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Chapter 71 - Chapter 80

108 Chapters

제71화

밤 늦은 시각, 넓은 주방 한 켠.이현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여보. 이현이가 독립을 하고 싶다는데요?”“갑자기 무슨 소리야?”“전에 와서 독립 이야기를 하길래, 기말고사에서 100등 이상 올리면 생각해본다고 했거든요. 근데 정말, 등수를 올렸더군요.”단단하게 굳어있던 아버지의 표정에 흥미가 서렸다.“그래? 이현이가?”그는 알고 있었다. 아들이 그런 목표를 스스로 세우고 노력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항상 적당히 살고, 흥미로운 것만 쫓고, 책임지는 걸 싫어했던 아이.그런데, 이번엔 무려 100등 이상의 성적을 올려왔다고? 그 조차도 쉽게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이제 좀 정신을 차리는 건지 뭔지. 잘 모르겠네요.”“뱉은 말은 지켜야지. 박 비서 시켜서, 학교 근처에 괜찮은 집으로 알아보라고 해.”“…여보.”“하고 싶은대로 뭐든 하게 내버려둬. 딱 고등학생 때까지. ”***다음날, 학교로 향하는 길. 박 비서의 눈동자가 룸미러로 향했다.“도련님. 회장님께서 독립하실 집을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와~ 대박! 진짜요? 진짜 진짜요?”뒷좌석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이현의 모습에 박 비서 역시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예. 그리고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은하양 옆집으로 알아봤고요.”“오! 이사 갈 생각이 있으시던가요?”“현재 시세보다 높게 쳐주면, 의향은 있다고 하셨습니다.”“그 정도는, 박 비서님 선에서 충분히 가능하시죠?”“네.”“그럼 부탁 드려요.”이현은 자신도 모르게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들었다. 은하와 매일 같은 거리를 걸으며 나누는 대화들, 창문을 열면 같은 방향으로 보이는 하늘을 공유하는 순간. 아, 옆집에 살면 주말에도 만날 수 있겠지? 꼭 데이트랑 비슷하려나?보다 가까운 곳에서 더 자주 보는 것. 이건, 단순한 독립이 아니었다. ***학교에 도착한 이현은 유난히 들뜬 모습으로 복도를 뛰어 다녔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짜릿함을 만끽하듯이.그러다 태하를 발견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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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이현이 무거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미소를 머금었다.“네. 정 회장님. 제가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태하랑 같이 살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태하의 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어머니는 차를 내리려던 손을 멈추고,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독립이라니? 허락은 받은 거냐?”“네. 저희 부모님께선 이미 허락하셨습니다.”“흠…. 백회장이?”“이번에 태하 덕분에, 제 등수가 100등이나 넘게 올랐거든요.”“…그래? 태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인가?”태하는 바짝 긴장했지만, 이현은 머릿속에 준비한 내용들을 다시 한 번 차분하게 정리했다.“아닙니다. 일단 의견부터 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풉, 그래. 어디 한 번 해 보거라.”하아, 떨지 말자. 시작하자. “저희는 학업에 집중할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제 고3이니까요. 동시에 함께 지내며 독립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건 물론, 등하교에 소모되는 시간이 자연스레 줄어들기 때문에, 시간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말은 거창하네.”“감사합니다.”“칭찬이 아닌데.”헉, 이게 아닌가? 아직 준비해 온 말이 다 안 끝났는데?“아, 회장님. 저 혼자보다는, 태하와 함께 있으면 더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아시다시피 태하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예의 바르고, 생각이 깊은 녀석이지 않습니까.”아버지는 기가 찬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가 먼저 반응했다.“그래도 이현아, 너희는 아직 고등학생이잖니. 집에서 공부하는 게 더 안전하고 좋은 환경 아닐까?”“맞습니다. 하지만 그게 문제입니다. 집이 너무 완벽합니다.”“응? 그게 무슨 소리야?”“너무 완벽하니까, 오히려 경험할 수 있는 게 적어집니다. 없는 게 없잖아요.”이번엔 어머니마저 어처구니를 잃어버렸다.“고등학생 때부터 스스로 일정 관리를 하고, 독립적인 생활의 경험이 있다면 대학에 진학 해서도 더 주도적인 생활이 가능하지 않을까요?”