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바로 다음 날. 일요일 이른 아침.
소원리의 주말은 대체로 주중의 낮시간보다 더 소란스러운 편이었다. 그 이유는 소원리 교회에서는 10시 예배가 드려지기 때문이었다.
다른 날에는 보통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간 어르신들이 활동한 후, 아이들이 작은 소란을 피우며 등교하고 나면 해가 중천에 뜰 낮에서 이른 오후 시간까지 소원리 마을은 초등학교 부근을 제외하고는 조용한 편이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교회가 없던 마을이었는데, 먼 읍내 교회까지 다니며 신앙생활을 이어온 갑순과 인자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은 덕분일까.
양기탁 목사가 젊은 나이에 외진 시골 마을 목회를 꿈꾸게 되면서 주변에서 지원을 받아서 30명 남짓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교회 건물을 짓게 되었다.
그 옆에는 30평 남짓 되는 단층짜리 벽돌집이 있었다.
양 목사의 집은 이 마을에서 가장 신축인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외관은 가장 밋밋했다.
그 이유는 후원받은 돈을 몽땅 교회를 짓는 데에다 쓴 탓에 돈을 아끼느라, 막상 사택으로 쓸 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다 직접 양 목사의 손으로 지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해봤자 소원리에 사는 사람들이나, 옆 동네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가끔 넘어와 예배를 드릴 뿐이었다.
단출하게 지어진 교회 건물 안에는 예배드리는 예배실과 화장실, 그리고 그 밑에 지하층에 모두가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작은 공간에 딸린 작은 부엌만 있을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황 선생님.” “아휴, 목사님. 교회에서는 계급장 떼고 만나야 하지 않을까요?”교회를 들어서자마자 들려온 양 목사의 밝은 인사에 에스더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양 목사가 환하게 웃었다.
“어떻게 그래요. 일요일에만 제가 다른 호칭으로 부를 수는 없죠. 일단 제가 머리가 안 좋아서 헷갈립니다.”에스더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사람 다섯이 겨우 앉을만한 장의자 여럿이 중간에 뻗은 복도를 기준으로 양옆에 놓인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다.
소원리 교회 안에는 일종의 룰이 하나 있었다. 교회지만, 모든 직분을 떼고 호칭을 부르던 데로 부르는 것.
그 누구도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모두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고 있었다.
덕분에 집사나 권사의 직분은 갖고 있었지만, 모두가 마을에서 부르던 호칭으로 늘 서로를 부르는 소원리 교회 사람들이었다.
”안녕하세요!” “황 선생님 왔네-.”그곳에는 사람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맨 앞자리를 차지한 갑순과 복란으로 시작해, 에스더와 함께 소원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조 선생 부부와 그 옆을 지키는 외동딸 유진이 있었다.
그 뒤에는 카페를 운영하는 영애 부부와 그 옆에 앉은 영애의 어머니인 백발의 인자가 보였다.
그 뒤에는 정희네 부부, 그리고 늘 맨 뒷자리를 큰 덩치로 홀로 차지하는 정렬도 보였다.
유진과 정렬은 에스더를 제외하면 교회에 유일한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강대상 한구석에 설치된 피아노 앞에는 양 목사의 사모인 지혜가 앉아 있었다.
단정한 단발을 한 그녀는 늘 선한 인상을 풍겨내며 교회의 음식부터 시작해 전반적인 걸 모두 책임지고 있었다.
어른들이 예배드리는 동안 아이들은 식당 공간이나 날 좋은 날에는 교회 앞마당에서 뛰어놀고는 했다.
“꺄르륵-.”오늘은 날이 매우 화창한 6월 초의 어느 날.
예배를 준비하는 몇 분 동안 바깥에서부터 들려온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러 번 울려 퍼졌으나, 그 누구도 거슬려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르신들을 배려해 일요일 예배는 한 시간 남짓 정도 드릴 뿐이었다.
그렇게 짤막한 예배가 끝나고 나면, 어른들과 아이들은 모두 식당으로 내려가 함께 지혜가 미리 준비해 둔 음식을 나눠 먹었다.
