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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1화

현다영은 말을 마치고 하원영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한 뒤 먼저 메이크업 숍을 나섰다.그녀와 하원영의 뒤를 주단우가 내내 끈질기게 미행하고 있었기에 현다영은 쇼핑몰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훤칠한 실루엣을 단숨에 포착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 또한 현다영이 먼저 예상했던 바였다.주단우는 굶주린 사냥개나 다름없었다. 일단 의심스러운 냄새를 맡은 이상 절대 그냥 지나칠 인간이 아니었다.마침 그녀 역시 주단우와 제대로 담판을 지으려던 참이었으니 도리어 잘됐다 싶었다.현다영은 메이크업 숍을 걸어 나와 2층에 있는 명품 매장 구역으로 곧장 향했다.주단우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하원영이 메이크업을 받는 중인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걸음을 옮겨 현다영의 뒤를 천천히 따라붙었다.현다영은 몇몇 매장을 차례로 둘러보았으나 돌아오는 점원들의 태도는 지극히 성의가 없었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들어간 곳은 전부 명품 매장이었으나 차림새가 워낙 수수한 데다 손에는 명품 가방 하나 들려 있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혼자 매장을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 점원에게 꺼내달라고 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뿐이었고 이내 그녀를 덩그러니 내버려두기 일쑤였다.한 군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매장으로 옮겨도 매한가지였다.그렇게 삼십 분가량 허송세월하는 동안 현다영은 마음에 드는 옷을 단 한 벌도 입어보지 못했다.주단우는 한쪽에서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지켜보며 현다영이 무안을 당하는 모습에 내심 고소해했다.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조금 불편해졌다.‘적당히 좀 하지. 아무리 현다영이 대단한 매출을 올려줄 손님이 아니라고 해도 저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대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닌가?’무엇보다도 현다영은 엄연히 자신이 복수해야 할 대상인데 고작 저런 점원들의 손을 빌려 수모를 당하게 두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주단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안면이 있는 매장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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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2화

현다영이 VIP 룸에서 거울을 비춰보고 있자 옆에 서 있던 여성 직원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끊임없이 감탄사를 연발했다.“그만 칭찬하셔도 돼요. 제가 이걸 다 살 형편은 안 돼서 그러는데 첫 번째 세트는 할인되나요?”현다영의 질문에 직원은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엷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고객님, 할인을 어느 정도 원하시나요?”“이 세트를 사십만 원에 해줄 수 있어요?”직원의 물음에 현다영은 차라리 대놓고 시원하게 질렀다. 사실 옷의 순수한 품질만 놓고 본다면 사십만 원이 딱 적당했다.그 이상 뛰어넘는 금액은 전부 브랜드값으로 붙은 거품일 뿐이었다.만약 밖에서 대기 중인 호구가 없었다면 현다영은 애초에 명품 매장에서 옷을 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터였다.“사십만 원이요?”직원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기색이 스쳤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현다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다과를 먹으며 상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서둘러 돌아온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객님께 직원 할인가를 적용해 드리기로 했어요. 사십만 원에 맞춰 드릴게요.”현다영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너무 자비로운 가격을 부른 게 아닌가 내심 후회가 밀려왔다.‘그냥 이십만 원이나 십만 원 정도를 불렀어야 했는데...’현다영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그러면 이 옷으로 할게요. 영수증 끊고 결제해 주세요. 그리고 제가 입고 온 옷은 따로 백에 좀 담아주시고요. 감사합니다.”“네, 알겠습니다.”직원이 막 움직이려던 찰나, 현다영이 불쑥 말을 덧붙였다.“직원가로 사십만 원에 줄 수 있다면 여기 남은 옷들도 그냥 다 살게요.”“네?”직원은 즉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건... 잠시만 더 기다려 주세요.”현다영은 직원이 다시 허겁지겁 밖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한참이 지난 후에야 돌아온 직원은 역시나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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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3화

