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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별이 되어 빛나리: Chapter 951 - Chapter 960

967 Chapters

제951화

전화가 연결되기 바쁘게 휴대폰 너머로 고여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성빈아, 귀국했다면서? 왜 집에는 연락 한 통도 없는 거야? 그나저나 지유 그 아이는 만났니?”심성빈은 나른하고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적당히 둘러대며 대꾸했다.“도착한 지 얼마 안 됐어요. 해외 업무를 처리하느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아서 피곤하네요. 며칠 푹 쉬고 나서 만나보려고요.”“그래, 너무 무리하지 말고 푹 쉬면서 컨디션 조절 잘하렴.”고여진은 몇 마디 당부를 늘어놓고는 전화를 끊었다.그 시각, 디저트 가게 안.송하나의 바로 옆 테이블에는 교복을 입은 여고생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대학 입시를 앞둔 아이들의 대화는 맑고 생기 넘쳤다. 저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나는 AI 관련 학과에 지원할 거야. 요즘 기술 발전 속도가 장난 아니잖아. 이 학과는 전망도 좋고 취업도 깡패라던데!”“난 내신이 좀 애매해서 예체능 쪽으로 가려고. 무용 강사를 하면 마음도 편하고 안정적일 것 같아.”한참 열띤 대화를 이어가던 아이들 중 한 명이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단발머리 소녀에게 고개를 돌려 웃으며 물었다.“맞다, 소정이 넌 어디 쓸 거야?”소정이라 불린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에 꿈을 향한 열망이 반짝이며 잔뜩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난 법대 가서 법조인의 길을 걷고 싶어.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이거든.”친구들은 예상치 못한 대답인 듯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되물었다.“엥? 너 예전엔 디자인 쪽 생각한다고 하지 않았어? 갑자기 웬 법대?”“그게 실은 한 사람 때문에...”친구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반짝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아이들이 짓궂게 몰아세웠다.“뭐야, 뭐야? 누군데? 설마 좋아하는 사람이야? 솔직하게 말해봐, 우리 몰래 연애하는 거 아니야?”소녀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서둘러 손사래를 치며 진지한 말투로 부인했다.“그런 거 아니야! 멋대로 추측하지 마. 차정원이라고 유명한 변호사인데 내 롤모델이거든. 언젠가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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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2화

“하나야, 왜 그래? 어디 아파?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송하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심성빈을 바라보았다. 텅 빈 듯 초점 없는 눈동자, 목소리는 쉼 없이 떨리고 갈라져 있었다.“성빈 씨, 차정원이 누구예요?”심성빈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그의 심장이 갑자기 꽉 죄어왔고 눈빛엔 감출 수 없는 당혹감과 묵직한 긴장감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옆 테이블에서 여전히 차정원에 대해 떠들어대는 소녀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꽂혔다.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차정원, 잊혀진 그 이름이 송하나의 뇌리 깊숙이 봉인되어 있던 기억의 파편을 건드린 것이 분명했다.심성빈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최대한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상황을 수습하려 애썼다. 최대한 티 나지 않게 그녀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업계에서 좀 이름난 변호사일 뿐이야. 우연히 한 번 들어봤을 수도 있겠지. 별로 특별한 사람은 아니야.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이제 집에 가자.”그는 송하나가 더 깊이 파고들기를 바라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봉인된 과거를 건드리는 것은 더더욱 바라지 않았다.송하나는 머리가 어지럽고 관자놀이가 욱신거려서 더 이상 무언가를 캐물을 기력이 없었다.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네.”심성빈은 한 손으로 최이솔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송하나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며 그녀를 부축하여 디저트 가게를 나섰다.그들은 곧 집으로 돌아왔다.별안간 비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심성빈은 액정을 확인하고는 곧장 베란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낮고 침착했다.“무슨 일이야?”휴대폰 너머로 비서가 다급한 어투로 말했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대표님과 송하나 씨, 그리고 최이솔 양이 함께 있는 사진이 찍혔는데 지금 SNS에 퍼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어요. 실검에도 오를 만큼 반응이 폭발적입니다!”심성빈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미간 사이에 깊은 주름이 패며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서둘러 비서가 보낸 링크를 클릭하자 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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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3화

