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Chapter 281 - Chapter 289

289 Chapters

제281화

표정이 굳어진 여정아가 품에 안고 있던 고양이를 소파에 내려놓으며 물었다.“본가에 온 게 고작 그 여자 일 때문이니?”“대답이나 하세요!”지훈의 목소리가 한층 무거워졌다.소란스러운 소리에 서둘러 주방에서 나와봤던 고용인은, 차갑게 가라앉은 거실 분위기에 압도되었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조심스레 다가간 고용인이 만류했다.“도련님, 사모님께 그렇게 화를 내시면 어떡합니까...”“아주머니는 빠지세요.”피도 눈물도 없는 듯한 아들의 태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여정아가 결국 먼저 한발 물러섰다.“난 그저 가둬두고 주제 파악 좀 시켜주려던 것뿐이야.”“외곽에 있는 그 별장 말입니까?”“그래.”이를 꽉 문 지훈이 캐물었다.“정말 가둬두기만 했습니까?”멈칫한 여정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넌 이미 마음에 둔 여자가 있다면서, 왜 굳이 다른 여자 일에 신경을 쓰는 거니?”미간을 찌푸린 지훈이 반문했다.“그게 무슨 소리입니까?”“아니었니?”여정아가 놀라 되물었다.“최씨 집안 녀석이 네가 요즘 어떤 아가씨한테 관심이 생긴 것 같다고 하더구나. 직업도 너랑 같다면서.”“마침 문초연도 의사잖니. 그 여자도 직접 인정했는데, 설마 거짓말을 했겠어?”그 말을 들은 지훈의 눈빛이 스산하게 가라앉았다. 이내 실소를 터뜨린 그가 받아쳤다.“제가 그 여자한테 관심이 있었다면, 사흘씩이나 문전박대를 했겠습니까?”“걔가 아니었어?”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여정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대충 상황을 파악한 지훈이 몸을 돌려 밖으로 향하자, 여정아가 다급히 아들을 불러 세웠다.“이 밤중에 네가 직접 갈 필요 없어. 지금 당장 경호원들 보내서 풀어주라고 할 테니...”문가에 멈춰 선 지훈이 고개를 돌렸다.“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면, 이미 죽었을 겁니다.”차가 멀어지는 소리를 듣던 여정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곧장 핸드폰을 집어 든 그녀가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너희들 그 아가씨 별장에 데려다 놓고 아무 짓도 안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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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굳은 표정의 진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편, 외곽의 한 병원 복도 끝 수술실에서 여자의 비명 섞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의사는 마취 없이 수술대에 고정된 초연의 오른손 힘줄을 잘라냈다.기절할 때마다 억지로 의식을 되찾게 해서, 결국 초연은 오른손의 감각과 통증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천장을 쳐다보던 초연이 진혁을 데려오라고 중얼거렸다.잠시 후, 의사의 안내를 받고 수술실 안으로 들어선 진혁은 초연의 처참한 꼴을 보고도 일말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았다.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초연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진혁 씨, 날 지켜주겠다고 했잖아. 왜 이렇게 변한 거야?”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자, 수술실 안에는 진혁과 초연 두 사람만 남았다.천천히 떨어지는 수액을 바라보던 진혁이 싸늘하게 내뱉었다.“내가 네 범죄랑 살인까지 덮어줘야 한다는 뜻인가?”초연이 악에 받쳐 발악했다.“난 사람 안 죽였어! 다 사고였다고!”“그게 뭐가 다르지?”수술대에 누운 초연을 차갑게 내려다본 진혁이 말을 이었다.“문초연, 지난 10년의 정을 생각해서 너한테 미안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갚을 건 이미 다 갚았어. 네 아들한테도 부족함이 없도록 대했고.”“그런데 넌 내 이름을 팔아서 무슨 짓을 벌였지?”차가운 미소를 지은 진혁이 덧붙였다.“10년이나 알고 지낸 사람이 이렇게 끔찍한 독사일 줄은 상상도 못 했군.”‘독사라니!’붉게 충혈된 눈빛으로 실소를 터뜨린 초연이 쏘아붙였다.“내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난 진작에 죽었을 거야. 내 양아버지가 어떤 쓰레기인지 너도 잘 알잖아.”“난 남을 위해 희생하는 법 따윈 몰라. 그저 이기적으로 구는 것만이 날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어. 널 만나기 전까지, 내 삶은 생지옥이나 다름없었으니까.”