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제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엔트로피를 조율하는 살아있는 연산 장치였다.
“아저씨…… 손이, 너무 차가워요.”
서준이 다시 한번 그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 작은 온기가 한 대위의 목덜미를 타고 뇌로 전달되는 순간, 보랏빛으로 점멸하던 그의 시야에 0.1초 동안 노이즈가 발생했다. 시스템의 완벽한 논리 체계에 발생한 유일한 결함, **'기억'**이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형벌과도 같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지요.
지금은 힘드시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잊히게 됩니다.
하루에 한 번 떠오르던 기억이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나흘에 한 번. 그러다 닷새에 한 번,
결국 꺼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 될 것입니다.”
“그럴 리 없다. 난 널 잊지 않아.”
연화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모든 대답을 삼킨 듯한 미소였다.
연화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2년 전, 김서준이 실명한 첫 달에 나도 마침 희소병 진단을 받았었다.
전 세계에 발병률이 5퍼센트도 안 되는데 일단 이 병에 걸리기만 하면 8년 안에 모든 기억을 점차 잃게 되고 식물인간처럼 혼미상태에 빠지게 된다.
나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기댈 곳 하나 없으니 아무도 내 존재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너무 좋아하지는 마. 여보한테 줄 서프라이즈가 또 하나 있거든. 몇 달 동안 여보 몰래 한약을 먹으면서 얻은 선물이야. 확인해 보고 알려줄게.”
임수혁은 내가 남긴 카드와 목도리를 안고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시어머니가 어떻게 끌어봐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쇼를 하는 걸까?’
‘바람피울 땐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잖아.’
냥냥군친구에서연인내 남친의 쌍둥이 동생내 결혼식에 와서 울면 어쩌라고나를 사랑하는 내 남편의 친구
의사는 내가 기억을 잃게 된 이유가 사고로 뇌에 출혈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큰 문제는 아니며, 길어야 한 달 안에는 기억이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도현과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다니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도현이 내 남자친구라는 사실에 대해 뭔가 의문이 떠올랐다.
—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 바라고 있었겠지. 혹은 두려워했을 거야. 무슨 상관이야. 중요한 건, 그들이 기억한다는 거야. 그것이 여기서 우리의 가장 단단한 방패야. 현금이 아니라, 기억. 이 도시에 대한 나의 기억.
그녀는 마들렌 하나를 집어 입에 가져간다, 눈은 잠시 멀어져 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길지만 민태건은 다신 예전처럼 매일 원단비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민태건에게 남겨진 원단비를 추억할 만한 것은 이 한 묻기의 고물뿐이었다.
박진호는 모든 것을 다 옮기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장님, 아가씨가 돌아오시는 겁니까? 그럼 이 물건들은 모두 방에 넣어두라고 분부하겠습니다.”
“너 미쳤어? 선우 씨는 진작 너한테 마음 떠난 남자야! 왜 그것도 모르는 건데?”
“나랑 선우 씨는 서로의 첫사랑이야. 우린 줄곧 서로를 가슴에 간직했고 옛 감정이 되살아나서 이렇게 만나게 된 거야!”
이때 임선우가 황급히 부인했다.
“아니야, 보영아! 내 말 좀 들어봐. 그날은 내가 술에 취해서 아무것도 기억 안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