아버지의 시선이 태하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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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시험이 끝나서 그런지, 오늘따라 학교 분위기가 자유로웠다.아이들은 조금이나마 여유를 찾은 듯 보였고 이현과 태하, 은하와 민희 역시 매일을 붙어 다니며 이미 한 세트가 된 모습이었다. 종례 시간, 교탁에 선 담임 선생님이 기분 좋은 소식을 전했다.“시험도 끝났으니, 다 같이 놀러 가야지?”여기 저기서 환호가 터져나왔다.“오 진짜요?”“선생님! 어디 가요 우리?”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주, 드론 수련회 일정이 잡혔다! 희망자는 신청서 작성해서 제출하고, 나머지는 자율학습으로 대체할 테니 부모님과 상의해서 오도록.”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저 신청합니다!”학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야, 아직 신청서도 안 받았어.”“백이현 답다.”이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은하를 바라보았다.“강은하도 신청합니다!”모두가 일제히 은하를 바라보았다.민망해진 은하는 눈을 질끈 감고 중얼거렸다.“또 왜 저래….”담임 선생님은 그런 이현이 귀엽다는 싱긋 웃더니, 손에 들린 신청서를 나눠주었다.“이현아. 일단 앉고! 다들, 내일까지 보호자 사인 받아오도록!”***종례가 끝나고, 다른 학생들은 하나둘 교실을 빠져나갔지만, 네 사람은 여전히 교실에 남아 있었다.이유는 간단했다. 백이현의 졸라대기가 시작됐기 때문.“다 같이 가자고! 드론 수련회 얼마나 재미있겠냐?”민희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태하는 조심스레 은하의 의견을 물었다.“은하야, 네 생각은 어때?”“나는 드론 같은 거엔 별로 관심 없는데….”“그게 무슨 상관이야! 놀러 간다는 게 중요한거지! 우리 넷이 친구 되고 처음으로 가는 수련회인데, 완전 낭만 아니냐?”태하와 민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그게 무슨 낭만이야.”“쟤는 뭐만 하면 낭만이래.”이현은 진지했다. “시험도 끝났는데 색다른 경험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가자! 가자고!”민희가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맞아. 뭔가 재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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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정신없던 한 주가 끝나고, 주말이 찾아왔다.평소와 다를 것 없는 토요일 아침. 우주는 방 안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은하의 뒷모습을 확인하고는, 이내 완벽한 주부가 된 듯 장을 보러 나섰다. 집을 나서던 순간, 바쁘게 이사중인 옆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사? 가는 건가, 오는 건가?’익숙했던 풍경이 어수선하게 바뀌어 있었다.입구에는 박스가 잔뜩 쌓여 있었고,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짐을 나르는 풍경으로. 그때, 커다란 트럭 옆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야, 정태하! 똑바로 좀 해. 이거 깨지면 큰일 난단 말이야!”“너나 잘해. 넌 입으로 일하냐?”?잠깐만,‘이 목소리는… 설마.’설마 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던 우주는, 이내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뒤 멈칫했다.“뭐야 니들?”이현은 놀라기는 커녕, 특유의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형님~!”“너희들이 왜 여기 있어?”“아, 저희 독립 시작했습니다!”우주는 자신이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 되지 않았지만, 태하 역시 마찬가지로 너스레를 떨었다.“이제 옆집 이웃이에요, 형님.”“잘 부탁 드립니다!”이현이랑 태하가 집을 나와 독립을 한다고? 그것도, 하필이면 바로 옆집으로?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할 수 있지?“아니, 잠깐만. 부모님은? 허락 하신 거야?”이현이 태연하게 웃으며 손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그럼요. 저희, 부모님 동의 없이 막 집 나오고 그런 애들 아닙니다.”“네. 저희 부모님도 허락 하셨어요.”“뭔가 수상한데. 흠, 일단 마트 다녀올 테니까 갔다 와서 얘기하자.”“예 형님! 저희는 그럼 짐 정리하고 있겠습니다!”***그렇게 찜찜한 기분으로 마트를 다녀온 우주. 아직도 옆집은 이사가 한참인듯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집 안으로 들어서며 목소리를 높였다.“백이현! 정태하!”장갑을 낀 이현과 태하가 부리나케 현관으로 달려 나왔다. 