어!’‘설마 이거였을 줄이야!’초연이 팔이나 얼굴은 건드리지 않고, 일부러 아이의 다리에만 상처를 낸 것도 전부 진혁이 눈치챌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준희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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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경훈은 잠시 망설이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안 받아요?”이담이 의아해하며 물었지만, 경훈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경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핸드폰을 집어넣었다.“아마 스팸 전화일 거야.”경훈은 다시금 울리는 핸드폰을 손에 꽉 쥐었다. 마음속은 지독하게 얽히면서 복잡했다.하지만 이 전화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윤정이 잘해주고 자신을 믿어줄수록, 훗날 두 모녀에게 마음이 약해질 것이 뻔했다.‘내가 원하는 것은 하진혁의 약점이지, 내 약점을 만드는 게 아니야.’‘설령 이담을 좋아하고 있다 하더라도.’가문과 이담 사이에서 경훈은 결국 가문을 선택했다.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 자리를 떴다.이담이 차에 타자마자 이윤정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경훈이가 왜 내 전화를 안 받니?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는데, 많이 바쁜가?]이담이 멈칫했다.“언제 거셨는데요?”[10분쯤 전에.]이담은 문득 경훈이 전화를 끊어버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이담이 왜 안 받냐고 물었었다.[내가 하빈이 병실에 있는데, 경훈이 안 바쁘면 나 좀 데리러 와달라고 하려고 했지. 내가 하도 찾아대니까 귀찮아진 건 아니겠지?]이윤정의 말에 이담의 가슴이 시큰거렸다.아버지 심민철이 세상을 떠난 후, 경훈이 이담 모녀를 많이 도와준 것은 사실이었다.이윤정에게 경훈은 어느새 아들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지만, 정작 이윤정은 잊고 있었다. 경훈에게 두 사람은 그저 남일 뿐이라는 사실을.친척도 아닌 그저 남이었다.경훈이 모녀를 도와주는 것은 순전히 호의 때문이고, 돕지 않는다 해도 그것이 당연한 이치였다.이담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내가 너무 순진했어. 이 세상에 부모님 말고 무조건 날 도와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겠지.’이담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어머니, 선배가 많이 바빠요. 앞으로는 무슨 일 있어도 선배한테 폐 끼치지 마세요.”이윤정도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듯,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그...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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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이윤정의 상태에 깜짝 놀란 간호사는 일이 커질까 봐 얼른 다가가 그녀를 붙잡았다.“사모님, 진정하세요. 일단 나가서 해결하는 게 어떨까요?”초연 역시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뭔가 떠오른 듯 몸을 돌려 밖으로 뛰쳐나갔다.이윤정은 간호사를 뿌리치고 뒤쫓아 나갔다.“문초연, 거기 안 서!”초연은 계단 쪽으로 도망쳤지만, 하이힐을 신고 있어 움직임이 둔했던 탓에 금세 이윤정에게 붙잡히고 말았다.“문초연! 묻잖아, 내 아들 네가 그런 거 맞지! 네가 한 짓 맞지!”초연은 이윤정에게 멱살을 잡힌 채 복도 난간까지 밀려났다. 등 뒤로는 십여 층 아래로 뚫린 공간이 펼쳐져 있었고,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도로의 차들은 개미처럼 작아 보였다.이윤정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초연의 목을 졸랐다.“네가 해쳤어! 네가 그 사람들을 해친 거야!”간호사가 뒤에서 이윤정을 끌어당기자, 초연은 그제야 가쁜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하지만 초연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그래서 어쩌라고? 그래, 당신 아들도, 당신 남편도 다 내가 해쳤다고 쳐. 근데 당신 사위는 여전히 날 믿고 있잖아!”그 한마디에 이윤정은 넋을 잃고 무너져 내릴 듯 절망했다.“참 안타깝네. 진혁 씨뿐만 아니라 진 대표도 내 사람인데.”이윤정의 코앞에 다가가 몸을 앞으로 숙인 초연이 웃으며 말했다.“이제 당신네 모녀 둘만 남았네. 정말 불쌍해라.”“너...”이윤정의 두 눈에 짙은 증오의 불길이 타올랐다. 하지만 스스로의 무력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나도 죽고 너도 죽을 거야!”이윤정이 초연에게 달려들었다.초연과 간호사는 화들짝 놀랐다. 세 사람이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이윤정이 난간 가장자리로 밀려났고, 순간 상체의 중심을 잃더니 허공으로 넘어가 버렸다.초연은 무의식적으로 이윤정의 손을 움켜잡았다. 완전히 사색이 된 초연이 간호사를 향해 소리쳤다.“와서 도와!”