“난 매일 생각했어. 6년 전에 너랑 결혼한 사람이 나였다면, 우린 분명 행복하게 잘 살았을 거야. 나도 이런 비참한 꼴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고.”“진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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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걸음을 멈춘 진혁이 고개를 돌려 초연을 빤히 응시하며 물었다.“무슨 뜻이지?”처연하게 웃은 초연이 말을 이었다.“내가 거짓말했어. 진혁 씨 구한 사람은 내가 아니야. 그게 누군지 알려줄 수는 있는데,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내 부탁만 들어주면, 앞으로 두 사람 앞에 절대 안 나타날게.”...일주일 뒤.이담은 오른손의 실밥을 풀었지만 여전히 물건을 쥘 수도 없었고 젓가락질조차 무리였다.걱정스러운 눈으로 이담을 바라보던 명월이 물었다.“이러다 정말 다시는 메스를 못 잡는 거 아니에요?”“천천히 회복하면 되죠. 아직 젊으니까 금방 나을 거예요.”다친 건 본인인데 도리어 위로를 건네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어린 명월이 쏘아붙였다.“심 선생님 다치게 한 그 여자, 진짜 악질이에요. 그런 인간은 천벌도 안 받나 몰라!”오른손에 남은 흉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이담의 표정은 덤덤했다.요 며칠 초연의 손목에 있던 붉은 점을 떠올릴 때마다,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자신을 키워준 양부모가 친딸의 손에 목숨을 잃다니. 이토록 극적인 결말이 정말 비통하고 우스웠다.명월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양손에 묵직한 선물을 든 일행이 병실로 찾아왔다.지훈의 어머니인 여정아를 직접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미영처럼 우아한 기품을 지닌 대단한 미인이었다.이담을 처음 본 순간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떠올리지 못한 여정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심이담 씨 맞죠? 미안해요. 전에는 내가 오해를 좀 했네요.”차갑게 되물은 이담이 받아쳤다.“사모님의 오해라는 게, 사람을 시켜서 제 손을 칼로 찌르게 한 건가요?”전혀 예상치 못한 당돌한 반응에 여정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미 전후 사정을 다 조사해 본 터라, 자신도 철저히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얼굴에 곤혹스러운 기색이 스친 여정아가 변명했다.“문초연이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난 그저 이담 씨를 며칠 가둬두려고만 했을 뿐이지, 다른 지시는 내리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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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이담을 한 번 쳐다보고 뭔가를 확인한 듯 지훈이 안도하며 발걸음을 돌리자, 여정아도 더 머물지 않고 자리를 떴다.병실은 이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천천히 다가가서 이불깃을 꼼꼼히 덮어준 진혁이 입을 열었다.“할머니가 너 다친 거 아시고 많이 걱정하셔.”눈꺼풀을 파르르 떤 이담이 짧게 대답했다.“내가 연락드릴게.”“문초연 오른손은 완전히 망가뜨렸어.”진혁의 목소리는 소름이 끼치도록 평온했다.이담이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쳤을 때도 그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았다.“앞으로 네 눈앞에 나타날 일은 없을 거야.”이담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지난 6년 동안 이 남자의 무정함은 뼈저리게 겪어봤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초연을 향해 이토록 잔인하게 돌아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남자들은 다 똑같은 건가? 사랑할 때는 한없이 다정하다가도, 마음이 식으면 이렇게까지 무자비하고 잔인해지는 걸까?’“무슨 생각해?”불쑥 다가온 진혁의 숨결이 느껴졌다.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뜨거운 손가락 너머로, 이담은 진혁의 눈빛에 담긴 억눌린 욕망을 단번에 읽어냈다. 자신에게 키스하고 싶은 눈빛이었다.뒤로 물러나며 그 손길을 피한 이담이 물었다.“만약 내가 칼로 문초연을 찔렀다면, 나한테도 똑같이 했을 거야?”살짝 얼굴이 굳어진 진혁이 이내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띄었다.