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Chapter 251 - Chapter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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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화

“하긴, 내가 그 얼굴이었으면 벌써 톱스타랑 사귀고도 남았지!”간호사들은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팔려서, 옆을 지나가던 여자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멍한 얼굴로 병실 앞에 다가선 주민희의 눈에, 병상을 지키고 있는 오빠와 엄마의 모습이 들어왔다. 두 사람은 민희가 온 줄도 모르는 눈치였다. 여성은 우울하게 벽에 기댄 채 핸드폰 갤러리를 열었다.앨범 안은 온통 지훈이 의대에서 강의하던 사진뿐이었다. 기를 쓰고 의대에 입학한 것도 오로지 자신의 우상인 지훈에게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가기 위해서였다.무심코 고개를 들자, 벽에 붙은 의료진의 사진과 약력이 눈에 들어왔다. 민희는 단번에 이담의 사진을 찾아냈다.단정한 증명사진인데도 이목구비와 신체 조건이 워낙 우월해서, 청초하면서도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겼다.뭔가 떠오른 듯 이담의 사진을 찰칵 핸드폰으로 찍은 민희는, 짧은 글을 하나 작성해 곧바로 인터넷에 올렸다.다음 날 아침, 주동수의 수술이 첫 번째로 잡혔다.병실에서 지훈과 정우가 주치의와 의논 끝에 이담을 집도의로 배정하려고 하자, 곁에서 듣고 있던 민희가 대뜸 반대하고 나섰다.“안 돼요.”안설화가 의아한 눈으로 딸을 쳐다봤다.“민희야, 갑자기 왜 그래?”입술을 꽉 깨문 민희가 찔리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곤 중얼거렸다.“인터넷에서 봤는데, 저 사람... 제대로 된 의사가 아니래요. 저렇게 젊고 예쁜 사람이 무슨 집도의예요? 보나 마나 빽으로 들어온 걸 거예요.”딸이 왜 저런 억지를 부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담이 워낙 젊은 건 사실이었다. 나이 어린 집도의라니, 경력을 떠나서 당장 수술 경험이 부족할까 봐 안설화는 덜컥 겁이 났다.담당 주치의가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정말 오해십니다. 심 과장님은 우리 병원에 오기 전 경성에서도 이미 과장직을 맡고 계셨어요. 보기엔 젊어도 이쪽 수술 경험은 꽤 풍부하신 분입니다.”“엄마, 아빠 목숨을 걸고 도박할 순 없잖아!”민희가 안설화를 보면서 재차 매달렸다.그 말에 결국 안설화도 흔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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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2화

수술실 안, 이담과 수술팀은 주동수의 수술에 집중하고 있었다.이담의 메스는 거침이 없었다. 흉쇄유돌근 앞부분을 따라 피부를 절개한 뒤, 피하 조직을 층별로 박리해서 경동맥 분기부를 신속하게 확보했다.굳이 기구로 시야를 확보할 필요조차 없었다. 미주신경과 설하신경, 상갑상동맥은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혈관벽을 세로로 절개했고, 현미경 아래에서 혈관이 협착된 부분과 혈관 내막 조직을 완벽하게 분리해 냈다.이담과 처음 호흡을 맞추는 팀원들은 모두 그녀의 신들린 ‘블라인드 수술’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외과 의사들조차 함부로 메스를 들 수 없는 그야말로 신의 경지였다.“혈압 조절에 신경 써주세요.”이담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지시했다.곁에 있던 간호사와 마취과 전문의는 혈압 변동으로 인한 혈종이 생길까 봐 모니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수술은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나 단축되어 불과 3시간 만에 끝났다.이담이 혈관 절개 부위 봉합을 마치자마자, 일시적으로 차단해 두었던 총경동맥과 내경동맥, 상갑상동맥을 곧바로 다시 개방했다.혈액이 원활하게 흐르고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수술은 완벽한 성공이었다.안설화는 수술실 밖을 서성이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 중 표시등이 녹색으로 바뀌고 간호사가 걸어 나왔다.“어떻게 됐나요?”안설화와 아들이 다급히 다가가 묻자, 간호사가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다만 수술 후 합병증 위험이 있어서 3일 정도 중환자실에서 경과를 지켜본 뒤 일반 병실로 옮길 예정입니다.”“수술이 잘 끝났다니 다행이네요.”안설화가 가슴을 쓸어내렸다.이담이 수술실 밖으로 나오자, 안설화가 곧장 다가와서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반면 한쪽에 서 있던 민희는 이담을 힐끗 보더니, 도둑이 제 발 저리 듯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바로 그때, 안나가 경찰 두 명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람들을 향해 곧장 걸어왔다.이담이 채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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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3화