현다영은 무척 실속을 따지는 사람이었다. 평소에도 돈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기에 옷 한 벌 사려고 명품 매장에 오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설령 하원영과 주시언이 대신 계산해 줄 수 있다고 한들 대뜸 세 세트나 구매하며 매장 직원에게 그토록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할 리도 없었다.현다영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그를 바보 취급했다.명품 매장에서 흥정이 통할 리 만무했고 어떤 할인 혜택도 존재하지 않으니 그 차액은 고스란히 주단우가 메울 수밖에 없었다.자신은 좋은 마음으로 현다영을 위해 직원을 연결해 주며 옷을 고르게 도왔건만 상대는 고의로 그의 지갑을 털어버린 셈이었다.하지만 주단우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진 뒤였다.안면이 있는 직원에게까지 도움을 청해 둔 터라 자존심상 이 주문을 끝까지 책임지고 결제할 수밖에 없었다.비록 주단우에게 이 정도 돈은 한낱 푼돈에 불과했으나 현다영의 이러한 행동거지는 그를 몹시 불쾌하게 만들었다.현다영이 자신에게 부탁했다면 주단우도 기꺼이 들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현다영은 그에게 신세를 지게 되고 신세를 졌다면 언젠가는 갚아야 했다.그러나 지금 현다영은 표면적으로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의 돈을 지급했고 그가 뒤에서 벌인 모든 일은 그저 자초한 꼴이 되어버렸다.게다가 진작부터 주단우를 철저하게 계산 속에 넣어두었으면서 여전히 순진한 양 행세를 하고 있었다.“저한테 옷을 사주셨다니요? 부대표님, 말을 똑바로 하셔야죠. 이 옷은 제 돈으로 제가 산 건데 어떻게 부대표님께서 사주신 게 되나요?”현다영은 눈을 깜빡이며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주단우가 매번 자신 때문에 이를 부득부득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는 내심 통쾌하기 그지없었다.돈도, 다른 사람의 감정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바로 주단우였다. 그러니 자신이 그에게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상처받을 리 없었다.“허.”현다영과 구구절절 따지기 귀찮아진 주단우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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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4화

주단우의 가슴이 한동안 격하게 들썩였다. 그 역시 현다영과 더는 빙빙 돌며 말장난하고 싶지 않았다.“내가 뭘 하려는지 너한테 일일이 보고할 필요가 있나?”“당연히 없죠. 그리고 부대표님이 하려는 짓이야 누군들 못 맞추겠어요? 하원영 씨와 주시언 씨의 일을 확인해서 엄 대표님한테 고자질하려는 거잖아요. 그렇게 하면 어머니 비위를 맞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요.”현다영은 주단우의 속내를 완전히 꿰뚫어 보았다.주단우가 가소롭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다.“하원영과 주시언 일을 굳이 확인까지 해야 해? 하원영 손에 끼워진 반지가 바로 결혼반지야. 난 그저 이 소식을 주병찬 회장님께 알리기만 하면 돼. 그것만으로도 그 집안이 한바탕 난장판이 되기엔 충분하니까.”“그런데 대체 뭘 망설이시는 건데요?”현다영은 여전히 주단우를 똑바로 응시했다.현다영은 알고 있었다. 주단우가 이 일을 엄경미에게 알릴 생각이었다면 이미 말했을 것이다.그가 저렇게 말한 건 아직 엄경미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의미였다.과거의 주단우는 무슨 일이든 알게 되면 가장 먼저 엄경미에게 보고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주단우 역시 자신만의 속내가 있는 모양이었다.그도 그럴 것이, 지난번 엄경미는 주단우를 벌하기 위해 그를 가차 없이 몰아붙였다.주단우가 아무리 어머니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한다 해도 그는 본래 손익을 철저히 따지는 사람이었다.지금 강지현이 주상 그룹을 장악하고 있고 자신은 엄경미에게 중용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기 살길 하나 마련해 두지 않을 리 없었다.현다영이 주단우와 이야기하려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하고 싶은 말이 뭐야?”주단우는 현다영의 말에 담긴 뉘앙스를 알아챘다.“부대표님께서는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 주셨으면 해요.”“지금 장난해? 네 눈에 난 악당이잖아. 이렇게 좋은 기회를 두고 내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강지현을 도와?”“지현 언니를 돕는 게 아니라 부대표님 스스로 여지를 남겨두라는 뜻이에요.”현다영이 손을 뻗어 주단우의 가슴을 살짝 밀어냈다.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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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5화