대체로 간단한 고기 요리, 몇 가지 간단한 반찬으로 이뤄진 식사였다.
그리고 나서 어른들이 식당이나 앞마당 공간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에스더의 도움으로 진행되는 아이들의 예배가 드려졌다.
“이리 오세요! 제가 밥은 다 받아놨어요.”예배가 끝난 후.
비교적 움직임이 느린 편인 어르신들의 식사를 보통 에스더와 정렬이 각 식탁에다가 미리 차려놓는 편이었다.
에스더의 부름에 갑순과 복란이 환하게 웃으며 그녀가 맡은 식탁으로 다가섰다.
“황 선생, 늘 고마워.” “아휴, 한 번만 고마워해 주시면 된다니까요.” “그래도, 이 늙은이들 위해서 매번 이렇게 수고해 주니까 정말 고마워.”복란과 갑순은 에스더를 향해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까지 함께 식당에 자리를 잡으면 보통 남는 자리가 몇 없었기에, 교회 사람들은 6인용 테이블에 자연스럽게 뒤섞여 모두와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이번 주 갑순과 복란의 식탁에는 철호와 영애의 남편인 태욱이 앉게 되었다.
조 선생의 남편인 철호와 태욱은 50이 넘은 마을내 유일한 동갑내기였는데, 소원리에서 소문난 애처가들이었다.
철호는 170센티미터를 조금 넘는 키에 유독 서글서글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웃으면 하회탈처럼 생겼다고 해서, 아이들은 그를 하회탈 아저씨라고 부르고는 했다.
동해시에서 소문난 철물점을 운영하던 그는 조 선생이 소원 초등학교에 파견받고 나서는 그것을 접고 바로 소원리로 조 선생과 함께 이사를 와서 신화읍에 새 철물점을 열었다.
그의 동갑내기 친구 태욱은 또 다른 한가지로 유명했다.
5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생긴 외모 때문이었다.
웬만한 중년 연예인 뺨치게 생긴 중후한 멋을 뿜어내는 얼굴, 그리고 180센티미터가 되는 키에 보기 좋게 길쭉길쭉한 몸은 그의 멋짐에 또 다른 점이었다.
일평생 서울에서만 살다가 대학교 때문에, 서울에 있던 영애를 만나 결혼하고, 홀어머니인 인자에게 마음이 쓰여 귀향한 영애를 군말 없이 따라나서서 시골살이를 잘 해내고 있다는 사실도 사람들이 그를 동경하도록 만드는 요소 중에 또 한 가지였다.
“어어? 웬일로 소원리 애처가들이 혼자가 된 지 오래인 할머니들이랑 앉았을까?” “아휴, 이렇게 앉은 게 한두 번도 아니잖아요, 어머니.”갑순의 장난기 섞인 물음에 철호는 당황도 하지 않고 태연하게 답했다.
다른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한 에스더는 제 몫의 밥을 들고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 자리하게 되었다.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중, 갑순이 갑자기 눈을 빛내며 손뼉을 한번 쳤다.
“아휴, 맞다.” “왜요, 어머니?”갑순의 호들갑에 밥을 먹던 철호가 오버해서 놀라는 척을 하며 물었다.
“저기 김 씨네 집에 손주 들어온 거 알고 있나?” “김 씨네요? 그 초등학교 바로 옆에 버려져 있던 집 아니던가?”갑순의 설명에 태욱이 물었다. 어른들의 대화에 간간이 맞장구만 치며 조용히 밥을 먹던 에스더의 두 눈에 긴장감이 서렸다.
설마, 갑순 할머니-.
“그래, 그 집.”갑순의 말에 태욱과 철호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곧 그녀의 입에서 나오게 될 말이 어느 정도 예상간 탓이었다.
“혹시 두 사람이 한 번만 손을 좀 봐줄 수 없을까? 거기 스무 살 겨우 넘은 손주가 들어와서 사는데 집 꼬라지가 말이 아니더라고.”아아, 할머니.