이현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우주를 바라보았고, 태하는 조용히 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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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떨리는 마음으로 은하의 집 초인종을 누른 두 사람.이현은 제 자리에 서 있지 못한 채 서성거렸고, 태하는 팔짱을 끼고 손톱을 물어 뜯었다.“야, 솔직히 도망가고 싶지?”“어. 존나.”“인정. 나도.”그리고, 드디어 대문이 열렸다. 다행히 은하가 아닌 우주였다. “준비는 됐겠지?”이현과 태하는 동시에 침을 꿀꺽 삼켰다.우주의 눈빛은 단단히 각오하고 들어오라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형님. 저희를 부디 지켜주십시오.”“잔말 말고 들어와.”쿵쾅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집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 다행인 건지 아닌 건지, 은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은하는 방에 있어. 소파에 앉아있어. 잠깐.”“…네.”우주가 은하의 방 문을 두드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은하야, 잠깐 나와볼래? 저녁도 먹어야 하고.”이현과 태하는 소파에서 눈치만 잔뜩 보며, 곧 다가올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우리, 맞을 준비 해야 되는 거 아니냐.”“일단 살아남는 걸 목표로 하자.”잠시 후, 방 문이 스르륵 열렸다.무심한 얼굴로 나타난 은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이현과 태하를 본 순간, 놀란 듯 제 자리에 멈춰섰다.“너희들이 왜 또 여기 있어?”분명, 오늘도 평소처럼 조용하고 평온한 주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백이현과 정태하가 우리집에 있는 거지? 도대체 또 무슨 상황이지? 이현이 먼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저희는 옆집으로 이사 온 백이현, 정태하라고 합니다.”태하 역시 이번만큼은 이현의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아… 미처 시루떡은 준비를 못했네요. 하하하.”지켜보던 우주는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내뱉었고, 은하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뭐? 옆집?”“강은하 그게 있잖아… 우리 그거 했어 그거. 아, 뭐였드라 정태하?”“…독립.”두 귀로 듣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옆집, 독립. 모든 단어가 이질적이었다.“그러니까, 지금… 우리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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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평소와 다르게 단호한 힘이 실려 있는 말투에 세 사람의 시선이 우주에게 향했다.“너희들이 그걸 보호 본능이라 부르든, 친구로서 당연한 감정이라 부르든, 걱정이라는 본질은 같아. 그 감정이 은하한테 부담스러운 것 역시 자연스러운 반응이고.”은하는 우주의 말을 듣고, 말없이 손끝만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은하야. 이제는 인정해야 해. 물론 특별한 보호를 받는 게 부담스러워도, 주위 사람들은 너를 걱정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잖아.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거에 고맙게 생각할 줄도 알아야지.”은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동시에 거실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 오랜 침묵 끝, 은하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나도 알아…. 바보가 아닌 이상 왜 모르겠어. 다들 나 걱정하고 신경 쓰고 전전긍긍 하는 거, 다 안다고.”이현의 목소리가 유난히 낮게 떨어졌다.“지나친 관심이랑 보호가 불편하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안 멈출 거야. 그게 친구잖아.”태하 역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맞아. 우리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할 뿐이야. 친구니까.”은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들의 말은 억지로 설득하려는 것도, 무리하게 끌어들이려는 것도 아니었다.그냥, 같이 있고 싶다는 아주 단순한 마음에 더해진 걱정이었다.“…알겠어.”이제야 이현과 태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우주 역시 흐뭇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 다 기억해.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면, 무조건 끌어당기기 보다 함께 걸어주는 게 먼저라는 걸.”“형님…! 완전 멋있어요. 