남자의 숨결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현다영은 미처 피할 틈이 없었다. 주단우의 입술이 닿을 듯 가까워지자 그제야 급히 손을 뻗어 얼굴 앞을 가렸다.주단우 역시 처음에는 그저 그녀를 골려줄 생각이었다.따스한 숨결이 그녀의 손바닥 위로 스쳤고 주단우가 일부러 혀끝을 내밀자 느껴진 뜨거운 감촉에 현다영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부대표님.”주단우는 그 틈을 타 현다영의 손목을 움켜잡더니 그녀의 목덜미를 한 차례 가볍게 깨물었다.현다영은 겁먹은 작은 짐승처럼 온 힘을 다해 주단우의 품을 빠져나와 도망쳤다.쇼핑백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돌아볼 틈도 없이 앞으로 달렸다.그러나 주단우는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성큼성큼 그녀를 따라잡은 그는 다시 그녀를 반대편 구석진 벽면으로 몰아세웠다.“왜? 제 발로 찾아와 담판을 짓자고 해놓고 얘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도망치겠다고? 네 눈에는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주단우가 현다영의 뺨을 움켜쥐고 힘을 주자 현다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저는 조건을 내걸고 대화를 하러 온 거지 추잡한 거래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부대표님, 자중하시죠.”이곳은 엄연한 공공장소였다. 현다영은 주단우가 감히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상대로 장난을 치려 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좋아. 그러면 제대로 조건을 따져보지. 네가 나한테 줄 수 있는 게 뭔데?”현다영은 주단우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어쩌면 제가 부대표님을 도와 엄 대표님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해드릴 수도 있어요.”“그래?”주단우가 가소롭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부대표님도 사실 자유를 원하시잖아요. 바라시는 명예와 이익, 부와 지위, 그리고 행복이 과연 남의 눈치를 보며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인가요? 진정한 자유가 없으니 부대표님도 늘 마음 한구석이 공허하고 불행하신 것 아닌가요?”현다영의 말은 그야말로 직설적이었다. 주단우 같은 사람 앞에서 자유를 논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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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6화

“게다가 부대표님이 예전에 맡으셨던 프로젝트와 경영안, 그리고 회사의 개혁안을 꽤 많이 봤어요. 하나같이 눈에 띌 만큼 훌륭하더라고요. 솔직히 부대표님 실력이면 이미 누구에게 기대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나요? 그렇게 능력이 뛰어나신 분이 주상 그룹에서 엄 대표님의 수족 노릇만 하면서 만족하실 수 있겠어요?”이 말은 진심이었다.현다영은 주단우라는 인간을 지독히도 싫어했지만 일할 때의 능력만큼은 인정했고, 어느 정도는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물론 주단우를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치켜세운 건 부정할 수 없었다.역시나 주단우는 자신을 칭찬하는 현다영의 말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방금 전까지 장난스럽게 굴던 기색이 순식간에 누그러지고, 얼굴에 옅은 웃음이 떠올랐다.그는 현다영의 뺨을 놓으며 낮게 웃었다.“보아하니 나한테 관심이 아주 많았나 보네.”“...당연하죠.”당연했다. 강지현의 적이자, 소중한 친구를 해친 원수인데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있나.주단우가 목소리를 낮췄다.“네가 강지현 때문에 나한테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다는 건 알아. 그래도 일단 말을 꺼냈으니, 이제부터는 잘 생각해 봐. 내가 원하는 걸 손에 넣게 하려면 네가 어떻게 도와야 할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단우가 갑자기 몸을 숙였다. 그는 다시 현다영을 벽 쪽으로 몰아붙였다.숨결이 귓가를 스쳤다.현다영은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불쾌감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그때 현다영의 휴대폰이 진동했다.하원영에게서 온 전화였다.하원영은 이미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마치고 현다영을 찾으러 온 참이었다. 2층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두어 바퀴만 돌고도 익숙한 뒷모습을 금방 찾아냈다.“주단우 씨! 사람들 다 있는 데서 다영 씨한테 뭐 하는 거예요!”하원영은 현다영이 주단우에게 붙잡힌 줄 알고, 체면 따질 것도 없이 곧장 달려왔다.주단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재빨리 몸을 피했다.하원영이 현다영을 제 옆으로 끌어당긴 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피는 모습을 보자, 주단우는 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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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7화