이담이 코웃음을 치며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내뱉었다.“예전엔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더니.”안나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저 어린애 장난일 뿐이에요. 대표님께 굳이 일 키울 필요 없다고 전해주세요. 주의만 주면 되니까.”이담이 돌아서려던 찰나, 안나가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오늘 저녁 식사는 뭘로 준비할지 여쭤보라고 하셨습니다.”이담은 걸음을 멈칫했지만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배달 음식이요.”사람을 시켜 실검을 내리고 루머를 해명한 진혁은, 곧 안나에게서 연락을 받았다.최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하려던 진혁은 ‘배달 음식’이라는 단어에 가슴 한구석이 찔린 듯 아려왔다.한 지붕 아래 지내는 것도 그저 일시적인 ‘타협’일 뿐이라는 걸 진혁도 알았다. 어떻게든 보상하려고 애썼지만, 요 며칠 이담은 잔뜩 날을 세운 고슴도치 같았다. 어떻게 다가가든 철저히 경계만 할 뿐이었다.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전부 자신이 자초한 업보였으니까.바로 그때, 모르는 번호로 사진 한 장이 전송됐다.병원 복도에서 찍힌 지훈과 이담의 모습이었다.지훈이 이담을 향해 살짝 몸을 숙인 구도였다. 묘한 기류까지는 아니어도,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마주 선 두 사람은 얄미울 정도로 완벽하게 어울렸다. 마치 천생연분처럼.진혁의 안색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예전의 진경훈쯤이야 안중에도 없었건만, 이담 곁에 선 다른 남자가 이토록 눈에 거슬린 건 난생처음이었다.저녁 7시, 이담은 서원 오피스텔에 들러 전공 서적을 챙겼다. 이틀 뒤에 안데르 교수의 팀이 강성시에 도착할 예정이라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가방을 들고 내려오던 이담은 마침 건물로 들어서는 지훈과 마주쳤다.그의 손에 들린 배달 봉투를 본 이담이 의아한 듯 물었다.“고 교수님도 배달 음식 드세요?”‘결벽증 아니었나?’“그럼 심 선생님이 밥이라도 해 주실 겁니까?”순간 말문이 막힌 이담이 대꾸했다.“농담하시는 거죠?”지훈은 진지한 얼굴로 덤덤하게 말을 받았다.“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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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4화

저녁. 경훈은 지훈을 술집으로 불러냈다.지훈이 도착했을 때, 경훈은 바에 앉아 묵묵히 혼자 술만 들이켜고 있었다.평소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던 녀석이 웬일로 굳은 표정을 한 채 다가오는 여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지훈은 바텐더에게 레몬티를 부탁한 뒤 바에 비스듬히 기댔다.“너 왜 그래?”빈 잔에 술을 채우던 경훈이 대꾸했다.“별거 아니야. 그냥 속이 좀 답답한데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지훈은 잠자코 있었다.바텐더가 레몬티를 내려놓자, 잔을 든 지훈이 경훈의 잔에 가볍게 부딪쳤다.“할 말 있으면 빙빙 돌리지 말고 해. 내가 널 하루 이틀 보냐.”경훈의 손이 멈칫하더니 남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잠시 후, 경훈이 지훈의 앞에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지훈에게도 무척이나 익숙한 구도였다.“네가 찍었어?”경훈이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사실 하진혁한테 보내려고 찍은 거야.”레몬티를 내려놓은 지훈이 돌연 경훈의 멱살을 거칠게 틀어쥐었다.“네가 언제부터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런 짓이나 하는 새끼였어?”“그럼 넌?”경훈이 지지 않고 반문했다.“이담이 소식을 알게 되면 말해준다더니, 진작에 만났잖아? 걔랑 내 사이를 뻔히 알면서... 혹시 너도 이담이한테 마음이 있어?”“난 너랑 달라.”쥐고 있던 멱살을 툭 놓은 지훈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적어도 난 심이담이 아직 이혼 안 한 유부녀라는 건 알아. 난 선은 지켜.” “근데 넌? 이용하려고 접근해 놓고 이제 와서 용서해 달라고 매달려? 이담이 심정이 어떨지 털끝만큼이라도 생각해 봤어?”정곡을 찔린 경훈은 말문이 막혔다. 숨이 턱 막힐 만큼 가슴이 꽉 죄어들었다.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심이담에게 다가간 건 철저한 이용 목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흔들리고 갈등했다. 더는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이윤정이 그렇게 죽지만 않았어도, 아마 지금까지도 자기 감정을 기만하며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사실 경훈은 진작부터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한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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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5화