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적어도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과거의 나라면, 과연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침묵의 의미를 알아차린 이담이 씁쓸하게 웃었다.“내 비위라도 맞추려고 안 그럴 거라고 거짓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이담아.”진혁의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다.“미안해.”“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하면, 제발...”“안 돼.”“...”이담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진혁이 쉰 목소리로 내뱉었다.“이혼은 절대 안 해.”“하지만 우리,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네가 지금 날 사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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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멈칫한 이담이 의아한 듯 진혁을 쳐다보며 대꾸했다.“새로 사둔 세면도구 없는데.”“네 거 쓰면 되지.”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뻔뻔하게 내뱉는 진혁의 태도에, 이담이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다.그 표정을 살피던 지훈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제 집에 방도 많고 새로 산 세면도구도 있습니다. 하 대표님만 괜찮으시다면 방을 하나 내드리죠.”미간을 찌푸린 진혁이 코웃음을 쳤다.“내가 그쪽 집에 머무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합니까?”“이제 막 병원에서 퇴원한 사람 곁에 있는 게 불편하지 않겠습니까?”순간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신 진혁이 쏘아붙였다.“난 남편입니다.”고개를 끄덕인 지훈이 받아쳤다.“그래서요? 남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안 하면서, 해선 안 될 일들은 아내라는 이유로 심 선생님한테 강요하고 있지 않습니까?”“심 선생님 생각은 해본 적 있습니까? 곁에 남아서 간호해 주길 바라는지, 한 번이라도 물어본 적 있나요?”진혁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이담을 바라보았다.사실 그저 바래다줄 생각이었을 뿐, 머물 계획은 없었다. 만약 여기 남게 된다면, 이담이 먼저 붙잡아주기를 내심 바랐다.그저 지훈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진혁의 심기를 거슬렀을 뿐이었다.하지만 방금 지훈이 던진 말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진혁의 가슴속 깊숙이 박혔다.‘그래, 단 한 번도 이담의 속마음을 물어본 적이 없었어.’시선이 마주치자 뭔가 알아차린 듯 고개를 돌린 이담이 선을 그었다.“나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어.”이담에게 진혁은 필요하지 않았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진혁은 꽉 쥐었던 주먹을 천천히 풀면서 물러섰다.“내일 다시 올게.”이담은 순간 멍해졌다. 진혁이 이렇게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고 물러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몸을 돌리는 진혁을 향해 문가에 기대어 있던 지훈이 물었다.“저희 집에 머무는 건 거절하시는 겁니까?”옷깃을 정리한 진혁이 의미심장하게 내뱉었다.“내일 다시 얘기하죠.”엘리베이터에 오른 진혁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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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문득 6년 전 초연이 처음 귀국하던 날이 떠올랐다.경성시 타임스퀘어 상공에서 무려 두 시간 동안 펼쳐졌던 드론 불꽃놀이 쇼는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었다. 당시 사람들은 진혁이 얼마나 로맨틱한지 찬사를 쏟아냈다. 바로 그날, 이담은 진혁의 첫사랑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때 무슨 생각을 했지?’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던 모습이었으니까.이담의 눈에 서서히 슬픔이 번져 나갔다.그 모습을 눈치채고 미간을 찌푸린 지훈이 뭔가 말하려던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진혁이 안나와 함께 나왔다.