다음 날 아침, 가정부가 일찍 고향에서 돌아왔다.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송하나의 품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최이솔이었다. 아이는 보들보들한 손으로 송하나의 목을 꼭 껴안은 채 어깨에 머리를 기댄 모양새였다. 아직 잠이 덜 깬 듯 느릿하게 눈꺼풀을 깜빡이는 모습이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애틋한 풍경이었다.송하나는 심성빈이 건넨 젖병을 들고 품 안의 아이를 나직이 달래며 방으로 들어갔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가정부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서고 말았다. 그녀는 의아한 눈빛으로 무심코 심성빈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대표님, 저 아이는 혹시... 송하나 씨랑 대표님의 따님인가요?”이 아파트에서 꽤 오랜 시간 일해왔지만, 가정부는 늘 마음 한구석에 의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심성빈과 송하나의 관계는 일반적인 잣대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기묘했다.두 사람은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인이나 부부 관계도 아니었다.잠자리도 각자의 방을 고수하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법이 없었다.하지만 심성빈이 송하나를 대하는 태도는 각별하다 못해 끔찍할 정도였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며 헌신적으로 대했다.그렇게 긴 시간을 곁에서 지켜보다 보니 이제는 두 사람 사이에 갑자기 아이가 하나 툭 튀어나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심성빈은 그 말을 듣고는 나직하게 바로잡았다.“친구 아이예요. 헛물켜지 마세요.”가정부는 황급히 표정을 가다듬고 웃음으로 맞장구쳤다.“그러시구나. 아기가 눈매도 오밀조밀하고 몽글몽글한 게 보는 사람 마음을 사르르 녹이네요.”최이솔은 젖병을 다 비우고는 다시 깊은 잠이 들었다가 일어났다.충분히 자고 일어난 아이는 에너지가 넘쳤다. 집에서 그림만 그리는 것은 시시해졌는지 밖에 나가 놀고 싶다고 칭얼거렸다.최로운 쪽에서는 여전히 최이솔을 데리러 오겠다는 연락이 없었고 이에 심성빈은 시계를 흘긋 보았다.혹시라도 최로운이 갑자기 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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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4화

송하나는 그제야 안도하며 발걸음을 재촉해 다가갔다.“설아야, 괜찮아? 도대체 어디가 안 좋은 거야? 갑자기 왜 입원을 한 건데?”차설아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친구의 시선과 마주치자 순간 표정이 묘해졌다.무언가 말하려다 도로 삼키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얼버무리며 둘러댔다.“별거 아냐. 그냥 가벼운 감기니까 걱정하지 마.”병실 밖.최로운은 영양식을 사서 돌아오던 길에 문 앞에 서 있는 심성빈을 발견했다.그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성빈아, 여긴 웬일이야?”심성빈은 병실 쪽을 힐끗 보며 대답했다.“하나가 설아 씨 입원 소식을 듣고 하도 걱정해서 데리고 나왔어.”이어서 그가 최로운에게 질문을 건넸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멀쩡히 기념일 보내다가 왜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된 건데?”최로운은 몹시 초췌하고 켕기는 듯한 얼굴이었다.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어휴... 묻지도 마. 말하자면 진짜 긴데 딱히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우리 집 여왕님이 내가 입 밖으로 샌 거 알면 그땐 진짜 끝장이야. 그냥 입원한 거 모르는 셈 쳐 줘. 이솔이는 좀 더 부탁해야겠다. 이틀 뒤에 무조건 데리러 갈게.”심성빈은 최로운을 빤히 바라보았다.평소 입이 가벼워 비밀 하나 못 지키던 녀석이 끝까지 함구하는 걸 보니 입원 사유가 진짜 말하기 창피한 모양이었다.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바로 그때였다. 병실 순찰을 돌던 의사가 간호사들을 대동하고 병실 앞을 지나치다 최로운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곧이어 진심을 담아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2호실 환자분 보호자 맞으시죠? 젊은 분들이 사생활은 좀 절제하셔야죠. 이번 황체 파열은 그나마 운이 좋아서 출혈량이 많지 않았던 겁니다. 다음에 또 이렇게 무리해서 대출혈을 유발하면 정말 뒷감당 못 합니다. 꼭 좀 자제력을 가지고 조심하세요.”의사의 목소리는 맑고 차분했지만 적당한 크기로 병실 문을 통과해 안쪽까지 또렷하게 들렸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자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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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5화