연회장 안은 의학계 권위자들을 비롯해 대형 병원 원장들과 성운그룹 임원들까지 북적거렸다.연회장 밖으로 걸어 나온 이담은, 마침 반대편에서 팀원 두 명과 함께 걸어오던 초연과 마주쳤다.초연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익숙했다.이담을 발견한 초연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어지더니 이내 가식적인 미소를 짜냈다.“정말 강성시에 있었네요?”이담은 대꾸하지 않았다.“문 선생님이 아는 분이에요?”곁에 있던 팀원이 호기심에 묻자, 초연은 영어로 대답했다.“아, 별로 중요한 사람은 아니에요. 대충 남자 덕에 이 바닥에 끼어든 부류라고 할까.”“네? 수준이 그렇게 낮아요?”다른 팀원이 웃으며 거들었다.“우리 말 못 알아듣는 거 맞죠?”초연이 이담을 향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연하죠...”“같은 한국인끼리 웬 영어 허세입니까? 외국에서 몇 년 공부했다고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알아요?”이담이 천천히 말을 끊고 나섰다.“남자 덕에 이 바닥에 들어온 게 누군지는 문초연 씨가 더 잘 알 텐데요.”“못 알아듣는다면서요...”험담하던 팀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초연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심이담 씨, 남자 덕 본 거 맞잖아요? 진혁 씨가 강성시에 있는 건 알죠? 예전에 진혁 씨가 연줄을 놔주지 않았으면, 당신이 안데르 교수님을 만날 수나 있었겠어요?”지난번 경성에서 있었던 연회 때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다만 진혁이 억지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초연이 알 리 없었다. 이담은 하진혁이 데려가지 않았어도 전혀 아쉬울 게 없었다. 안데르 교수가 스승인 고승범과 협력하게 되면 자신과 만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대답이 없자 자신이 정곡을 찔렀다고 착각한 초연이 이담 앞으로 다가섰다.“심이담 씨, 저랑 진혁 씨 사이를 도저히 못 받아들이겠어요? 그러니까 쥐새끼처럼 강성시로 도망친 거잖아요. 속이 꽤나 썩어 문드러진 모양이네요?”옆에 있던 두 팀원은 흥미롭다는 듯 귓속말을 주고받았다.초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시선을 내리깔고 이담을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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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6화

마침 고승범 곁에 있던 안데르 교수는 그 말을 듣자 이담을 다시 유심히 살펴보았다. 지난번 경성시에서 만난 그 젊은 의사가 맞았다. 안데르 교수 역시 경성시에서 진혁을 만났을 때 이담이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초연의 말에 고승범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인맥으로 이런 자리에 참석하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았지만, 그건 권력층에서나 통하는 얘기였다. 학술계는 철저히 실력 위주였고, 배경이나 연줄은 그저 인프라를 넓히는 수단에 불과했다. 특히 고승범이나 안데르 교수 같은 거물들에게 겉멋만 들고 실속 없는 빈껍데기는 필요치 않았다.다들 이담이 당장 쫓겨날 거라 생각하던 순간, 손목에 감긴 천주를 만지작거리던 고승범이 안데르 교수에게 입을 열었다. “제 제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죠?”안데르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고승범이 손을 뻗어 이담을 자기 곁으로 불러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 아이가 바로 제 제자인 심이담입니다.”주변 사람들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초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심이담이 고승범의 제자라고?’‘말도 안 돼!’안데르 교수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분이 정말 교수님의 제자입니까?”“그렇습니다. 제가 직접 가르친, 외과 수술에 엄청난 재능을 가진 아이죠.” 고승범의 얼굴에 은근한 자부심이 맴돌았다.초연은 주먹을 꽉 쥔 채 애가 탔다. 지금 안데르 교수와 고승범의 시선은 오직 이담에게만 쏠려 있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결과가 전혀 아니었다.초연은 뺨에 남은 통증을 애써 참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고 교수님의 제자라는 걸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그러셨어요.”“제가 교수님 제자라는 걸 굳이 문초연 씨한테 말해줄 필요는 없을 텐데요.”이담은 끝까지 냉담한 태도를 유지했다.상황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다시 뒤에서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심이담 씨 태도가 왜 저래? 초연 씨는 몰라서 그랬다는데 너무 쌀쌀맞네.”“고 교수님이 든든한 뒷배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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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7화

