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Chapter 91 - Chapter 100

108 Chapters

제91화

화면을 바라보던 이현이 중얼거렸다.“형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뭐가?”“우리 감정을 은하한테 드러내는 거 말이야. 사실 이미 늦긴 했는데….”이현의 표정이 이렇게까지 안쓰러워 보였던 적은 태하에게도 처음이었다. 자신의 마음도 적잖게 무너졌는데, 왜 이 녀석이 더 아파보이는 건지. “야, 백이현.”“걱정 하지 마. 은하 뜻대로, 형님 말씀대로 할 거야. 친구로… 강은하 지켜줄 거야.”“그래. 우리, 친구로서 끝까지 지켜주자.”이현이 짧게 웃었다.태하 역시 마찬가지였다.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 마음을, 감정을 수도 없이 속여야만 하는 걸까. 창밖은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은하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잠 들어 있을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감정을 힘겹게 숨겨야만 한다는 사실은 아마도 모르고 있겠지.태하가 노트북을 덮었다.“그래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아.”이현은 그 말을 곱씹었다.후회…?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절대 혼자 두지 않을 거야.”그들의 결심은 감정만큼이나 확고하고, 단단했다.***창문 밖을 바라보는 우주의 손에는 어울리지 않게 와인 잔이 들려 있었다.어둠 속에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 그 불빛을 따라가듯 시선을 옮기다 보니, 문득 이현과 태하의 얼굴이 떠올랐다.그들의 감정을 모를 리 없었다.그동안 은하를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장본인 이니까. “나도 참, 모질다. 모질어.”자신이 내뱉은 말들이, 마음을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을까.“은하한테는 그게 최선이니까.”이기적이지만, 어른으로서 너무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자신의 결정이 맞다고 끝까지 합리화했다.사랑과 보호는 다르다. 만약 감정이 더 깊어지고, 그 깊어진 감정이 은하를 지금보다 더 불안하게 만든다면? 더 큰 문제는 비슷한 감정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부디 너희들이 그 선을 잘 지켜주길 바란다. 그리고… 미안하다.”***다음날도 이현과 태하는 현관 문을 두드
Read more

제92화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선 세 사람.우주는 오늘도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왔어?”식탁을 둘러보던 이현이 놀라며 물었다.“대박, 형님! 이 불판은 설마….”“응. 오늘은 우리 삼겹살 구워 먹자.”식탁 위에는 평소와 다르게 불판과 함께 세팅된 반찬들과, 두툼하게 썰린 삼겹살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얼른들 앉아. 금방 구워줄 테니까.”이현은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불판을 바라보았다.“역시 고기는 구워 먹어야 제 맛이지.”곧 치이이익- 소리와 함께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어가며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태하 역시 냄새를 맡으며 미소를 지었다.“와, 진짜 맛있겠다.”은하 역시 말없이 불판을 바라보았다.따뜻한 불빛 아래에서 고기가 익어가는 모습. 그 풍경이 왠지 낯설고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함께 밥 먹는 것 역시 익숙해진 네 사람.흡족한 듯 고기를 마구 집어먹던 이현이 우주를 향해 물었다.“형님, 근데 형님이랑 은하는 정확하게 몇 살 차이에요?”“11살.”“와, 그럼 형님 초딩 때 은하가 태어났던 거네요?”“응. 아직도 기억나. 은하 태어났을 때, 엄청 작고 예뻤어.”“그쵸? 지금은 완전 역변 한 거죠?”눈을 가늘게 뜬 은하가 이현을 빤히 노려보았다.“…너 방금 뭐라고 했어? 뭐? 역변이라고?”“지금은 엄청 작고, 엄청 예쁘진 않잖아!”태하도 순간 긴장하며 은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백이현. 그냥 먹던 고기나 쳐 먹어라.”이현은 시치미를 떼며 삼겹살 한 점을 다시 집어 입에 넣었다.“저는 동생이랑 사이가 별로거든요. 애가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 에휴.”“이현이도 동생이 있구나? 몇 살 차이야?”“2살이요. 내년에 저희 학교로 입학 한다는 데. 벌써부터 골치가 아픕니다. 형님.”“뭐가 그렇게 문제인데 그래.”“허구언날 시비 걸고, 욕하고, 반대로 행동하고. 그리고 또 엄청 뻔뻔해요.”억울하다는 듯 동생 흉을 늘어놓는 이현을 향해 은하가 말했다.“응? 그거 완전 너잖아.
Read more