에스더는 철호와 태욱의 얼굴 위로 곤란한 마음이 스쳐 지나가는 걸 보고는 속으로만 탄식했다.
“제가 모든 걸 잘 고치는 건 맞는데, 집까지 잘 고치지는 못해서요.” “게다가 장본인이 부탁한 게 아니면 더 애매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 오지랖에 얼마나 민감한데요.”철호와 태욱의 말에 갑순의 얼굴에 주름이 졌다.
“그래도 한 번만 들여다봐 줘. 물론, 그 녀석 성격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지만-.”갑순의 주름진 눈이 잠시 에스더의 머리에 머물렀다. 아무래도 그녀는 어제 인협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래, 그 집이 사람 사는 곳은 아닌 것처럼 보이긴 했지.
태욱과 철호의 입장을 고려하면 갑순의 무리한 부탁을 막는 게 맞았지만, 동시에 어제 두 눈으로 목격했던 인협의 집안 모습을 모르는 척하기에는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는 에스더였다.
결국 에스더는 그 사이에서 침묵을 택했다.
“곤란하고 두 사람 바쁜 거 아는데, 한 번만 좀 들여다 봐줘.”갑순이 이 정도로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경우는 잘 없었다.
해봤자 집에 무언가가 고장이 나거나 힘을 써야 할 때 동네에서 가장 마음씨 좋은 철호나 태욱에게 미안해하며 부탁을 하고는 했던 그녀였다.
그마저도 늘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쥐여주고는 했다.
그래서 그런지, 태욱과 철호는 쉽사리 거절의 말을 하지는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알겠어요, 어머니. 저희 실력이 부족하지만 한번 들여다볼게요.”철호의 마지못한 승낙에 갑순은 주름진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는 농사일로 인해 거칠어진 두 손으로 그의 투박한 손을 꼭 잡았다.
“고마워, 아주 고마워.”어쩌면 갑순의 말 이면에 담겨 있는, 일종의 구조 요청을 알아차린 건지도 몰랐다.
갑순은 단순히 집 보수만 염두에 두고서 두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니었다.
어둠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는 인협에게 어른으로서 손을 한 번만 내밀어 달라고, 소원리에서 가장 마음씨 좋기로 소문난 두 남자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최 씨는 구멍가게 앞, 낡을 대로 낡아 색이 다 바래버린 자판기 옆 평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위에 길게 늘어진 처마 너머로 내려오는 빗줄기를 구경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한 손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담배가 들려있었고, 그의 앞에는 조금 전 기탁이 방문하며 놓고 간 보온 가방이 있었다. 빈속에 술 마시지 말라는 다정한 잔소리를 늘 꿋꿋이 해대는 양반이었다. 교회에는 전혀 관심 없는 최 씨를 여태 포기하지 않은 끈질긴 인물이기도 했고. 원래 이렇게 반강제로 농사를 쉬어야 하는 날이면 고 이장의 무리가 방문하고는 했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아무도 소식이 없었다.오늘이 나를 빼고 노는 날이던가. 최 씨는 좋은 장소를 제공해 주고, 때때로 공짜로 마른안주나 술을 내어주기도 해서 그들이 자신을 이용 가치로만 보는 걸 알고 있었다. 때때로 그를 아래로 보고, 때때로 그를 뒤에서나 앞에서 대놓고 비웃기도 하면서 최 씨를 종종 모임에 끼워주고는 했다. 남 주려니 아깝고, 진짜 친구로 받아들이자니 그들의 눈에는 최 씨가 한참 모자라 보이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부인이 그를 두고 도망간 버린 후부터 원래도 팽배했던 그들의 업신여김이 더 심해졌다. ‘자고로 성공한 사내라면 옆에 훌륭하게 내조해 주는 부인이 꼭 있어야지.’그런 말을 끝마친 고 이장이나 심 씨의 시선 끝에 걸리는 건 최 씨였다. “후-.”최 씨가 들이마셨던 공기가 연기가 되어 흩어져 나왔다. 아내는 첫째 딸의 아이보는 걸 도와줘야한다며 서울로 떠나버렸다. 딸아이가 육아로 많이 힘들어한다면서 도와야겠다는 이유였다. 그게 벌써 5년 전이었다. 그 사이 둘째 딸도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듣자 하니 아내는 두 집을 오가며 손주들을 봐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떠난 후, 그의 아내는 단 한 번도 소원리에 오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씩 하게 되는 연락도 용건만 간단히. 최 씨가 그녀의 의중을 떠보기라도 하면, 그녀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그렇다고 아내와 마을 사람들