금산 요양센터로 돌아온 이담이 가장 먼저 하빈의 병실에 들러 상태를 살피고 있을 때, 은호에게서 드디어 답장이 왔다.[미안해, 이담아. 일부러 답장 안 한 게 아니라 어머니 병세가 또 악화되셔서 핸드폰 확인을 못했어.]이담은 메시지를 보자마자 바로 답장을 보냈다.[어머니는 좀 괜찮아지셨어요?][괜찮아. 이미 치료받고 계셔. 넌 별일 없지?][네,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어머니 잘 보살펴 드리세요.]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이담은 핸드폰을 집어넣었다.병실을 나선 이담은 거실에서 말소리가 들려오자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파티션 뒤에 멈춰 섰는데, 미처 다가가기도 전에 짙은 술 냄새가 훅 끼쳐왔다.경호원 두 명의 부축을 받으며 소파에 주저앉은 진혁은, 몸을 뒤로 젖힌 채 손가락으로 눈썹 뼈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안나가 진혁의 슈트 재킷을 소파 등받이에 걸쳐 놓으며 물었다.“대표님, 간병인한테 꿀물이라도 좀 타오라고 할까요?”진혁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됐어.”경호원들이 난감한 듯 서로 눈치만 살폈다. 이럴 땐 간병인이 아니라 당연히...마침 파티션 뒤에 서 있던 이담과 시선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사모님.”안나도 뒤를 돌아 이담을 쳐다보았다.이담이 무표정한 얼굴로 차갑게 내뱉었다.“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난 간병인이 아니니까.”말을 마친 이담은 매정하게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멀어지는 이담의 뒷모습을 보며 경호원이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사모님 너무 매정하신 거 아니에요?”“뭐, 어떤 여자든 그런 일을 겪으면 매정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나가 눈치를 주자, 두 사람은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번쩍 눈을 뜬 진혁이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차갑게 쏘아붙였다.“다들 퇴근해.”세 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셔츠 윗단추를 거칠게 풀어헤친 진혁이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옆방에 있던 이담은 뭔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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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8화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간병인은 대표님이 부인의 심기를 살피는 거라고 짐작하곤, 웃으면서 구급상자를 건넸다.“사모님, 그럼 두 분 시간 방해하지 않고 먼저 나가보겠습니다.”간병인이 나간 뒤에도 이담은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윽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곤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진혁의 곁에 쪼그려 앉았다. 그저 평범한 환자라고 자신을 세뇌하며 진혁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누구 하나 입을 떼지 않아 방 안에는 무거운 적막만이 맴돌았다. 유리 조각을 골라낼 때마다 진혁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지만, 그는 통증에도 신음 하나 흘리지 않았다.소독을 마친 이담이 상처를 꼼꼼히 붕대로 감싸는 동안, 진혁의 시선은 줄곧 그녀의 얼굴에 집요하게 박혀 있었다. 그의 입꼬리에 이내 옅은 미소가 맴돌았다.“우리 제대로 다시 시작해볼까?”잠시 손을 멈칫한 이담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구급상자를 챙기며 짧게 내뱉었다.“아니.”“이담아.” 진혁이 나지막이 불렀다.이담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드는 순간, 다가온 진혁이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몸을 굳히며 그를 거칠게 밀쳐낸 이담은 그대로 남자의 얼굴을 매섭게 후려쳤다.고개가 홱 돌아간 진혁은 맞은 부위를 손등으로 쓸어내리면서도 화를 내기는커녕 도리어 실소를 터뜨렸다.“미친놈!”이담이 재빨리 방을 빠져나갔다.문이 닫히는 걸 지켜보던 진혁은 붕대가 감긴 손을 입가로 가져가서, 이담이 묶어준 매듭 위에 조용히 입을 맞췄다....경훈이 호텔로 돌아왔다가 마침 입구에서 초연과 마주쳤다.초연을 보는 순간, 경성에서 그녀와 얽혔던 황당한 짓거리들, 그리고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차라리 이담이 강성시에 남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러면 경성시에서 있었던 일도, 하빈과 그녀의 아버지에게 닥쳤던 비극도 이담은 영영 모를 테니까.‘문초연이 강성시에 나타나다니!’초연이 고개를 돌려 경훈을 쳐다보았다. 싸늘하게 굳은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는 건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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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9화