이윤정의 몸이 난간 밖 허공에 위태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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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이담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낯선 병실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진혁과 의사가 곁에 서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이담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이담은 눈을 뜨자마자 손등에 꽂힌 링거 바늘을 거칠게 뽑아냈다.가장 먼저 눈치챈 진혁이 다급히 피가 배어 나오는 상처를 틀어막았다.“미쳤어?”“어머니 모시러 가야 해. 분명 한참 기다리셨을 텐데...”이담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진혁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채 몇 걸음도 떼지 못하고 진혁이 허리를 낚아챘다.진혁의 단단한 가슴팍에 갇힌 채, 귓가에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심이담! 내 눈 똑바로 봐.”진혁이 두 손으로 이담의 뺨을 감싸 쥐고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창백하게 질린 핏기 없는 얼굴. 두 눈은 초점을 잃고 텅 비어 있었다.진혁이 이담의 이마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어머니는 이제 안 계셔. 현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거짓말!”순식간에 붉게 충혈된 눈으로 이담이 진혁을 노려보았다.“어머니한테 갈 거야. 당장 놔!”“놓지 않겠다면?”이담은 짐승처럼 입을 벌리고 진혁의 팔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지만, 진혁은 끝내 이담을 밀어내지 않았다.“대표님!”지켜보던 의사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이담이 너무 세게 물어뜯은 나머지 소매 위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입안 가득 비릿한 피 맛이 번지고 나서야, 이담은 겨우 턱에 힘을 풀었다.팔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진혁은 오직 이담의 눈동자만 뚫어지게 직시했다.“심이담. 도망치지 말고 똑바로 마주해.”보다 못한 의사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대표님, 환자분 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합니다. 더 이상의 자극은...”“그럼 언제까지 현실을 외면하게 둘 겁니까?”의사는 말문이 막혀서 우물쭈물했다.“하지만 초기 심신 안정을 위해서는...”진혁은 아무 감각도 없는 인형처럼 서 있는 이담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을 나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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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진혁은 건네받은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빼곡히 채워진 두 장짜리 진술서. 진혁은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쓱 훑어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의적인 살인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기에, 경찰은 곧바로 두 사람을 귀가 조치했다.경찰서 문을 나선 초연의 시야에, 차 앞에 기대서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진혁의 모습이 들어왔다.뽀얀 담배 연기 너머로 싸늘하게 굳은 진혁의 얼굴이 드러났다.“진혁 씨...”초연의 두 눈이 붉게 달아오르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나 정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어. 정말 너무 무서웠어...”“HJ병원에는 왜 간 거야?”진혁이 무심하게 담뱃재를 털어냈다. 진혁의 시선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초연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사실 지연이 때문에 권 대표를 만나서 이야기 좀 해보려고 간 거였어. 그러다 우연히 아는 간호사를 만나서 잠깐 수다를 떨었던 거고.”진혁의 미간이 흉하게 구겨졌다.“지연이랑 권 대표 일은 네가 나설 문제가 아니야.”“진혁 씨. 설마 지금 날 탓하는 거야?”“이담이한테 무슨 일만 생기면 꼭 네가 그 자리에 있더라.”진혁이 고개를 치켜들고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초연을 직시했다.“초연아. 나도 가끔은 의심이 들어. 정말 네가 관련된 건 아닌지.”초연의 몸이 크게 한 번 움찔했다. 다급히 다가간 초연이 진혁의 옷깃을 매달리듯 잡았다.“진혁 씨, 나 아니야!”초연이 억울하다는 듯 울음을 터뜨렸다.“하빈이가 날 납치했던 적이 있으니까, 심민철 씨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을 때 내가 마침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그래서 지금 이담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까지 다 날 의심하는 거야?”“내가 정말 어머님이 돌아가시길 바랐다면, 미쳤다고 다들 보는 앞에서 그런 짓을 벌이겠어? 난 진짜 구하려고 했다고!”