이담의 집 앞에 서 있는 지훈을 확인하자, 안나의 긴장했던 얼굴이 그제야 풀어졌다.‘같이 사는 게 아니었네. 어쩐지 대표님이 평소처럼 미쳐서 날뛰지 않더라니.’입안을 물로 헹군 지훈이 툭 내뱉었다.“하씨 가문은 원래 이렇게 돈을 쏟아붓는 걸 좋아합니까?”진혁이 차갑게 맞받아쳤다.“고지훈 씨는 남의 집 문 앞에서 양치질하는 게 취미인가 봐요?”지훈은 평온하게 대꾸했다.“관리소 직원이 시끄럽게 구는 바람에, 무슨 구경거리라도 났나 싶어서 나온 겁니다.”“구경은 실컷 했나요?”“충분히 했습니다.”가볍게 한숨을 내쉰 지훈이 덧붙였다.“그냥 대충 산 집이 갑자기 하성그룹 소유가 되어버리니, 참 적응이 안 되네요.”가볍게 웃으면서 진혁이 대답했다.“앞으로 차차 적응하게 될 겁니다.”지훈이 말을 이으려고 하자, 다가온 안나가 뼈 있는 말을 건넸다.“고지훈 씨, 부부 사이에 더 끼어들지 않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대답 대신 무표정하게 진혁을 응시하는 지훈과, 그를 빤히 마주 보는 진혁의 시선이 얽혔다. 두 사람 사이에는 겉보기와 달리 날카로운 신경전이 오갔다.결국 지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문 안으로 물러났다.그제야 시선을 거둔 진혁이 이담의 앞에 서서 물었다.“아침은 먹었어?”막 대답하려던 때,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택배 기사가 두리번거리다 이담을 발견하곤 반갑게 말을 걸었다.“안녕하세요, 주문하신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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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비상구 창가로 다가가 담배에 불을 붙인 진혁의 얼굴은 어두컴컴한 그늘에 가려졌다.“문초연이 한 말, 그다지 믿음이 안 가.”수화기 너머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하지만 당시 납치당했던 아이들이 대표님 말고도 몇 명 더 있었잖습니까?] [그 여자아이의 인적 사항도 전부 일치하고, 부모 쪽에서도 딸이 납치당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담배를 물고 있던 진혁의 움직임이 멈칫했지만, 이내 말없이 담뱃재만 툭툭 털어낼 뿐이었다.[대표님, 그 여자아이를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잠시 후 조심스레 묻는 상대방의 말에, 진혁이 선을 그었다.“필요 없어. 백지수표나 한 장 주고, 얼마를 원하는지 생각이 정리되면 그때 찾아오라고 해.”과거의 기억이 온전치 않은 진혁으로서는, 설령 자신을 구해준 여자아이가 진짜로 존재한다 해도 금전적으로 보상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일주일을 더 쉬고 다친 지 보름 정도가 지나자, 이담은 간신히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쥘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마침 강성시에 도착했다며 은호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외출해서 은호를 만난 이담은 귀여운 도자기 인형이 담긴 선물을 받았다.선물 상자를 받아 들고 빙그레 웃으면서 이담이 물었다.“어머니께서 보내신 거죠?”흠칫 놀란 은호가 되물었다.“어떻게 알았어?”정신이 온전치 않은 와중에도 김미영이 정성을 다해 직접 고른 선물이었다.이담 자신도 어떻게 맞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직감이 그랬을 뿐이다.이담이 장난스레 말을 받았다.“텔레파시라도 통했나 보죠.”커피잔을 들어 올리던 은호가 멈칫하더니,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럴지도 모르겠네.”“오빠가 강성시로 오면 어머니는 어떡하고요?”“아버지가 곁에 계시니 별일 없을 거야.”깜짝 놀란 이담이 되물었다.“아버님도 경성시에 오셨어요?”무언가 떠오른 듯 입술을 달싹거린 이담이 말을 이었다.“하씨 가문과의 혼사 때문인가요? 진짜 하지연이랑 결혼하는 거예요? 함정에 빠진 게 분명한데...”“그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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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문득 이담 역시 심씨 집안의 수양딸일 뿐 따지고 보면 고아나 다름없는 처지라는 사실이 떠오르자, 은호는 진심으로 가슴이 아려왔다.손을 뻗어 이담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은호가 말했다.“친동생을 찾게 되더라도 넌 영원히 내 동생이야.”이담은 말없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은호와 헤어진 뒤, 이담은 택시를 타고 서원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담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복도에 마주 선 지훈과 진혁을 발견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진혁이 지훈의 멱살을 쥐고 있는 걸 보자, 다급히 다가간 이담이 떼어내며 소리쳤다.