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버리지 않을래요
우리가 웃었던 시간이 거짓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은 삭제하는 게 아니라 보관하는 편이 더 오래 안전해요.
다만 서랍을 바꾸면 돼요.”
“어떤 서랍인데요?”
“추억 서랍. 미련 서랍 말고.”
우리는 강변을 따라 느리게 걸었다.
“이건 단순한 공포가 아니에요.
마치 누군가의 기억이 감정으로 되살아난 것 같아요.”
“기억?”
“HEART LINK는 감정 신호를 통해 과거의 정서를 추적하거든요.
이 환자는 사고 순간의 공포가 아직 심장에 남아 있어요.
그걸 시스템이 증폭시킨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연서는 1등이에요. 질투하는 거 너무 티 나는 거 아닌가요?”
지나윤은 기억을 더듬어봤다.
이게 진짜 채연서의 작품이라면, 자신이 최고 점수를 준 작품은 따로 있었기에 기억이 잘못됐을 리 없었다.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기에, 방금 채연서가 보인 그 불안한 모습도 설명이 됐다.
엘라라
의식이 느리고 무거운 파도처럼 밀려온다. 먼저, 냄새. 더 이상 카엘의 방에 감돌던 백단향과 가죽 냄새가 아니라, 내 침대 시트의 깨끗하고 중성적인 냄새다. 그다음, 감각. 피부 전체가 마치 거대한 멍이 든 듯한 은근하고 광범위한 통증.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 선명하고, 따갑고, 내 왼쪽 엉덩이 위에서 불타는 듯한.
오태훈은 나의 손맛에 멍한 표정을 짓더니 몇 초 후에야 반응을 보이며 내게 소리를 쳤다.
“임서영, 감히 날 때렸어? 이 미친 x이!”
나는 그를 무시한 채 바닥에 쏟아진 유골을 보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떻게든 주워 담아보려고 했다.
“어머님, 죄송해요. 다 제가 못나서 지켜드리지 못한 거예요.”
“졸업하고 처음 하는 동창회인데 안 갈 수 있겠냐. 그리고 너도 가는데 내가 안 가면 말이 되?”
여가현의 말에 차우미가 완전히 잊어버리고 뇌 구석에 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차우미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
“완전히 잊고 있었어.”
“요 며칠 일이 너무 많아서 바빴어.”
나는 눈을 뒤집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말했다.
“나보고 인정하라고 하겠으면 증거를 대! 왜 증거도 없으면서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거야?”
그러자 윤하가 몰래 예지의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하, 서예지 지금 라이브 방송 중이야?’
예지는 내가 말하지 않자, 찔리는 게 있는 줄 알고 또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