꺄아아-.방음이 잘 된 집 덕분에 어렴풋이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에 인협의 눈이 살며시 떠졌다. 아무래도 열려 있는 학교 창문을 통해 들려온 소리인 듯싶었다. 날이 워낙 우중충한 데다가 커튼까지 잘 처져있어서 그런지, 한낮의 관사는 꽤나 어둑어둑했다. 체감상 눈을 아주 잠시 감았다가 뜬 것만 같은데, 몸은 굉장히 개운했다. 얼마 만에 잠을 뒤척이지 않고 편안하게 잔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태와 감독과 트러블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나서는 사실 그 좋던 숙소에서조차도 잠을 뒤척이기 일쑤였으니까. “후-.”핸드폰 화면을 확인하니,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된 시간이었다. 나가는 소리도 못 듣고 푹 잤네. 인협은 괜한 머쓱함에 제 차림과 머리카락을 슬쩍 확인했다. 다행히 지나치게 추한 모습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끼야야-! 신난 아이들의 소리에 인협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무채색에서 색이 입혀진 세상은 생각보다 더 다채롭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성가시게 다가오던 아이들의 소리조차도 유심히 감상해 볼 만한 것이 되었으니까. “집 상태를 한번 확인은 해봐야 하나.”그는 빗소리를 들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짐도 어느 정도 챙겨는 봐야 할 터였다. 곧 에스더의 옆집으로 이사 오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아직 아이들이 수업 중인 거면, 여기서 나가서 샛길로 내려가면 학교에서 눈에 띄지는 않을 텐데. 인협은 그곳까지 생각이 닿자마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식탁 위에 차려진 단출한 아침 식사가 보였다. [간단하게라도 챙겨 먹어. 점심으로 먹을만한 반찬들은 냉장고 안에 있으니, 밥이랑 같이 챙겨 먹어. 굶지 말고!]꾹꾹 눌러쓴 동글동글한 글씨체에 인협이 피식 웃었다. 에스더의 들뜬 음성이 귓가에 직접 울리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그를 이렇게 살뜰하게 챙겨준 건 할머니 이후로 처음이었다. 서울에 가서는 가족들과 제대로 시간을 보낼 새도 없이 바로 팀 합숙 훈련에 들어갔으니까. 인협은 포스트잇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는 냉장고에서 반
천둥소리와 인협의 흐느낌이 모두 잦아든 후. 집 안에는 세찬 빗소리만 들려왔다. “일단 오늘은 우리 집으로 가요.”에스더의 권유에 인협은 순순히 그녀를 뒤따랐다. 에스더의 손을 붙들고 그녀를 뒤따라서 인협은 질퍽한 오르막을 올라갔다. 그가 미끄러질 때마다 에스더는 그의 손을 강하게 붙들어주었다.신기한 여자였다. 덩치가 훨씬 큰 자신을 이렇게 안정적으로 붙들어주는 걸 보면. 관사의 문이 열렸고, 늘 은은하게만 맡아지던 에스더에게 배어있던 향이 인협의 얼굴에 온기가 되어 훅 다가왔다. “들어와요.”혼자서 지내기에는 널찍한 크기의 관사는 깔끔해 보였다. 젖은 상태로 머뭇거리는 인협을 알아차린 에스더는 재빨리 욕실로 향해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많이 춥죠? 일단 욕실에서 따뜻한 물로 몸 좀 녹이면서 씻을래요?” “갈아입을 옷이-.” “찾아보면 입을만한 옷이 좀 있을 거예요.” “네….”인협은 순순히 대답하고는 곧장 에스더의 인도를 따라서 욕실로 향했다.오랜시간동안 젖어있던 몸의 체온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기에, 그도 물의 온도에 몸을 내맡기는 게 낫겠다 싶었다. “아예 욕조에 몸 좀 담그고 나와요.” “네.”욕실 문 바깥에서 들려온 에스더의 권유에 인협은 순순히 답했다. 