제93화

이현이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형님! 이렇게 저녁마다 같이 밥 먹고, 매일 만나면 그것도 가족 아닌가요?”태하 역시 이현의 말에 동의했다.“인정. 이 정도면 거의 한 집 살이지….”우주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그래. 요즘 들어 철없는 남동생 두 명이 더 생긴 것 같기는 해.”“저희를 더 올바르게 키워주십쇼! 형님!”“이현아. 부모님이 들으시면 서운하시겠다.”그들의 대화를 듣던 은하는 유난히 말이 없었다. 다만, 어쩌면 이현과 태하는 '가족'이라는 단어를 편하게 말하면서도, 가장 낯설어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그리고 자신 역시, 매일 우주와 둘이서만 먹던 저녁 식사가 부쩍 시끄러워진 요즘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그때, 따뜻한 우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내면 되지. 혼자들 밥 먹는 일은 없었으면 해서.”그들이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가족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부모님의 기일. 학교를 마친 은하가 이현과 태하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전했다.“오늘은 나 학원 못 가. 그러니까 데리러 안 와도 돼.”“왜? 어디 가?”“부모님 기일이라, 오빠랑 납골당 다녀오기로 했거든.”“아….”“그래, 조심히 다녀오고. 내일 아침에 보자.”“응.”부모님을 찾아 뵙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우주와 은하.집 앞에는 작은 화분과 삐뚤빼뚤 적힌 글씨로 채워진 편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편지를 들어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우주가 피식거리는 웃음을 터뜨린 채, 은하에게 편지를 건넸다.“푸하, 은하야. 이것 좀 읽어봐.”편지를 받아 든 은하의 시선이 점점 아래로 향했다.[사랑하는 형님과 은하에게.오늘 중요한 날인 거 알고 있음. 너무 심각하게들 보내지 마시고,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면서 마무리 하시길 바람. 화분은 강은하가 잘 키우고, 안 키우면 더 큰 걸로 보낼 거임. 내일 봐요. 형님, 그리고 강은하. -백이현&정태하]우주
Read more

제94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현과 태하는 은하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 말았다.“강은하, 학원에서 뭔 일 있었냐?”“그러게. 표정이 별로 안 좋네.”잠시 머뭇거리던 은하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원장님이… 페스티벌에 작품 출품을 하자고 하셔서.”태하와 이현이 똑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미술 대회 같은 거야?”“응.”“근데 그게 왜?”“잘 모르겠어. 그럴 실력이 되는 건지.”두 사람은 은하의 이런 말투가, 생각이, 머뭇거림이 답답하기만 했다.“은하야. 원장님이 제안 하신 거면, 이미 네 그림이 충분히 괜찮다는 뜻 아닐까?”“강은하. 너 괜히 겸손 떠는 거 아니지?”태하가 이현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은하야, 혹시 부담스러워?”“조금.”은하의 기어들어갈 듯한 작은 목소리에, 이현이 피식 웃었다.“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맞아. 그냥 부담 갖지 말고 나가 봐.”은하는 두 사람의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참가’라는 선택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우주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어차피 방학이니까 시간적인 여유도 있을 거고, 작품만 보내면 되는 거면 오빠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데?”“…정말?”“응, 당선 안 되면 또 어때. 준비하면서 은하 실력도 그만큼 늘텐데 뭐.”사실, 페스티벌이라는 말만 들어도 긴장감이 느껴졌었다. 사람들에게 평가 받는다는 것. 자신의 그림이 누군가의 기준에 의해 판단된다는 것. 그 자체가 이상하게 두려웠다.하지만 그들의 격려와 응원에, 은하는 결국 도전을 결심했다.“한 번… 해보지 뭐.”우주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오래도록 감돌았다.***겨울 방학 첫 날.아침 일찍부터 이현과 태하가 은하의 집 문을 쾅쾅쾅 두드렸다.“형님~ 강은하~”은하는 시끄러운 소리에 이불 속에서 몸을 움츠렸다.‘아 뭐야… 아직 아침인데.’문득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오전 7시 30분. 방학의 첫날 치고는, 너무나 이른 시간이었다.머리를 이
Read more