최로운은 인상을 찌푸린 채 잔뜩 화난 차설아를 올려다보며 울상을 지었다.“미안해, 여보! 무릎을 꿇으라면 꿇을게. 무슨 벌이든 다 받을게. 근데 다시는 손도 못 대게 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아? 정말 나를 산송장으로 만들 셈이야?”차설아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거칠게 오르내리는 어깨만이 그녀의 분노를 대변하고 있었다.송하나와 심성빈이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이솔이는 테이블 앞에 엎드려 블록으로 제 몸만 한 ‘성’을 쌓고 있었다.도어락 소리가 들리자마자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하던 놀이도 내팽개치고 아장아장 달려와 그들의 품에 쏙 안겼다.“이모, 삼촌 왔어요!”달콤하고 보드라운 목소리가 귓가에 닿자 송하나의 마음이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렸다.그녀는 허리를 굽혀 아이를 안아 올리고는 말랑말랑한 볼에 얼굴을 비비며 한없이 다정한 말투로 속삭였다.“우리 이솔이, 오늘 정말 얌전하게 잘 지냈네?”그때, 주방에서 이유식을 들고 나오던 가정부가 웃으며 거들었다.“두 분 나가신 뒤로 이솔 양은 쭉 얌전히 블록 쌓기만 했어요. 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아서 어찌나 기특하던지요.”이후 며칠간 최이솔은 심성빈의 집에서 완전히 적응한 듯했다.아이는 송하나에게 푹 빠져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옆에 꼭 붙어 앉고 TV를 볼 때도 품 안으로 파고들었으며 낮잠을 잘 때는 옷자락을 꽉 쥐어야만 안심하고 눈을 감았다.원래 온화하고 마음이 여린 송하나는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했다.며칠 뒤면 최로운과 차설아가 이솔이를 데려갈 걸 알면서도 그녀는 이것저것 아이한테 잔뜩 사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다.예쁜 원피스며 동화책 전집, 지능 개발 장난감과 건강한 아기 간식까지...이것저것 따져보지도 않고 사들인 물건들로 어느새 방의 절반이 꽉 차버릴 지경이었다.그야말로 친딸처럼 정성껏 보살피는 모습이었다.심성빈은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카펫에 앉아 아이와 눈을 맞추며 블록을 쌓는 모습, 꼼꼼하게 이유식을 떠먹여 주는 모습, 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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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6화

심성빈은 송하나의 맑고 예쁜 눈동자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그녀에게 베푸는 다정함은 결코 충동적인 것이 아니었다.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 오래도록 뿌리내린 뼛속까지 사무친 깊은 사랑이었다. 이 세상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 그녀의 두 손에 쥐여주고 싶은 마음.그녀가 그저 무탈하고 행복하게,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만 있다면 기꺼이 무엇이든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가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다.물론 그 마음 뒤에는 차정원이 남긴 부탁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섞여 있지만, 이 사실을 결코 송하나에게 말할 수 없었다.심성빈은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그거야 당연히 네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송하나가 뭐라 더 대꾸하려던 찰나, 심성빈은 그녀의 품에서 잠든 최이솔을 내려다보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팔 저리겠다. 이솔이 이리 줘. 내가 방에 데려가서 눕힐게.”송하나의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이 그는 몸을 낮춰 최이솔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혹여나 아이의 단잠을 깨울까 봐 그의 동작은 한없이 조심스럽고 섬세했다.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간 심성빈은 침대에 이솔이를 눕히고는 살며시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아이의 얼굴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한 채 그 자리에 한참을 머물렀다.쌕쌕거리며 잠든 최이솔의 고운 눈매가 송하나를 닮아 참으로 순하고 다정했다.심성빈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언젠가 우리 사이에도 이런 아이가 생긴다면 세상 그 무엇이든 다 줘도 아깝지 않겠지.’밤이 깊었지만 송하나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머릿속에는 심성빈이 보여준 도시의 풍경들이 끊임없이 재생되었다.밤새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녀는 답을 내렸다.어쩌면 이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몸을 돌보다 보면 흐릿해진 기억력도, 엉망이 된 집중력도 다시 예전처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건강만 회복된다면 그토록 그리워하던 연구실로 돌아가 열정을 쏟을 수 있을 텐데...밤에 너무 늦게까지 뒤척인 탓인지 다음 날 아침, 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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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7화