진짜 어른같아요!”“백이현… 눈치 챙겨.”우주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갈 시간이었다.“그리고, 너희 둘,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 건데? 집안일은 해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지금부터 천천히…”“해보려 합니다….”주눅이 들긴 했지만, 문장이 완벽하게 이어지는 두 사람의 말. 우주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버렸다. “에휴, 당분간 저녁은 우리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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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눈치라곤 보지 않고 점심을 먹어대는 두 사람. 은하는 기가 막혔지만 꾸역꾸역 잘도 참아냈다.“형님! 저희 밥 먹고, 은하랑 시내 좀 다녀와도 돼요?”이현의 말이 튀어나온 순간 표정이 굳어버렸다.“시내? 시내는 왜?”“수련회 준비 하려고요.”은하가 황당한 눈으로 이현을 노려보았다. “누가 나간데?”하지만 우주의 생각은 이미 그들과 같았다.“그러지 말고 다녀와. 예쁜 옷도 사고, 캐리어도 없잖아.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을 거야.”“오빠가 같이 가주면 되잖아.”“오빠 오후에 설희 만나기로 했는데?”“치….”솔직히 사야할 것들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도 당연히 오빠가 준비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기분이 상해버린 은하는 알겠다는 짧은 대답을 내뱉고는, 툴툴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이현과 태하는 은하의 준비를 기다리며 소파에 앉아 투닥거렸다."정태하. 나 수련회 개떨림.""인정. 드론 수련회 대박임.""드론 만져봤냐?""아니. 뉴스에서나 봤자."우주는 그 철 없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쟤네 진짜, 재벌가 애들 맞아…?’ 잠시 후, 은하가 준비를 끝내고 방에서 나오자 이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즈아!”우주가 은하에게 카드를 전해주었다.“사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사. 캐리어는 꼭 사야하고. 알지?”“응.”“쇼핑들 잘 하고, 오늘 저녁은 밖에서 사먹고들 들어와라.”“예 형님!”“네!”"휴…."***수련회 준비를 핑계로 시내로 향한 세 사람.가만히 걷던 태하가 물었다.“근데, 은하 캐리어부터 사는 게 낫지 않아? 그래야 산 것들 그 안에 넣고 다니지.” “오! 정태하! 역시 전교 1등!”캐리어 상점으로 이동해서는, 은하는 역시나 은하다웠다.별 생각 없다는 듯 무난한 검정색 캐리어를 골라 결제를 하려고 했지만, 그 모습을 본 이현이 극구 말렸다.“너무 밋밋하잖아. 조금 더 화려한 거 없냐?”태하가 대신 답했다.“바보냐? 실용성이 더 중요하지! 은하야, 캐리어 열어서 안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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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이현은 이미 결정했다는 듯 점원을 불렀고, 태하는 말릴 기력조차 없다는 듯 한쪽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거 남성용 XL 2개랑….”그의 시선이 잠시 은하를 향했다. “나머지 2개는 여성용인데, 좀 박시하게 입을만 한 사이즈였으면 좋겠는데… 저기! 쟤가 입을거에요.”점원 역시 은하를 바라보더니 이내 사이즈를 추천해 주었다.“여성용은 L 사이즈가 가장 잘나가요. 레깅스 위에 길게들 내려 입는 게 편하니까요.”“그래요? 너무 크지 않을까요?”“집업이라 괜찮아요.”“네. 그럼 라지로 2개 같이 주세요.”이현이 계산대로 향하자 태하가 은하를 향해 중얼거렸다.“쟤 진짜 사려나봐… 넷이 같은 옷이라니… 나는 자신 없다…”“누가 말려. 백이현을.”결국 이현의 뜻대로 단체 후드 집업 구매까지 완료.이제 모든 쇼핑이 끝난 줄 알았지만, 이현은 기왕 나온 김에 조금 더 돌자며 발걸음을 틀었다. 거리를 걷던 중, 세 사람을 향해 한 이벤트 회사 직원이 다가왔다.“안녕하세요. 즉석 랜덤 뽑기 이벤트 진행중인데요!”은하는 귀찮다는 듯 무시하려고 했지만, 이현이 눈을 반짝이며 멈춰 섰다.“랜덤 뽑기요? 당첨되면 뭐 주는데요?”“참여만 하셔도 소정의 상품이 있고, 1등은 테마파크 입장권 두 장입니다!”이현은 지체 없이 뽑기판을 돌렸다.하지만, 결과는 보란듯이 꽝이었다.“꽝이시네요. 핫팩 1개 증정해 드리겠습니다.”태하 역시 피식 웃으며 뽑기판을 돌렸다. “꽝이시네요. 핫팩 1개 증정해 드리겠습니다.”연달아 이어진 꽝의 행렬. 이현이 은하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강은하. 남은 건 너 뿐이다. 테마파크 가즈아!”“됐어.”“어차피 꽝이어도 핫팩 주는데 뭐! 그냥 해봐! 빨리! 가즈아! 응?”은하는 결국 짜증나는 성화에, 한숨을 쉬며 뽑기판을 돌렸다. “어머, 축하 드립니다. 2등 당첨이시네요!”2등 상품은 캐릭터 머리띠였다. 아주아주 깜찍하고 앙증맞은 고양이 귀 머리띠 말이다.