누군가의 앞에서 처음으로 제 바닥을 내보였다는 사실은, 은근한 위안이 되어주었다.에스더 앞에서만큼은 더 이상 무언가 있는 사람인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아주 편리했다. 이미 그녀는 그의 있는 그대로의 바닥을 보았으니까.온수를 튼 인협은 욕조에 앉았다. 작지 않은 체구의 그에게도 크게 불편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욕조의 크기는 적당했다. 물의 온기에 몸을 내맡기자, 오랜 시간 동안 식어 내려있던 체온이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좋다-.”그는 눈을 감은 채로 머리를 뒤에 있는 벽에 기대었다. 제대로 보수되지 않은 할머니의 낡은 집보다 훨씬 더 쾌적한 환경이었다. 게다가 관사는 최근에 인테리어를 모두 새로 한 건지, 매우 신식인 데다가 깔끔했다.그 환
똑똑. “미치겠네.”거친 몸짓으로 이불 위에서 돌아누우며 인협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미 물이 차오른 통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는 요 며칠 동안 인협의 불면의 이유였다. “아우씨-.”반복되는 소음에 인협은 거친 몸짓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어렴풋한 달빛을 의지해 그는 벽 한구석을 노려보았다.며칠 동안 이어진 불면에 화가 났으나, 애꿎은 집에다가 화풀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어두운 밤이면, 제 처지가 유독 깊게 느껴지고는 했다. 누가 더럽게 깊게 파놓은 구덩이에 꼭 끼어버린 기분. 다시 오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어딘가에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X 같네.”이런 감정이 밀려올 때면 인협의 인생 전체가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기분이 들면서, 더 이상 살아도 이런 어두운 터널 속에만 머물러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때는 대한민국에 리그 오브 카오스의 2인자였으나, 그 옷을 빼앗겨버린 지금은 뭣도 아닌 인간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늘 훈련에 참석하느라 바빠서 형편없는 성적으로 겨우 졸업한 고등학교 이름이 그의 마지막 방패였다. 세상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판단할 만큼 하찮고 보잘것없는 이름이었다.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방구석에 틀어박혀 날마다 밤낮없이 게임만 해댄 경험은 지금의 인협에게는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다.그 시간 동안 차라리 대학이라도 갈 걸 그랬나. 인협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던,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던 자신의 삶의 궤도가 늘 후회스러웠다. 바보같이 내일이 없을 것처럼 외길만 파서는. 그렇게 성실하게 외길만 파면 누군가는 알아줄 거라고, 결과로 증명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과거의 자신을 인협은 힘껏 비웃었다. 그 순수했던 시절의 자신이 한심하기가 짝이 없었다. “미련한 새X.”세상이 손가락질하기 전에 자신을 가장 강하게 손가락질해야 일종의 면죄부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인협은 늘 자괴감이 들 때마다 나서서 자신을 비난했다. 나는 이미