경훈의 말을 무시한 채 천천히 몸을 일으킨 초연이 뻔뻔하게 요구했다.“내 입을 막고 싶으면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경훈이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문초연 씨, 자기가 어떤 처지인지 단단히 착각하고 있네요.”“싫으면, 심이담한테 진실을 다 까발리는 수밖에 없고요.”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경훈이 단숨에 초연의 목을 틀어쥐었다.“어디 한번 떠들어봐요!”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헐떡이면서도, 초연의 두 눈엔 두려움 대신 지독한 광기만이 번뜩이고 있었다.“어디 한번 여기서 죽여보든가.”“내가 못 죽일 것 같아요?”“절대 못 죽이죠.”초연이 이를 악물며 내뱉었다.“얻은 것도 없는데, 남은 인생까지 걸고 날 죽일 생각은 없을 테니까요.”경훈이 멈칫하더니 이내 손을 거칠게 털어냈다. 숨통이 트인 초연은 소파에 엎드려 콜록거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우두커니 서 있던 경훈이 싸늘하게 시선을 거두며 물었다.“원하는 게 뭡니까?”“고지훈이랑 친하잖아요. 소개 좀 해줘요.”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린 경훈이 초연을 돌아보았다.“꿈도 야무지시네. 고지훈은 나랑 다릅니다. 당신 같은 부류한테는 눈길도 안 줄 텐데.”초연의 얼굴이 굳어졌다.“내가 그런 부류라면, 심이담이라고 다를 것 같아요? 그 여자는 이미 하진혁이랑 뒹군 사이라고요!”“심이담한테 남자는 하진혁 하나뿐이지만, 문초연 씨는 나 하나로 안 끝났잖아요.”정곡을 찔린 초연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마치 벌레라도 보듯 경멸 어린 시선으로 훑어내리면서 경훈이 비웃었다.“하진혁도 당신을 거들떠보지 않는데, 고지훈을 꼬시겠다고요?”“도와줄 거예요, 말 거예요!”“도와주면, 나한테 떨어지는 게 뭔데요?”“비밀 하나 알려주죠.”경훈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초연을 쳐다보았다.초연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믿든 말든 맘대로 해요. 하진혁이 예전에 납치당했다가 기억을 잃은 적이 있어요.”“그때 하진혁을 구한 사람이 심이담일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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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0화

싸늘하게 얼굴이 굳어진 진혁이 안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사람 붙여서 감시해. 문초연 그 여자가 이담이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막아.”같은 시각, 인근 시립병원으로 초빙되어 뇌동정맥기형 수술을 집도한 이담도 막 수술을 마친 참이었다.시립병원의 우석재 원장과 주원식 원장은 오랜 동창이었다. 우석재가 경성시에 출장 갔을 때, 바로 주원식이 이담을 추천해 주었다.“심 과장님, 대학병원에서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아닙니다. 주 원장님께 은혜를 입었는데, 제가 우 원장님을 돕는 건 당연한 일이죠.”우석재는 이담을 문 앞까지 배웅하며 말했다.“앞으로 심 과장님께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저희 병원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이 바닥에서는 인맥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이담이 흔쾌히 대답했다.“네, 감사합니다.”우석재가 병원으로 돌아간 후, 교차로로 걸어 나와 택시를 잡으려던 이담의 핸드폰에 경훈의 메시지가 도착했다.경훈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했다.이담은 메시지를 보면서 잠시 망설였다.지난번에 이미 확실히 선을 그었으니 이제 경훈과는 서로 빚진 게 없었다. 하지만...스승인 고승범이 경훈에게 자신을 부탁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경훈이 처음부터 자신을 속인 게 분명했다.답장을 할지 말지 망설이던 중, 경훈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전부 다 말해줄게.]...이담이 호텔 레스토랑에 도착했다.레스토랑 안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고, 입구에는 ‘대관 중’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밖에서 주소를 다시 확인하고 있을 때, 직원이 다가왔다.“혹시 진 대표님을 찾아오셨습니까?”이담이 핸드폰을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직원은 이담을 레스토랑 룸으로 안내했다.룸 안에 홀로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던 경훈은, 이담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조차 한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진 대표님, 기다리시던 분이 오셨습니다.”직원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경훈이 대답했다.“먼저 나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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