제95화

한 바퀴까지만 해도 숨은 가빠졌지만, 아직은 버틸 만했다.그러다 두 바퀴 째에 접어들었을 때, “오, 강은하. 생각보다 잘 뛰는데?”이현이 옆을 스치며 놀려대자, 은하는 헉헉거리는 숨을 내쉬며 그를 노려보았다.“헉… 말… 헉… 걸지 마.”어느덧 마지막 코스, 이현이 마지막 스퍼트를 내며 소리쳤다.“은행 나무에 먼저 닿는 사람이 1등이랬다!”그 말에 태하 역시 속도를 높였다.은하는 버티고, 또 버티며 점점 가까워지는 은행나무를 향해 최대한 힘을 내며 달렸다. 각자의 손바닥이 은행나무 기둥에 닿는 순간, 모두가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섰다.결과는 당연히 은하의 꼴찌. 그리고 이현이 1등이었다.“뭐냐? 한 놈은 허구언날 공부만 하느라 느려 터졌고, 강은하는 두 바퀴에 아주 죽네 죽어.”은하와 태하는 미친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와씨, 백이현 겁나 빨라.”은행나무 앞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기 시작한 세 사람.그러다 문득, 태하의 머릿속에 과거 은하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은하야, 너 이 은행나무 엄청 좋아하잖아.”“응. 근데, 오늘부터 좀 싫어지려고 하네….”태하는 은하의 반응이 웃기다는 듯 한참을 웃더니, 벤치에 등을 기대며 은행나무 가지를 올려다보았다.“그냥. 네가 예쁘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은하와 이현 역시 나무를 힐끗 바라보았다. 커다란 가지와 든든한 줄기,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서 있는 존재. 은하는 처음 전학 오던 날부터 이 은행나무에 눈길이 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나무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고 말이다.“맞아. 늘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보고 있잖아.”“우리? 대박! 강은하! 너 방금 우리라고 했어?”“뭐. 왜.”“정태하, 너도 들었지?”“응. 우리.”“강은하가 우리라고 했다! 와! 역사적인 순간이다!”이현은 마치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나무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은행나무 신령님. 앞으로 1년 동안 저희를 잘 지켜주시옵소서. 할렐루야
Read more

제96화

태하 역시 고급스러운 한정식 식당에서 부모님과 마주 앉아 있었다.어머니가 반찬을 집으며 자연스레 물었다.“혼자 사는 건 괜찮고?”“이현이 있잖아요. 잘 지내고 있어요.”“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니?”“네. 대충이요.”“최 비서 말로는, 옆집에 사는 친구네서 자주 먹는 다던데?”“……아. 네.”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아버지가, 이내 경고 섞인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남한테 신세지는 습관, 자꾸 들이면 안 된다.”“….”“자립한다고 나간 애가, 결국 남의 도움이나 받고 살면 그게 무슨 독립이냐.”“도움 받는 게 꼭 나쁜 것 만은 아니잖아요.”“사람은 언제든 자기 힘으로 살아야 한다. 친구라고 해도 오래 얽혀 있으면 결국 빚지고, 의존하게 되는 거니까.”오늘따라 태하는 짜증이 밀려왔다. 최 비서에게 온갖 보고를 듣고 있는 것도, 여전히 자신을 믿지 못하는 태도도.“아버지도 이현이 부모님께 도움, 받으셨잖아요.”생각지도 못한 태하의 대답에 어머니는 놀란 듯 눈을 키웠고, 아버지는 반대로 눈을 가늘게 뜨며 태하를 주시했다. “뭐?”“뭔가 아버지 말이 앞 뒤가 안 맞아서요. 말씀대로라면, 아버지도 그때 그 도움은 받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사업이랑 친구 관계는 다르지!”“저는 사업이든, 친구든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신세가 아니라 관계라는 거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방식이잖아요.”아버지는 한참 동안 태하를 바라보았다. 할 말은 목끝까지 차올랐지만 결국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직은 미성년자니까, 어른이 되면 자신의 자리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까. ***각자의 집에 다녀온 이현과 태하가 집 앞에서 다시 만났다. “별일 없었냐?”“똑같지 뭐.”“나도.”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각자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왔는지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이곳이 훨씬 더 편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가.*
Read more