“끄으응-.”조 선생을 보낸 후, 관사로 돌아온 에스더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앓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관사 부엌과 거실 공간을 서성거리고 있었다.아, 괜히 큰소리친 건가. 조 선생이 맡은 과목은 일단 고 선생이 맡은 수학, 과학, 그리고 에스더가 맡은 영어를 제외한 과목 모두였다. 국어, 사회, 도덕, 음악, 미술, 체육. 게다가 학교의 전반적인 업무까지. 교장인 본용이 학교에 거의 나오지도 않는 걸 보면 사실상 학교의 모든 업무를 조 선생이 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했다. 조 선생은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학교 관련 업무는 딸인 유진에게 부탁해 보겠다고 했다. “내가 일곱 과목…. 일곱 과목-.”에스더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을 떠난지라 한국 과정은 잘 기억도 나지 않았고, 애초에 그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은 교육 과정이 많이 바뀌었을 터였다. 게다가 소원리 초등학교 특성상, 아이들에 맞춰서 그녀가 준비해야 할 과정은 다양했다. 전교생은 열 명 남짓했지만, 초등학교 1학년부터 5학년까지 골고루 있었다. “아으으-. 그래, 일단 과목 중 두 개 정도는 고 선생님이 맡아주겠지. 사람이라면 말이야.”정말? 힘없고 비열한 드라큘라 백작처럼 생긴 고 선생의 심드렁한 얼굴을 떠올린 에스더는 또 한 번 앓는 소리를 냈다. 안 한다고 해도 그 인간을 어떻게든 설득해 봐야지.그는 당장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보다 자기가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걸 충분히 못 견뎌 할 위인이었다. “후우, 그럼 다섯 과목.”예체능만 누구한테 부탁할 수 없나? 에스더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음악과는 정말 연이 없다는 것. 심지어 노래도 못 부르는 편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즐기고 좋아하던 조 선생의 음악 교실에는 전자피아노와 노래가 필수였다. 때때로 그녀는 창고에서 사물놀이를 꺼내 와 아이들을 가르치고는 했다. “아-.”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다고 고 선생도 이렇다고 할 음악적인 재능도 없었다. 당장 며칠 동안은 어떻게든 버텨볼 만했지
같은 날 점심시간 무렵. 카페가 유독 바쁜 날이라 카페 사장인 아내 영애를 도우러 출근한 태욱이었다.그는 가게 일을 돕다가 잠시 한산해진 틈을 타 커피 한잔을 하며 쉬는 중이었다. “철호!”태욱은 그때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뜻밖의 손님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비싼 커피보다는 인스턴트커피가 제 입맛에는 제격이라며 읍내에서 일하면서도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에 절대 들리지 않던 철호였다. 대개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철호의 얼굴이었지만, 아는 누군가를 만나기만 하면 서글서글해지는 얼굴이 웬일로 가장 친한 태욱을 발견해 내고 나서도 여전히 굳어있었다. 어딘가에 영혼을 빼앗겨버린 듯한 철호의 모습에 태욱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여태 봐왔던 철호의 모습 중 새로운 모습이었다. ”태욱아.” “웬일이야, 여기에는? 철물점은?”카페 한구석에 빈자리에 앉아 있던 태욱 맞은편 의자에 철호는 쓰러지듯 앉았다. 다리가 풀려버린 사람처럼. “태욱아.” “커피 한잔 내려줄까? 달달하고 따끈한 거로?”평소에 펄펄 끓는 물로 만든 인스턴트커피를 단숨에 마셔버리고는 하는 철호였다. 뜨끈한 기운이 몸을 데워줘서 좋다나. 그런 철호의 취향을 아는 태욱은 인스턴트커피와 얼추 비슷한 달달한 라떼를 만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시원한 걸로 내려주라. 내 속에 천불 좀 끄게.” “뭐?” “……..”놀란 태욱이 되물어도 철호는 말없이 카페의 자랑인 바다 풍경만 유리창을 통해 내다보았다. 잠시 답을 거부하는 그 옆모습을 읽어낸 태욱은 바로 향해 능숙한 손길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영애가 이 카페를 시작했을 무렵. 그녀만 고생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로 태욱은 그녀 옆에서 부지런히 카페 일을 배워서 그녀를 보좌했었다. 지금에서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고정으로 돌릴 직원이 생겨난 데다가, 갑자기 맡게 된 영애의 조카들 때문에 태욱은 아이들을 돌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어, 여보? 커피 한잔만 하고 바로 집에 들어간다면서?”카운