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자는 병원을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깊은 상념에 잠겨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강우야, 이 할미는 이제 더 바라는 거 없어. 딱 하나, 네가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못 보고 가는 게 소원이란다.”이강우는 휠체어를 밀다가 흠칫하며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이에 홍경자는 고개를 돌려 애석한 눈빛으로 훤칠한 체구의 손자를 바라보았다.“하나 그 아이는... 에휴, 다 우리 집안이 복이 없어서 그런 거지 뭐.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어, 강우야. 지난 일은 다 잊고 앞을 보고 살아야지. 언제까지 혼자 지낼 순 없잖니.”송하나와 차정원이 혼인 신고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홍경자는 손주 녀석과 송하나가 더는 재결합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그 후로도 이강우에게 서로 조건이 비슷한 선 자리를 주선했지만, 그가 번번이 거절하며 만남을 피했다.이제 자신도 나이가 들어가고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데 손주 녀석이 평생 이대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덜컥 걱정이 앞섰다.이강우의 덤덤한 눈빛에 걷어낼 수 없는 깊은 우울감이 담겨 있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요즘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당장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요.”“할미 다 알아. 네 마음속엔 줄곧 하나 그 아이만 담고 있잖니.”홍경자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속절없이 이강우를 바라봤다.“하지만 이미 끝난 인연이야. 네가 아무리 집착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이 할미가 눈을 감는 날, 네 할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구나.”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강우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고개를 숙여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할머니, 저 잠깐 전화 받을게요.”곧이어 한적한 구석으로 걸어가 업무 전화를 받았다.그 시각, 송하나는 약을 받아 돌아오는 길에 홍경자와 딱 마주쳤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익숙한 어르신을 보자 그녀의 심장이 가볍게 뛰었다. 오래된 기억들이 순식간에 물밀 듯이 밀려왔다.이강우와 결혼했던 몇 년 동안 홍경자는 이씨 가문을 통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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