어쩌면 현다영과 주단우 사이에서, 현다영이 꼭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당하기만 하는 쪽은 아닐지도 몰랐다.현다영이 고른 원피스는 꽤 예뻤다. 하원영은 그녀도 같이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게 해 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빠듯했다.애초에 현다영은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으러 온 것뿐이었으니 옷차림만 단정하면 충분했다.게다가 아직 어린 데다 피부도 워낙 좋아, 옷만 갈아입었을 뿐인데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저녁 7시, 거리에서 가장 번화한 자리에 있는 주씨 가문의 프렌치 레스토랑이 정식으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오늘은 초청받은 손님들만 받을 뿐, 일반 손님은 받지 않았다. 소문을 듣고 몰려온 기자들과 구경꾼들은 경호원들에게 정중히 제지당해 문밖에 머물렀다. 밤빛 아래 금박으로 장식된 레스토랑 간판이 은은하게 빛났다. 화려하면서도 심플한 고급스러움이 느껴졌다.하원영과 현다영은 일찍 도착했다.주시언은 원래 직접 차를 몰고 하원영을 데리러 가려 했지만, 하원영이 현다영과 함께 있다며 거절했다.그런데 레스토랑에 도착한 뒤 다시 주시언에게 연락했을 때는, 어째서인지 한참이 지나도 답이 오지 않았다.오늘은 사람이 많았다. 혹시 하씨 가문 사람들과 마주칠까 봐 주시언은 하원영에게 따로 룸을 마련해 두었다. 하지만 정작 주시언은 아직 오지 않았고, 손님이 몰린 탓에 직원들도 모두 바빠 보였다. 하원영도 누구를 붙잡고 묻기가 애매했다.현다영의 일행은 이미 모두 도착해 있었다. 다들 한껏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이번 무료 만찬을 아예 작은 파티쯤으로 여기는 듯했다.사람들이 우르르 다가오더니, 가장 먼저 현다영의 원피스를 알아봤다. 뜻밖에도 명품 브랜드 제품이었다.현다영은 조금 민망해져, 급하게 친구 옷을 빌린 거라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현다영의 원피스를 두고 한창 이야기가 오가던 중, 이번에는 하원영의 드레스가 다시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하원영의 드레스는 꽤 화려했다. 게다가 이 레스토랑 안에서도 하원영만큼 분위기와 외모가 돋보이는 사람은 몇 없었으니, 자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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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8화

하원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맞아. 하씨 가문이 나한테 참 못 해 줬지. 맞춤 드레스 같은 건 한 번도 입어 본 적 없거든. 그런데 시언 오빠가 선물해 준 이 드레스는 정말 예쁘더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하원영의 목소리도 또렷했다.드물게도 그녀는 흥분하지 않았다. 하지유가 시비를 걸자마자 맞받아치며 말다툼을 벌이지도 않았다.두 사람의 대화는 곧 주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뭐야, 하원영은 집에서 오냐오냐 자라서 저렇게 됐다던데. 그런데 맞춤 드레스 하나 못 입어 봤다고?”“그러게. 하 회장 쪽에서 양녀를 너무 예뻐해서 버릇이 나빠졌다더니, 그래서 지금 골치 아파한다는 얘기 아니었어?”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하지유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하원영이 체면을 내려놓고 이런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하씨 가문도 결코 무사할 수 없었다.하지만 하원영이 주시언을 언급하자, 하지유는 금세 말을 돌렸다.“그래, 드레스는 예쁘네.”“시언 오빠가 준 거라면 당연히 좋은 물건이겠지. 그 오빠야 원래 씀씀이가 크니까. 다만...”하지유가 일부러 말을 끌었다.“내가 듣기로는 시언 오빠한테 이미 약혼녀가 있다던데. 그런 사람이 너한테 이렇게 비싼 선물을, 그것도 이렇게 사적인 선물을 주는 건 좀 그렇지 않아?”“약혼녀?”하원영이 순간 멈칫했다.현다영은 하원영이 하지유의 말에 휘말릴까 봐 얼른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하원영을 제 뒤쪽으로 살짝 끌어당겼다.“그럴 리 없잖아요. 주 대표님께 약혼녀가 있었다면 저희에게도 말씀하셨겠죠. 하지유 씨가 어디서 잘못 들으신 거 아닐까요?”“넌 또 누구야? 내가 언니랑 얘기하는데 네가 왜 끼어들어? 그리고 시언 오빠 일까지 왜 너한테 말해야 하는데?”하지유는 현다영이 어딘가 낯익기는 했지만 정확히 누군지는 알지 못했다.아마 주상 그룹 사람이거나, 강지현 곁에 있는 사람일 터였다.하지유는 현다영의 옷차림을 훑어보더니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하원영은 꼭 저런 애들이랑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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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9화