“하진혁, 지금 뭐 하는 거야?”구겨진 옷깃을 탁탁 털어낸 지훈이 비아냥거렸다.“그러게요. 하 대표님 성질 참 대단하시네요.”어금니를 악문 진혁이 싸늘하게 쏘아붙였다.“고지훈 씨가 먼저 주제넘게 몰아붙이지 않았습니까?”지훈이 여유롭게 맞받아쳤다.“그냥 질문 좀 한 걸 가지고 몰아붙였다고 하시면 섭섭하죠.”진혁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그쪽이 물어볼 자격이나 됩니까?”지훈은 지지 않았다.“하 대표님은 대답하기 싫은 겁니까, 아니면 찔리는 겁니까?”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은 이담이 쏘아붙였다.“그만해요! 둘이 싸우려거든 내려가서 싸워요. 내 집 앞에서 시끄럽게 굴지 말고!”그제야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실랑이를 멈췄다.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등 뒤로 들리는 부산스러운 기척에 이담이 고개를 돌렸다. 두 남자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려던 참이었다.‘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기가 막힌다는 듯 이담이 따져 물었다.“두 사람 뭐 하는 거예요?”이담을 힐끗 본 지훈이 대답했다.“손도 불편한데, 밥 차려 주려고요.”진혁이 코웃음을 치며 받아쳤다.“이담이에겐 내가 있는데 당신이 왜 밥을 차려요?”지훈이 비꼬았다.“하 대표님이 제대로 챙겨 주셨다면, 전 여친이 심 선생님을 해코지할 기회도 없었겠죠.”진혁 역시 살벌하게 반격했다.“어머니가 문초연한테 놀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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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한편.간호사가 평소처럼 초연에게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배식구를 열고 침대에 누워 있는 초연을 향해 그녀가 소리쳤다.“식사하세요.”하지만 침대 위의 사람은 미동도 없이 아무 대답이 없었다.간호사가 두어 번 더 불렀지만 여전히 기척이 없자, 미세하게 표정이 굳어진 간호사가 다급하게 열쇠로 바깥쪽 문을 열었다.‘환자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야!’침대 곁으로 다가가 초연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침대 위의 초연이 갑자기 주사기를 간호사의 목에 꽂아 넣고 약물을 주입했다.간호사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당신...”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간호사는 순식간에 의식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침대에서 내려온 초연은 비틀거리며 다가가 문을 걸어 잠갔다.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 쓴 주사기를 구석으로 차버린 뒤, 재빨리 간호사의 옷으로 갈아입었다.모든 준비를 마친 초연은 남은 힘을 쥐어짜서, 간호사를 침대 위로 끌어올려 자신처럼 보이게 위장했다.힘을 줄 때마다 제멋대로 덜덜 떨리는 오른손을 내려다보는 초연의 두 눈에 독기 어린 원한이 가득 차올랐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길 빠져나가야 해!’...점심 무렵, 이담은 두 차례의 수술에 들어갔지만 모두 어시스트 역할이었다. 수술은 오후 2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이번 수술의 집도의는 같은 병원의 도혁수 교수였다. 그가 직접 메스를 잡은 건 오랜만의 일이었고, 이담 역시 그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뇌에 기생충이 감염된 8살짜리 어린아이 환자라 상황이 꽤 까다롭지 않았다면, 은퇴한 도혁수도 굳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고 교수님 제자라고 들었네. 젊은 나이에 집도의까지 맡을 정도면 꽤 실력이 뛰어난가 보군.”도혁수는 오래전 수술실을 떠나 조기 은퇴를 했음에도 병원 내부 일들을 꽤나 잘 알고 있었다.시선을 내리깔며 웃은 이담이 대답했다.“어릴 적부터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소꿉장난할 때도 늘 의사 역할을 맡곤 했는데, 제가 진짜 의대에 진학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그게 다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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