최로운은 허리를 숙여 달려오는 딸아이를 단번에 낚아채 품에 안았다. 그러고는 아이의 볼에 대고 몇 번이나 쪽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췄다.“우리 공주님, 아빠 보고 싶었어?”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가정부가 재빨리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안내했다.“아, 심 대표님 지인분이시군요. 어서 들어오세요.”최로운은 최이솔을 안은 채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송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지만, 그의 뒤를 아무리 살펴봐도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의아한 듯 물었다.“설아는 좀 어때요? 아직 병원에 있어요?”“퇴원했어요. 몸은 별 탈 없어요.”“그런데 왜 같이 안 왔어요?”송하나는 차설아를 만나면 자신이 곧 외국에 간다는 소식을 전할 생각이었다.한편 최로운은 코끝을 쓱 문지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창피하다고 죽어도 안 나오겠대요. 나더러 혼자 이솔이 데려오라고 성화인걸요. 나중에 좀 진정되거든 하나 씨 만나겠다네요.”송하나는 지난번 사건이 떠올라 머쓱해졌다.차설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그래요. 나중에 제가 따로 연락할게요.”그때, 심성빈이 서재에서 나왔다. 편안한 홈웨어 차림이었지만 특유의 차분하고 정갈한 분위기는 여전했다.그는 소파에 앉아 최로운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돌아갈 시간이 되자 최이솔이 송하나의 다리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이모, 나 안 갈래! 이모랑 더 있고 싶다고요.”송하나는 최이솔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아 다정하게 타일렀다.“이솔이 착하지. 이모가 이틀 뒤에 꼭 보러 갈게.”겨우 떼어 놓은 아이는 아빠의 손을 잡고서도 아쉬운 듯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집을 나섰다.최이솔을 보내고 난 집안은 금세 고요해졌다.송하나는 텅 빈 거실이 영 낯설고 허전하게만 느껴졌다.이곳을 떠나면 최이솔이나 차설아를 자주 볼 수 없게 될 거라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한 상실감이 몰려왔다.그 후 며칠간, 심성빈은 출국 절차를 밟는 한편 부모님을 설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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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8화

심성빈의 말 한마디에 화기애애하던 룸 안의 공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고여진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도 싹 가셨다.“갑자기 해외라니?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나가겠다는 거야?”심용군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심하 그룹은 이미 기반이 탄탄하고 순조롭게 발전하고 있어. 국내외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굳이 새로운 곳에서 힘들게 사업을 확장할 필요가 있겠니?”“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 발전 가능성이 제한적입니다. 반면 북유라온 시장은 아직 개척할 여지가 많고 잠재력 또한 충분하죠. 그룹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라도 지금 선제적으로 진출하는 건 피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심성빈은 미리 준비한 논리로 무장했지만, 부모님은 그 말을 귀담아들을 기색이 전혀 없었다.지금 두 분에게 중요한 건 회사의 앞날이 아니라 아들의 결혼과 더불어 가정을 이루는 평온함뿐이었다.“사업이 아무리 중요해도 네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일보다 앞설 순 없어! 지유랑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데 결혼도 하기 전에 그렇게 멀리 나가 버리면 어떡하니?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야. 도대체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거니? 회사 일보다는 안정을 찾고 가정을 꾸리는 게 너한테 우선이야.”“네 엄마 말이 맞아. 사업이야 나중에 기회가 닿을 때 해도 충분해. 뭐가 그리 급해서 당장 나가겠다는 거냐?”두 어른의 태도는 단호했다. 사사건건 반대하는 통에 식사 자리는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바로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백지유가 잔잔한 목소리로 이 침묵을 깼다.그녀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태도는 여느 때보다 단호했다.“아버님, 어머님. 저는 성빈 씨가 가진 사업가적인 야망이 참 멋있다고 생각해요.”백지유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심성빈을 힐끗 쳐다보았다. 눈가에는 이 남자를 향한 적절하고 세련된 존경심이 서려 있었다.“젊은 시절에 마음껏 부딪히고 도전해 봐야죠. 현실에만 안주하다간 정체되기 마련이잖아요. 성빈 씨는 안목도 있고 결단력도 있어서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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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9화