하원영이야 주시언이 뒤를 봐 준다고 믿고 요즘 더 기고만장해진 것 아니겠는가.집에도 돌아가지 않고, 주상 그룹에 붙어 잘 보일 생각만 하더니 정말 주시언이 제 인생을 뒤집어 줄 거라는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하석철의 지인 중 하나가 최근 주병찬과 함께 있다가 한 가지 소식을 들었다. 주병찬이 이미 주시언에게 아주 괜찮은 약혼녀를 정해 줬다는 것이었다.상대는 해원시 정계 명문가의 딸이었다. 집안 배경도 대단한 데다, 여섯 개 국어에 능통한 국가급 통역관이기도 했다.그 여자는 연씨 가문의 그 아가씨와는 전혀 달랐다. 곱게만 자라 성질만 드센 사람이 아니라, 속부터 겉까지 빠지는 데 없이 훌륭했다. 그 여자와 비교하면 하원영은 볼품없어 보일 정도였다.더 중요한 건, 그 여자가 주시언과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는 점이었다. 두 사람은 대학 동창이었고 주시언이 해외에서 사업할 때도 그 여자가 적잖이 도움을 줬다고 했다.주병찬 말로는 두 사람은 줄곧 서로를 알아주는 친구였고, 처음 만난 뒤로 연락을 끊은 적도 없다고 했다.어제 오전, 주병찬은 직접 그 여자와 함께 식사한 사진을 올렸다. 거기에 ‘예비 며느리’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사실상 주시언의 약혼녀라고 공식적으로 못 박았다.그 일은 이미 해원시 상류층 사이에 거의 다 퍼진 상태였다. 그런데 하원영의 표정을 보니,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하긴, 하원영도 한때 주시언이 마음을 줬던 사람이었다. 남자들이란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묘한 미련을 품기 마련이었다.결혼하기 전까지 주시언이 하원영과 한동안 애매한 관계를 이어 가고 싶다면, 당연히 숨길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하원영도 예전에 주시언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었다. 어쩌면 주시언 역시 점잖고 반듯한 얼굴 뒤에 복수심을 숨기고 있을지도 몰랐다.하원영은 주시언을 보자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반가움도 있었지만 난처함과 걱정도 함께 스쳤다.또 주시언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았다.“시언 오빠, 오자마자 왜 이렇게 화가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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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0화

육나래가 주시언에게 술잔을 내밀었다.“벌주 한 잔 해야지.”주시언에게 스스럼없이 구는 모습이, 마치 그의 파트너라도 되는 듯했다.현다영은 순간 멈칫했고, 하원영도 그대로 굳어 버렸다.그 와중에 하지유만 고소하다는 듯 입꼬리를 감추지 못했다.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사람처럼 한껏 들떠 있었다.“아, 나래 언니 맞죠? 주 회장님이랑 같이 찍은 사진 봤어요.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예쁘세요!”하지유는 한마디 치켜세우더니, 이번에는 일부러 살갑게 하원영을 불렀다.“언니, 이분이 바로 시언 오빠 약혼녀야. 언니도 본 적 있지? 시언 오빠 대학 동창이고, 지금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통역관이래. 듣기로는 오빠 아주 소중한 친구였다던데...”“하지유!”주시언이 끝내 참지 못하고 싸늘하게 말을 끊었다.육나래가 내민 술잔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는 불안한 얼굴로 하원영만 바라보고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하지유의 말을 들은 하원영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하원영도 육나래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 있었다. 주시언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 두 사람은 실제로 몇 번 마주친 적도 있었다.그때의 육나래는 성적이 뛰어났고 학교에서도 주시언과 함께 일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하원영이 육나래를 처음 본 건, 그녀가 주시언에게 학습 자료를 가져다주러 왔을 때였다. 마침 주시언은 하원영과 식사 중이었다.그때 주시언은 하원영에게 육나래를 소개하며 꽤 높이 평가했다.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하원영은 괜히 장난기가 올라,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면 한번 따라가 보라며 주시언을 몇 마디 놀렸던 기억이 났다.하지만 그때의 주시언은 하원영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고, 그 일도 금세 지나가 버렸다.그런데 설마, 그 뒤로도 두 사람이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을 이어 왔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육나래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금의 그녀는 세련되고 눈부셨다. 맑으면서도 고고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쉽게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그런 여자가 주시언 곁에 서 있으니,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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