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유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알았어요. 성빈 씨가 흔쾌히 약속에 응해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놀라운 일이니 말만 하세요. 어떻게 입어드릴까요?”심성빈은 긴말 없이 그녀를 데리고 어느 샵으로 향했다.곧이어 가게 원장에게 송하나의 스타일에 맞춰 백지유를 다시 꾸며달라고 부탁했다.옅은 색의 원피스, 심플한 액세서리, 메이크업도 거의 티 나지 않는 누드 메이크업으로 바꿨다.변신을 마친 백지유는 거울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비로소 깨달았다.그녀는 몸을 돌려 옆에서 차분한 표정으로 서 있는 심성빈에게 솔직하게 말했다.“성빈 씨,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다가 가족들한테 들켜서 일부러 날 그 사람처럼 꾸며놓고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건가요?”심성빈은 딱히 숨기지 않고 태연하게 인정하며 진심 어린 어조로 말했다.“오늘은 지유 씨한테 신세 좀 질게요. 헛수고하는 일은 없어요. 원하는 거 있으시면 합리한 범위 내에서 뭐든지 해드릴게요.”백지유는 빙긋 웃고는 시원스럽게 말했다.“뭘 그렇게까지 따져요. 우리 서로 돕는 셈이고 각자 원하는 걸 얻는 거니까 누가 누구한테 신세를 진다고 할 것까진 없죠.”두 사람은 다시 전시회장으로 돌아가 나란히 걸었다.그들은 시종일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했다. 지나치게 친밀하지 않으면서도 어른들 눈에는 충분히 핑크빛 기류로 비칠 만한 딱 그 정도의 분위기였다.백지유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몇 장 찍었다.교묘하면서도 부드러운 각도로 심성빈의 얼굴을 대놓고 찍은 건 아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했다.그녀는 다시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나지막이 말했다.“이 사진들로 충분히 무마될 거예요. 걱정 마세요, 얼굴은 안 찍혔으니까. 원하시면 원본을 보내드릴게요.”“고마워요.”심성빈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그때, 그의 시야 한 편에 손님을 맞이하는 중년 여인이 스쳤다. 그 순간, 심성빈의 눈빛이 미세하게 가라앉았다.버건디색 원피스 차림의 여인, 우아한 분위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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