백지유는 내밀어진 카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왜 세간에서 심성빈을 두고 ‘냉정하고 금욕적이며 여자 근처엔 얼씬도 안 하는 사람’이라 평하는지 단번에 이해가 갔다.그는 이성을 대할 때 지나치게 절제하고 선을 긋는 데 도가 튼 사람이었다.필요 이상의 친절도 불필요한 밀당도 없었다. 마음의 빚을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도움을 받으면 그저 깔끔하게 대가를 지불할 뿐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감정 통제는 말 그대로 철벽남의 모습이었다.백지유는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도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이런 심성빈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은 걸까?그녀는 담담하게 카드를 받아 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럼 사양 않고 받을게요.”마침 그녀에게도 돈이 필요하던 참이었다.부모님은 그녀를 제어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숨통을 꽉 조여 놓은 상태였으니 이 돈은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았다.백지유는 운전석에 앉은 심성빈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사실 저한테 신세 졌다고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저도 결국 스스로를 위해서 성빈 씨를 도운 거거든요. 알다시피 저는 강현으로 끌려와 강제로 맞선이나 보러 다니던 처지였잖아요. 매일같이 간섭받고 결혼하라는 등쌀에 시달리는 게 정말이지 진저리가 났어요.”“그러던 차에 성빈 씨의 출국 계획을 알게 됐고 지금 제가 집안의 굴레에서 벗어날 최고의 기회가 돼준 셈이죠. 성빈 씨를 따라 해외로 나가면 집안의 경제적인 압박이나 결혼 독촉에서 벗어나 비로소 숨 좀 쉬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심성빈은 아무런 대꾸 없이 묵묵히 전방만 응시하며 차를 몰았다.다음 날 오후, 송하나는 차설아와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장소는 예전부터 둘이 즐겨 찾던 단골 카페로 정했다.카페에 들어선 차설아의 눈에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송하나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이미 반쯤 비워진 핫초코 잔이 들려 있었다.차설아는 가까이 다가가 자리에 앉으며 핀잔을 주었다.“벌써 시켰어? 나 기다리지도 않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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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0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차설아의 눈가가 붉어졌다. 결국 터져 나온 울음기를 머금고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 들었다.송하나는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고 콧등이 아릿해졌다. 그녀는 말없이 차설아를 감싸 안았다.“왜 울어? 나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닌데.”“그럼 약속해.”차설아는 송하나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옅은 울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짐짓 고집스럽게 덧붙였다.“앞으로 매일 영상 통화하기야! 나 모르게 잠수 타고 그러기만 해봐. 절대 가만 안 둬!”“알았어. 약속할게. 매일 너 붙잡고 수다 떨 거야.”송하나는 다정하게 대답했다.“거기 정착하면 나도 로운이랑 함께 이솔이 데리고 보러 갈게.”“그래.”송하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한참을 서로 껴안고 있다가 차설아는 행여나 그녀 앞에서 또다시 무너져 내릴까 봐 급히 몸을 떼고는 화장실에 가겠다며 자리를 떴다.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지만, 오빠의 소식은 여전히 묘연했다.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현실은 매번 그녀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하지만 송하나 앞에서는 그 어떤 슬픔도 내비칠 수 없었다. 그저 남몰래 홀로 감내하며 찢어지는 마음을 다독일 뿐이었다.그사이, 창가 자리에 홀로 남은 송하나의 어깨 위로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았다. 그 평온한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그때였다. 카페 앞 통유리창 너머로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조수석에서 내린 젊은 여성이 재빨리 차 앞을 돌아 뒷좌석 문을 열었다.차에서 내린 서유준은 정갈한 딥 컬러 수트 차림으로 곧은 자세를 유지하며 묵직하고 절제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그는 오늘 옆 건물 카페에서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을 앞두고 있었다.무심코 고개를 돌린 찰나, 창가에 홀로 앉아 있는 그녀와 시선이 맞닿은 것이다.그 순간, 서유준의 발길이 굳어버렸다. 멍하니 멈춰 선 남자의 눈빛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그저 착각일 거라고, 아니면 그녀를 닮은 낯선 이일 뿐일 거라고 서둘러 부정하려 했다.그러나 곁에 있던 임효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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