“사진 찍어서 올려주시면, 인스타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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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드론 수련회 당일, 아침부터 학교는 시끌벅적했다.운동장에 늘어선 커다란 버스들, 기대를 가득 안고 하나 둘 도착하는 학생들. 그리고 이현과 태하, 은하와 민희 역시 평소와는 다르게 들떠있었다.“드디어 출발이군.”“버스에서 한숨 자야겠다.”옆을 힐끔 쳐다본 이현이 은하를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코트 진짜 잘 어울린다. 솔직히 내 센스 죽이지?”민희 역시 은하의 코트를 보며 박수를 쳐댔다.“진짜, 은하야. 너무 예쁘다!”“…고마워.”“아, 여기에 하츄핑 캐리어까지 끌었으면 진짜 딱인데.”은하는 더 이상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버스로 걸어갔다. 그렇게 버스에 올라탄 네 사람.학생들은 이미 자리를 정해 자리에 앉았고, 이현과 태하, 은하와 민희도 짝을 맞춰 자리를 잡았다.버스는 한참을 달렸다.처음에는 학생들의 떠들썩한 대화와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내 하품 소리와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로 바뀌었다.마지막으로 산 비탈길을 한참을 올라갈때 즈음, 창밖의 풍경은 점점 탁 트인 공간으로 바뀌었다.“도착했다! 다들 짐 챙기고 천천히 내리도록!”담임 선생님의 안내 방송과 함께 버스가 멈췄다.학생들이 하나둘 설레이는 표정을 가득 담아 버스에서 내렸다.넓고 푸른 하늘 아래, 생각보다 시설이 꽤 잘 갖춰진 수련장이 펼쳐져 있었다. 드론 조종 연습을 할 수 있는 넓은 공터, 수소로 사용될 깔끔한 건물,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될 실내 강당이 갖춰진 수련장. 캐리어를 내리며 환하게 웃는 이현은 누구보다 신나 보였다.“생각보다 더 괜찮은데? 시설 굿, 공기 굿.”태하 역시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산속이라 그런지 공기도 맑네.”“자, 이제 각자 캐리어 끌고 배정 받은 숙소로 이동!”담임 선생님의 목소리에 학생들이 숙소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은하의 룸메이트는 민희였고, 짐을 풀던 은하가 조심스레 중얼거렸다.“민희야. 미안한데, 내가 불을 끄고는 못 자서….”“괜찮아. 걱정하지 마!”“미안. 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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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우리 팀! 내 감각을 온전히 믿어라! 가즈아!”이현의 화이팅 넘치는 각오와 함께 시작 신호가 울렸다.민희와 태하가 급하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야! 앞으로 세 발짝!”“그다음 오른쪽으로 살짝!”이현은 벌써부터 당황했다. 안 보인다는 게 이런 건가? 왜 이렇게 움직이기 두렵고, 머리가 안 돌아가지?“살짝?”마음을 다잡고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옆으로 성큼 성큼 향하던 이현의 발이 장애물에 걸리고 말았다.학생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졌다.“뭐냐? 백이현 꽃게인 줄.”“저 팀은 무슨 시작하자마자 걸리냐?”태하와 민희가 한 숨을 내뱉었고, 은하는 그 모습을 어이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왼 쪽으로 두 걸음.”“이제 천천히 직진.”이제는 왼쪽 오른쪽도 구분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상황.“야! 안보이니까 나 좀 무서운 것 같아!”“그러니까 우리 말을 들으라고!”“하, 진짜 겁나 답답하네 백이현.”결국 또 다시 장애물에 걸려 휘청대는 이현. 지켜보던 학생들의 웃음이 점점 더 커졌다.“백이현네 팀 어떡하냐.”“진짜 개판이다. 개판.”은하는 손 끝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결국 마지막 구간에 가장 늦게 도착한 이현.태하와 민희는 집중을 하고, 보다 더 신중한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 구간이다. 참고로 우리가 꼴찌다.”“천천~히 왼쪽으로 다섯 걸음 이동해.”“그래 천천~히. 보폭 좀 줄이고.”그때, 이현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잠깐만, 어차피 장애물을 비켜 가는 거면, 그냥 넘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이현의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는 모습이 그들 눈에 포착됐다.“얘들아, 내가 간다! 이번엔 진짜로 가즈아!”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힌 세 사람.“백이현! 어딜 가! 잠깐만!”“제발! 아무 것도 하지마!”태하와 민희의 절규가 터지기도 전, 이현은 곧장 점프를 시도했다.정말로 장애물을 피하는 게 아니라 아예 넘어 버리려고 한 것.애석하게도 장애물은 생각보다 높았고, 그대로 장애물에 부딪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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