제97화

겨울방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각자의 일상도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태하는 늘 그렇듯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하는데에 보냈다.이현은 가끔 태하의 옆에서 공부를 하다, 이내 답답한 듯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TV를 봤다.은하는 아침 운동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곧바로 미술학원으로 향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은하에게 원장님이 다가왔다.“은하야, 페스티벌 준비는 잘 하고 있니?”“그, 그럭저럭요.”“혹시, 주제는 정해졌고?”은하는 괜스레 손끝만 만지작거렸다.주제가 자유 창작이라 부담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아직… 고민 중이에요.”“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찾아봐. 그래도, 은하가 가장 그리고 싶은 걸 그리는 게 좋겠지?”“네.”은하는 원장님의 말을 되새기며, 붓을 다시 움직였다. 하지만, 여전히 하얀 캔버스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미술 학원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 오늘도 태하와 이현은 은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강은하!”“끝났어?”첫눈이 내렸던 날 이후로, 거리는 어느새 완벽한 겨울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야, 대회 준비는 잘 하고 있냐?”“몰라.”“우리가 도와줄게.”“뭘?”“우리가 모델 해줄게.”태하와 은하는 황당하다는 듯 이현을 바라보았다.“뭔 소리냐 또.”“모델은 굳이 안 해줘도 될 것 같은데.”“잘 생각해봐. 비주얼이 이렇게나 훌륭한데, 몰입감부터 상당하지 않겠어?”은하는 결국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됐어. 그나마 있던 영감도 사라지겠어.”순간, 태하가 갑자기 주제를 바꿔 물었다.“우리 오늘, 집에서 치킨 시켜 먹으면서 영화나 볼까?”금세 분위기가 달라졌고, 이현이 신이 난듯 방방 뛰었다.“오 정태하 굿! 요즘 OTT에 신작 엄청 올라왔더라.”“얼른 허락부터 맡으러 가자.”“콜! 우리의 우주 형님이 반대하실 리가 없잖아?”이제야 은하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혹시 내 의견은…
Read more

제98화

어느샌가 집 안에는 치킨 냄새가 솔솔 풍기고 있었고, 거실에 둘러 앉은 세 사람 역시 편안해보였다.“뭐 볼래? 로맨스? 코미디? 호러?”태하가 곧장 이현의 손에 들린 리모컨을 빼앗아 들었다.“벌써 골라 놨음.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영화라던데 반전 대박이라더라.”“역시 전교 일등 굿! 강은하, 이 스피커 이거 서라운드 미친 스피커임.”“…어쩌라고?”“영화관 필요 없다? 진짜 차원이 다르다니까?”“그래….”태하가 고개를 저으며 닭다리를 하나씩 나눠주었다.“자, 이제 시작한다.”“좋았어. 레츠 고!”조용해진 거실, 오프닝 음악이 울려 퍼졌다. 서라운드 사운드가 벽을 타고 울리며 몰입감을 더했다.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치킨 박스도 이내 바닥을 드러냈고, 세 사람의 자세도 점점 편안해졌다.이현은 소파에 기대어 앉아 팔짱을 끼었고, 은하는 이현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쿠션을 끌어안았다.배가 불러진 태하는 슬슬 바닥에 널부러지기 시작했고. 화면 속에서는 이제야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 시작돼고 있었다.하지만 스물스물 퍼지는 뜨끈한 난방의 온기, 묵직한 배부름에 나른함이 몰려왔다.가장 먼저 눈을 감은 건 은하였고. 태하 역시 바닥에 누운 채로 잠이 들어 버렸다.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이현은 한 번 씨익 웃더니, 이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스르륵 눈을 감았다. ***시간은 어느새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우주는 거실로 나와 창문을 통해 옆집을 바라보았다. 불이 희미하게 켜져 있는걸 보니, 거실에서는 여전히 영화가 재생되고 있는 듯 보였다.“아직 안 끝난 건가? 그래도 시간이 너무 늦었는데.”결국 그들 집으로 향한 우주.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곤히 잠든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소파에 기대어 잠든 이현, 바닥에 널부러져 잠이 든 태하. 그리고 이현쪽으로 살짝 고개를 떨군 은하의 모습까지.말없이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숨을 쉬면서도 어쩐지 미소가 지어졌다.“이럴 땐 진짜 애들 같네.”조심스레 리모컨을 들어 TV를 끄고
Read more