“사람들 올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는데, 어머님이 먼저 우리 손을 놔 버린 거라고.”초연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두려웠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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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경훈은 미처 대비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이담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진혁의 앞을 가로막았다.“갑자기 사람을 왜 때려!”진혁이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방금 전의 행동으로 셔츠 단추 하나가 툭 떨어져 나갔고, 탄탄하고 다부진 가슴이 거친 숨결을 따라 오르내렸다.“저 자식 맞는 거 보니까 속상해?”이담이 입을 떼기도 전에, 경훈이 몸을 일으키며 입가에 터진 피를 닦아냈다.“하 대표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진 대표님, 계속 모르는 척하실 작정입니까?”진혁이 손목을 가볍게 꺾으며 비웃었다.“한경미, 진 대표님이 데리고 계시잖습니까. 내 사람들이 못 찾게 빼돌려 놓고 꽤 공을 들이셨더군요.”이담이 미간을 찌푸리며 경훈을 돌아보았다.“한경미가... 선배한테 있어요?”경훈은 말문이 막힌 듯 머뭇거리다 이내 인정했다.“이담아, 그건 나중에 다 설명할게...”“구차한 변명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만.”진혁의 눈가에 서늘한 한기가 서렸다.“진짜 하빈이 일을 해결할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한경미를 넘겼겠죠. 애초에 도와줄 생각 따위는 없었던 거 아닙니까?”이담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하빈이 구치소에서 당한 끔찍한 일이 한경미와 관련 있는 건 맞지만, 이담은 늘 한경미 배후에 있는 진짜 흑막을 찾고 싶었다.그런데 경훈은 이미 모든 걸 알아내고도, 오히려 한경미를 빼돌려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이 일에... 선배도 얽혀 있는 거예요?”경훈이 다급하게 변명했다.“내 말 좀 들어봐. 다 설명할 수 있어!”이담이 뒷걸음질 치며 단호하게 손을 저었다.“됐어요. 이제 정말 지쳤어요.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 두 사람이 날 언제까지 가지고 놀 작정인지 이젠 알고 싶지도 않아요. 난 이제 아무도 안 믿어요!”이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저 두 사람에게서 벗어나야 해.’경훈이 고개를 돌려 진혁을 쏘아보며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이제 만족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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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사람이 이미 죽었는데, 떠들어 봤자 무슨 소용이니?”강수연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뱉었다.“원망할 거면 네 아비 심민철이 우리 심씨 집안 아들로 태어난 걸 원망해라.”바로 그때, 할머니 이숙자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재촉했다.“됐다, 그만해라. 쟤랑 무슨 말을 그렇게 길게 섞어? 사돈댁 사람들 다 왔다. 신랑이 밖에서 기다린다고!”“어머머, 내 정신 좀 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강수연이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이담아. 내 말 들어라. 네가 시집을 가까운 데로 가니까 우리가 도와주기도 얼마나 좋니?” “네 신랑 될 사람이 나이가 좀 있긴 해도, 집 있고 땅 있는 알부자야. 시아버지가 마을 이장이고!”강수연이 억지로 이담을 끌어당기며 덧붙였다.“넌 그냥 마음 편하게 호강만 하면 돼. 시집가서 1년 안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만 턱 낳아주면, 그 집안 일은 네가 다 쥐고 흔들 수 있다니까!”이담이 어깨로 강수연을 거칠게 밀쳐냈다. 강수연이 비명을 지르며 침대 위로 나자빠졌다.어느새 포박을 푼 이담이 탁자 위에 놓여 있던 과도를 집어 든 채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시퍼런 칼날을 본 이숙자는 기겁을 하며 몸이 굳어버렸다. 감히 이담에게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강수연이 다급하게 소리쳤다.“이담아! 너 대체 왜 이래! 이 좋은 잔칫날에, 설마 우리를 찌르기라도 하겠다는 거냐?”이담이 싸늘하게 코웃음 쳤다.“난 이제 부모도 없는 고아인데, 더 이상 아쉬울 게 뭐가 있겠어요? 나 혼자 죽는 것보단, 셋이 같이 가는 편이 훨씬 낫겠네요.”“너, 너 진짜 미쳤구나! 잊지 마. 너한테는 아직 하빈이가 있잖아!”강수연이 하빈을 들먹이며 이담의 마음을 흔들려고 했다.이담은 잠깐의 침묵 끝에 싸늘하게 웃었다.“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내 동생은 알아서 돌봐줄 사람이 있으니까.”“착한 우리 조카. 일단 칼부터 내려놓고 차분하게 얘기하자.”강수연이 슬금슬금 다가가려고 하자, 이담이 허공에 칼을 휘두르며 악을 썼다.“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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