제99화

미술 학원,페스티벌에 제출할 그림을 그리는 은하는 한껏 집중한 모습이었다. 작품의 제목은 ‘등지고 있는 소녀’.캔버스 중앙에는 소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왼쪽 절반은 꽤나 어두운 공간, 오른쪽 절반은 따뜻한 빛이 비치는 공간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분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오른쪽에 그려진 은행나무 잎들은 단순한 은행나무 잎이 아닌, 빛에 따라 투영하게 반짝이며 흩날리는 듯한 형상이었다. 마치 공기 속에서 부유하는 기억의 조각들 같았다. 어떤 잎은 어린 시절 오빠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고, 또 어떤 잎은 현재를 담고 있었다. 자신과 늘 함께 있는 친구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은하는 붓을 쥔 채, 오른쪽에 그려진 은행잎들에 시선을 고정 시켰다.빛 속에 부유하는 은행잎들. 그 안에 진짜로 그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그림을 지켜보던 미술 학원 원장님 역시 흐뭇하게 은하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이번 주 까지는 완성해야 하는데. 마무리 할 수 있겠어?”“…네.”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채워지는 캔버스.어느새 그림 속 소녀는 반짝이는 잎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은하는 결국 완성된 작품을 기간 내에 출품했다.작품이 제 손을 떠나갈 때, 손끝이 살짝 저릿했다. 하지만 표정 만큼은 어느 때보다 후련했다.그날 저녁, 이현과 태하와 함께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자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조금은 어둑한 집 안, 거실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그때,“짜잔!”환하게 거실 불이 켜졌고, 테이블 위에는 피자와 치킨, 작은 케이크까지 준비되어 있었다.우주는 자리에 서서 멋쩍은 듯 박수를 치고 있었고, 이현과 태하 역시 두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작품 출품을 축하합니다!”“은하야. 고생했어 진짜.”은하는 괜스레 민망스러워졌다. “뭐야…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결과가 뭐가 중요해? 끝냈다는 게 중요한 거지.”“맞아. 강 화백님. 고생하
Read more

제100화

아침 운동을 마친 세 사람, 이현이 문득 고개를 돌려 태하와 은하를 바라보았다.“방학 끝나기 전에 우리 놀러 가자.”“어디?”“응?”“강은하도 그동안 고생했고. 이대로 방학이 끝나면 나 너무 슬플 것 같단 말이야.”태하가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네, 뭔가 방학 내내 운동만 시킨 것 같고. 은하야, 넌 어때?”은하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른 누군가를 떠올린 모양이었다.“그럼 우리, 민희도 같이 갈까?”“걔는 요즘 O스타 보니까 남자친구랑 노느냐고 바쁘던데 뭘.”“그럼 민희 남자친구랑도 같이 가면 되잖아.”엥? 이런 식으로 흘러갈거란 생각은 차마 못 했는데.“커플 사이에 끼자고? 난 싫어.”“나도 수혁이랑은 별로 안 친한데.”“뭐 어때. 어차피 민희랑 우리는 친구잖아.”태하는 결국 민희의 의견을 묻기로 했다.솔직히 내키진 않았지만, 은하가 가장 편안해 하는 친구가 민희라는걸 알고 있었으니까.“오고 싶으면 오는 거고, 아니면 그냥 우리끼리 가면 되지.”“오케이, 그럼 일단 의견 수렴. 여행 가는 건 다들 찬성?”태하는 대답 대신 피식 웃었고, 은하도 고개를 끄덕였다.친구들과 처음 떠나는 여행이라는 사실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이현은 곧바로 움직였다. “그럼 장소부터 정해보자!”태하는 이번에도 은하의 의견부터 물었다.“은하야, 혹시 가고 싶은데 있어?”“음… 나는 밖에서 자는 거만 아니면 돼.”“오케이. 캠핑 탈락. 정태하! 우리 그냥 너네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리조트 가자”태하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싫어. 뭔가 놀러 가서도 감시 당하는 것 같잖아.”“오케이 정태하네 리조트도 빠르게 탈락.”이현은 팔짱을 끼고 눈을 굴리며, 남은 선택지를 고민했다.“아… 우리 아빠 호텔도 정태하 말 듣고 탈락.”“그렇지? 감시는 좀 쎄하다니까.”“그럼, 바다 어때? 바다.”“오, 겨울 바다 감성 있지. 은하야 어때?”“음 바다… 좋은 것 같아.”은하의 대답을
Read more
PREV
1
...
67891011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